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27 지금 살고있는 집에서는 아침마다 산비둘기 울음소리를 들을수있다. 침대에 누워 꿈결인듯 듣는 산비둘기 소리에는 가슴을 서늘하게 하면서 구슬피 두드리는 각별한 정조가 깃들여 있다. 서울시내 한가운데 살고있는 비둘기라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비둘기 소리를 들을때마다 지금은 만날수 없는 한여인의 목소리를 생각하게 된다. 숨죽인 울음에 떠밀려 흘러나오던 낮은 흐느낌 이었다.그 동안 나는----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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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는 무엇보다도 떠난다는 사실에 감격해 있었다. 덜컹대는 시골 버스와 차창 저편으로 펼쳐져 있는 늦은 봄날의 나른한 싱그러움. 풀물로 잔뜩 범벅을 해놓은 산과 들, 그리고 햇살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곱슬머리 총각이 곁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강변에서 버스를 내려 뱀장어 양식장을 지나 좁은 콘크리트 수로를 끼고 있는 둑방을 걸었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긴 둑이 있었고, 딸기밭은 그 건너편, 하천과 작은 언덕빼기 사이의 논도 밭도 아닌 경작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은 누추한 작은 농가가 아마 딸기밭을 임자의 집이었겠으나, 짖지 않는 개 한 마리밖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고, 마땅히 딸기밭도 버려진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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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사회에서는 성교를 위한 싸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동물 사회에서 볼 수 있는 공격성을 이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특별하게 진보된 성을 통해 그들사회에 존재하던 폭력을 제거해버린 셈이다. 만일 무리 내에서 싸움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이들은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성행위를 한다. 그러므로 보노보는 다른 침팬지 무리와는 달리 싸우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다른 침팬지는 먹이를 주면 가끔 먹이를 놓고 심한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보노보는 먹이를 먹기 전에 먼저 집단 성행위를 하고 나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도 이룩하지 못한 평화와 화해, 공존의 방법을 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성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이룩한 유일한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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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써야 할 게 있다면 그러한 그리움에 대한 서러운 노래라고 생각한다. 내게도 한 번쯤 불꽃 같은 사랑이 찾아오겠지, 그리하여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영혼을 바칠 수 있겠지. 하는 허영을 틀어쥐고 있는 것이다. 나를 견디게 하는 힘은 그와 같이 그리움에 저항하는 일말의 막연한 희망과도 같았다. 절망에 휩쓸려 허우적대면서도 팔을 뻗어보는 힘이었다. 어쨋든 그러한 '고독을 견디는 힘'에 기대어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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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내가 아주 젊고 자유로웠을 때, 나는 장차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그래서 언젠가 소설가가 된다면 무엇보다 우선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리라 작심했었다. 어떤 문고본 책갈피에 그 동안 나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들의 몸에서 하나하나 훔친 불꽃털을 고스란히 모아두었듯이 내 소설 속에 그 여자들과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 두려 했던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여자들은 다들 순백의 영혼을 지녔고, 그리고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성기를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미로운 언어의 선율에 실어 노래하고 싶었다. 오늘의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나는 가슴 아픈 사연 하나를 꺼내 이곳에 적어두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청춘, 나의 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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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연실이의 음부에 이름을 붙여주었어요. '아침'이라고. 그리고 연실이는 내 성기를 '희망'이라고 불렀어요. 우리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진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어요. 그게 다였지. 우리는 깊은 밤 이슬에 젖은 백사장에서 섹스를 했어요. 그러면서 그녀가 내게 이야기를 했지. 이 담에 다른 남자랑 살더라도 절대 날 잊지 않겠다고. 다음날 대낮에 잠에서 깨어보니 연실이는 다른 남자들과 어울려 사라지고 없었어. 여름날의 나비처럼 내게로 날아와 잠깐 쉬다가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렸지. 그런데 그녀는 사라지기 전에 내 몸에 한 가지 흔적을 남겨두었더군. 수영팬티를 갈아 입으면서 보니까 성기에 뭔가 글자가 적혀 있는 거야. 밤새 술에 취해 늘어진 내 성기에 그녀가 볼펜으로 적은 글자였어. 불생불멸.
--- p.288
...다른 침팬지는 먹이를 주면 가끔 먹이를 놓고 심한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보노보는 먹이를 먹기 전에 먼저 집단 성행위를 하고 나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도 이룩하지 못한 평화와 화해, 공존의 방법을 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성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이룩한 유일한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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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침팬지는 먹이를 주면 가끔 먹이를 놓고 심한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보노보는 먹이를 먹기 전에 먼저 집단 성행위를 하고 나서 사이좋게 나누어 먹는다는 것이다. 보노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생물도 이룩하지 못한 평화와 화해, 공존의 방법을 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성이라는 매개를 이용하여 이룩한 유일한 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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