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나무 아래서 쉬고 있노라면 지난날이 생각난다. 익은 숲의 냄새가 최초로 소년의 슬픔을 잉태했던 그날이 바로 이곳이었다. 내가 이끼 위에 누워 수줍은 소년의 열정이 가냘픈 금발 소녀의 모습을 꿈꾸었다. 화환 속에 처음 핀 장미를 꺾어놓고 그것도 작별한지. 이미 오랜 그것도 작별한지, 이미 오랜 일이다. 최초의 꿈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나는 늘 괴로워했다. 그래, 누구였을까. 잊혀지지 않는 것은…… 다만, 그녀가 상냥하고 가냘픈 금발이라는 것뿐이다. 멀어져서 다른 꿈이 왔다.---p.20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더 나은 지혜나 능력은 없다.---p.82
오늘 하루를 내내 그 여자를 생각하며 지내야 했고 그 여자 때문에 포도주를 마시고 빵을 먹어야 했다 또한 마을과 탑을 노트에 스케치하고 그 여자 때문에 신에게 감사해야 하며 이 세상에 그 여자가 살고 있는 동안 내가 그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또 그 여자 때문에 한 편의 시를 쓰고 붉은 포도주에 취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