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시인, 작가, 소설가, 언론인. 황해도 장연 출생. 본명은 노기선인데 어릴 때 병으로 사경을 넘긴 뒤 이름을 천명(天命)으로 개명하였다. 1919년 가족과 서울로 이사,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이화여전(梨花女專) 영문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졸업 후 조선중앙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부녀신문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였다. 문단 지인으로는 모윤숙, 김광섭, 이헌구 등이 있다. 노천명은 1937년에 첫 시집 『산호림』을 출판하여 여류시인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42년 조선문인협회에 참여하면서 친일시를 썼고, 해방 전인 1945년 2월에 두 번째 시집인 『창변』을 출판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전임교수와 서라벌예술대학에 강사로 출강했다. 6·25 전쟁 때 피난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임화 등이 주도하는 문학가동맹에 참여한 혐의로 수복 후 구속되었다가 동료 문인들의 석방 건의로 특별 사면되었다. 1951년부터 공보실 중앙방송국 방송담당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53년에 세 번째 시집 『별을 쳐다보며』를 출판하며 시작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1957년 재생 불능성 뇌빈혈로 사망했다. 노천명 사후 1년 뒤에 모윤숙, 김광섭 등의 지인들에 의해 유고 시집 『사슴의 노래』가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