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순(金明淳)은 나혜석·김일엽과 함께 근대문학 초기 한국의 문단을 이끌었던 여성 문인이자 번역가이다. 김명순은 1896년 평양에서 갑부 김가산 소실의 딸로 태어나 서울 진명여학교, 이화학당을 거쳐 동경여자전문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17년 잡지 『청춘』의 현상 문예공모에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로 3등 입선함으로써 문단에 등장,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광수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망향초’란 필명으로 선구적 여성잡지인 『여자계』에 「초몽(初夢)」 등의 수필과 소설 「조모(祖母)의 묘전(墓前)」 등을 발표한다. 또 최초의 동인지 『창조』에서 유일한 여성 동인으로, 1925년부터는 매일신문사 기자로 활동한다. 여성작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시집 『생명의 과실』(1925)을 발간했다. 김명순은 20여 년간 소설 25편, 수필 20편, 시 111편, 희곡 2편, 번역소설 1편, 번역시 15편 등 총 17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김명순은 태어날 때부터 첩의 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 당시에는 일본군 장교에게 성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그때의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 고통은 작품 곳곳에서 날카로운 비판의식으로 승화되고, 고통스러운 절규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늘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했기 때문에 남성문인 중심의 문단에서도 문란한 여성으로 비난받으며 철저히 배제되었다. 김동인은 「김연실전」을 통해 그녀를 모델로 문란한 신여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 깊은 회의를 느낀 김명순은 1939년 영구 도일한 후 1951년 아오야마(靑山) 뇌병원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