한 번의 '교미'를 위해서 허언을 남발하며 달려드는 남자의 눈먼 욕망과 정점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여자의 눈밝은 계산이 살을 맞대고 수정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가는 풍경은 우리 사랑이 식량을 모아둔 수컷의 창고크기를 비교한 뒤 짝을 찾는 회색 슈라이크 새의 행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 p.73
청춘을 다룬 모든 영화는 로드 우비적입니다. 그 영화속에서 등장 인물들이 실제로 여행을 하든 그렇제 않든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날의 방황과 아픔은 길 가는 자의 혼란과 피로와 그대로 일피하기 때문입니다. 젊음은 결코 한눈팔지 않은 채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게 놀리지 않습니다. 끝없이 서설대거나 헤매다가 때로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가기도 합니다. 그것은 떠나온 그 길 시발점의 이름이 '꿈'이고 지루한 여정을 보낸 뒤 결국 도착하고야 말 그 길 종착점의 명칭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김성수 감독은 태양은 없다는 내용으로 볼때 주인공들이 실제로 어딘가로 향해 길을 가는 과정을 다루는 로드무비라고 할 순 없을 겁니다. 그러나 삼류 권투 선수 도철과 3류 건달 홍기의 젊은 날을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로 그려내는 이 영화의 감성은 정확히 로드 무비적이지요. 그래서 도철과 홍기가 길에서 쫓거나 쫓기고, 폼 재면서 걷거나 다급하게 뛰는 장면이 영화 속에서 화려한 스타일로 우난히 강조되는 것도 자연스럽게 여겨집니다.
--- p.215
부기 나이트에서 이미 한참 전성기가 지난 버트 레이널즈에게서 최고의 연기를 뽑아냈던 폴 토머스 앤더슨은 이 영화에서도 탐 크루즈에게서 진정한 배우의 모습을 이끌어냅니다. 아카데미 수상엔 실패했지만, 탐 크루즈는 프랭크 역할을 맡아 역할을 맡아 정말 일생 일대의 명연기를 했지요. 마치 신들린 종교 지도자처럼 여자들을 후리는 비법을 강의하는 원맨 쇼 장면도 좋지만, 자신의 아픈 과거가 폭로되는 방송 인터뷰 도중 말을 끊고 카메라를 노려보면서 자신을 버린 세상에 대한 분노와 상처 받은 짐승의 내면을 눈동자에 함께 담아낼 때 탐 크루즈는 정말 서늘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독립 영화의 수호천사' 줄리언 무어의 연기도 조금은 관성적인 부분이 없지 않지만, 여전히 나쁘지는 않지요. 환멸과 절망에 미친 듯 빠르게 지껄여대는 연기에 관한 한 줄리언 무어를 따라갈 연기자는 없을 것 같네요.
리노의 도박사에서 함께 출연한 필립 베이커 홀과 존 라일리로부터 부기 나이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던 필립 시모어 호프먼까지 '폴 토머스 앤더슨 사단'을 이루고 있는 배우들 역시 모두 빼어난 재능에 배우들 연기까지 좋다니 영화 한 편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바랄수 있겠습니까.
카메라를 붓 삼아 스크린을 캔버스 삼아 슥슥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폴 토머스 앤더슨의 유려한 스타일은 초반부터 관객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열 명이 넘는 주요 등장 인물을 아주 빠른 속도로 스케치하며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방식에선 대단한 힘이 느껴지지요. 그렇게 빠른 서두부가 끝나고 카메라가 제 속도를 찾아갈 때쯤이면 어느 새 인물들은 어지럽게 얽힌 서로의 관계와 저마다의 아픈 속내를 드러내 놓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지요.
---pp.157~158
박하사탕의 마지막 시퀀스인 소풍 장면에서 스무 살 영호는 강가를 거닐며 '여기 와 본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요. 그때 순임은 '그러면 꿈에서 본 거래요. 그 꿈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하고요. 그래요. 우리의 꿈들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꿈을 함께 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p.170
미국 코넬대 연구팀의 사랑에 대한 충격적인 연구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2년간 5,000여 명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인터뷰한 코넬대 신디 하잔 교수의 연구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남녀간의 애정은 길어야 30개월밖에 지속될 수 없다는군요. 이 짧은 사랑의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상대방을 보아도 가슴이 뛰거나 손에 땀이 나는 일은 없다는 거지요.
하잔 교수는 '애정이란 대뇌에서 옥시토신과 도파민, 페닐에틸아민, 엔도핀 등 화학 물질이 분비되어 이뤄지는 일종의 정신 상태'라고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사랑의 성분들을 적시하며 끝내 사랑의 환상에 쐬기를 박았지요. 화학 반응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대뇌에 항체가 생겨 애정 효과가 사라진다는 겁니다. 하잔은 그 시간이 경과하면 남녀는 헤어지거나 설혹 헤어지지 않더라도 애정이 습관으로 변질된다고 말하고 있지요.
런어웨이 브라이드Runaway Bride는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그리고 게리 마셜 감독이 귀여운 여인Pretty Woman 이후 다시 의기투합에 만든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현지 개봉 때 로맨틱 코미디로 오프닝 기록까지 세우며 대대적으로 흥행했지만, 사실 뭣 하나 훌륭한 구석이 없이 그저 두 스타의 파워와 장르의 관습에만 기대어 제작된 범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