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춘원(春園)이다. 1892년 평안도 정주의 소작농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10살 때 콜레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다. 1905년 일진회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학원과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하며 유학생 잡지 『학지광』을 편집했다. 이 시기에 그는 도산 안창호의 일본 동경 연설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으며, 이후 기독교의 성경도 접하여 청교도적인 생활을 지향한다. 1910년 일본 메이지학원을 졸업하고, 오산학교 교원으로 있다가 1915년 김성수의 후원으로 다시 일본 와세다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매일신보에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 「무정」을 연재하였다. 1918년 귀국한 후 북경으로 가서 조선청년독립단 조직에 가담했고 이후 흥사단에 가입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8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임시정부의 주간지인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39년 친일 문학인들의 모임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된 후 친일연설을 하며 전국을 순회했다. 광복 후 친일파로 지목되어 곤란을 겪었다. 1949년 반민법에 걸려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어린 희생」, 「무정」, 「소년의 비애」, 「어린 벗에게」, 「개척자」 「무명」, 「단종애사」, 「흙」, 「유정」, 「사랑」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