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영은 덜컹거리는 말 위에서 술 한 병을 꺼내들었다. 독주로 소문난 백주였다. 술고래라도 한 병이면 혼수상태에 빠진다는 술이었지만 호리병을 연 독고영은 술을 목에다 거침없이 들이부었다. “꿀꺽꿀꺽~.” 술 냄새에 놀란 장평일이 얼른 물었다. “아니, 지금 술을 드시는 겁니까?” “이제 피를 볼 텐데 술 한 잔이 있어야지요. 저승 가는 자들이 목이라도 축이라고 말이오.” 반은 마시고 반은 모래 위에 부어대는 독고영은 척 보기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태연을 가장한 내심은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이제 처음으로 사람을 상대로 생사혈전을 벌이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맹수들과의 싸움으로 이골이 났다고 하나, 사람을 벤다는 건 아무리 독한 마음을 지녀도 어려운 일이었다. “첫 살인인가…….” 내심 중얼거리던 독고영은 술기운이 온몸을 돌아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취기의 힘은 위대했다. “홍마적대란 자들은 죽어도 싼 놈들인가요?” “잔인한 놈들이지요. 다른 마적과 달리 생존자를 두지 않는 걸로 유명합니다. 나중에 추적당하는 걸 막으려는 속셈이지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장평일이었다. 그 한마디에 어느덧 독고영은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혔다. 오히려 절로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뭐 저도 죽이러 가는 길이니 피장파장이지요.” 말하면서도 살인에 합당한 이유를 찾는 자신이 웃기게 느껴졌다. 검을 쥔 무림인의 자세가 아니었다. 피가 싫으면 은거해 농사나 지어야 했다. 어차피 무림인이 된다면 살인은 필연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무림에서 자비심이란 웃기는 단어였다. ‘독해야 한다. 그 고생하고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지.’ 내심 다짐하고 다짐하는 독고영이었지만 긴장은 풀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겪어야 할 고비란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두려워서 별짓을 다하네.’ 장평일은 불안했지만 지금 상태로 믿을 사람은 독고영밖에 없었다. 그가 어떠한 실력을 가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보다는 낫다는 마음에 나선 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괜히 엄한 사람까지 죽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