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경북 영천에서 아버지 백내유, 어머니 이내동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미곡상과 정미소를 경영하는 거부였다. 백신애는 다섯 살 때부터 한문을 익히고 여학교 강의록을 배웠다. 총명하고 재주가 비상했던 그녀는 눈이 큰 소녀로 ‘눈깔이’란 별명이 있었다. 어릴 때는 신애라는 이름 대신 무잠, 무동, 계화 등으로 불렸다. 1918년 11세 되던 해 영천공립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학한 그녀는 3학년에 중퇴하고 대구 종로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5세 때 여학교에 가고 싶다는 소망을 부친에게 거절당하고 도립사범학교 강습과에 들어갔다. 대구사범을 1년 만에 수료하고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듬해인 1925년 경산 자인보통학교로 전임됐다. 이해 조선여성동우회, 경성여성청년동맹에 가입하여 여성운동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27년 2월 천도교회관에서 열린 경성여성청년동맹 2주년 기념식에 단독으로 집회허가를 받아낸다. 그녀는 친일 거상의 부잣집 딸로 태어났지만, 오빠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항일 운동에 뛰어들어 여성운동가로서, 민족적 고통과 현실적 모순을 가중시키는 일제의 탄압에 항거했다. 21세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녀는 1929년 1월 민족지 조선일보의 신춘문예에 응모한 자전적 소설 「나의 어머니」가 소설부 1등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공백기를 거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재개한 것은 1934년 「꺼래이」를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미완성 장편 1편, 중편 2편, 단편 16편 등 총 19편의 소설과 수필 30여 편을 남기고 지병인 위장병으로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