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어디를 보나 묘한 대비의 연속이다. 한번 더 눈을 돌리면 9척 담장 밑에 내가 가꾼 꽃밭에 철모르고 싹이 튼 들풀들이 가득하다. 오늘 그것들을 모두 거두어들였다. 서리 맞아 거세어지기 전에 먹어 버렸단 말이다. 운동시간에 옆방의 이성우 선생님과 함께(이 선생님은 꽃밭의 또 다른 주인) 쭈그리고 앉아 꽃밭에 멋대로 자라난 온갖 잡풀들을 다 뜯었다. 다 거두니 세숫대야로 하나 가득, 저녁에 끓은 물을 얻어다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쳐 놓았다.
이름하여 '들풀모듬', 먹으면서 세어 보니 무려 열네 가지 풀들이 섞여 있더구나. 명아주, 쇠비름, 쇠별꽃, 뽀리뱅이, 부추, 제비꽃, 조뱅이, 꿀풀, 씀바귀, 민들레, 꽃마리, 달맞이꽃, 질경이, 방가지똥. 아무래도 제철 풀이 아닌 것이 많아서 조금 질기더군. 그래도 먹어 본 이들은 모두 기가 막히다고 이구동성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 이제 우리 사동 사람들은 내 덕분에 '들풀모듬'에 아주 익숙해졌지. 오늘로써 싹쓸이를 했으니 또 풀 맛을 보려면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하겠지.
--- pp. 46~47
초피나무 논쟁은 무엇인고 하니, 내가 만든 화단 중앙에 가시가 많이 붙은 고나목 하나가 심겨져 있었단다. 그것은 이 선생님이 사회참관 갔다가 캐온 것인데, 선생님은 이를 초피나무라고 불렀지.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도감을 보면 아무리 보아도 산초나무거든. 해서 운동하러 나가기만 하면 둘이서 초피다, 산초다 하고 논쟁을 하는 게야. 하루는 시골에서 살았다는 노인네가 운동하러 나와서 우리 얘기를 듣고 있다가 그것이 초피나무라며 자기 집에 있는 초피나무 얘기를 주욱 하는 게야. 내 코가 쑥 들어갔지. 그 뒤로 그 논쟁은 나의 잠정적인 판정패로 되어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산초나무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이유미 씨의 책에 의해 그것이 확실히 밝혀졌다.
산초나무였던 거지. 하하하! 이유미씨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던 모양이야. 해서 초피와 산초를 자세히 비교해 놓았더라구. 아, 이 책을 이 선생님께 보여 드려야 되는데. 곁에 계시지 않으니...... 하지만 초피나무의 특성이나 용도에 대한 선생님의 설명은 다 옳았다. 다만 우리 앞에 있는 산초나무를 초피나무로 착각했을 뿐이지. 이 책을 읽다 보니 이담에 우리 집 마당에 심을 나무의 수종이 대충 그려지는 것 같다. 능소화, 대롱나무, 자귀나무, 등나무, 수수꽃다리, 작살나무, 조팝나무, 보리수, 찔레나무, 으름덩굴나무, 가래나무, 대추나무, 모과나무, 때죽나무, 오미자나무, 산수유, 아그배나무....... 너무 욕심이 많나? 아무튼 될 수 있으면 위에 적은 나무들은 죄다 구해서 심고 싶구나.
--- pp. 20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