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타 소리는 어느새 연주자와 듣는 자 사이에 아늑한 공간을 구축한다. 좋은 기타 소리는 하늘 저편에서 울려오는 먼 종소리 같았고, 저녁 강물 같은 굽이침이 있었다. 그렇다. 좋은 기타리스트의 손놀림은 그 자체가 하나의 강물이며, 절묘한 흐름이었다. 그리고 민형은 절정의 기타 연주, 그 순간은 어둠을 뚫고 빛이 내려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왔다.
- 본문 '기타 치는 남자' 중에서
최 기타가 나타났다. 겉모습은 무뚝뚝하고, 때로는 어리숙한 느낌도 있지만 소탈하고 사려가 깊은 사람이다. 최 기타의 매력 중에 하나는 그가 아직 분노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나는 존재하기 위해서 반항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최 기타의 록에는 분노가 살아있다. 지상의 모든 사랑의 훼방꾼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며, 연인들의 진실한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는 기꺼이 기타를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 본문 '기타 치는 남자' 중에서
최 기타는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무대란 이토록 위대한 곳이다. 최 기타는 잠재의식을 마음껏 풀어놓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객석을 향해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한 상태인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태아가 우주의 가장 신비로운 기운과 연결되어 그 기운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상승이었고, 다시 만나고 싶은 기분 좋은 체험이었다.
- 본문 '라이브, 또 하나의 비상' 중에서
민형은 늘 최 기타 같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대중문화의 뚜렷한 하나의 주류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주류의 뜻이 아니라 음악성으로 대접받는 주류를 뜻한다. 음악이 인기와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완성이요 영혼의 양식이라고 여기는 한 그래야 마땅하다고 민형은 생각했다.
- 본문 '새벽 여행' 중에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마저도 1979년 12월 대마초 연예인에 대한 해금조치가 있은 뒤, 다시 7인조 밴드 '신중현과 뮤직파워'로 화려하게 재기했었지만 조선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자신의 음악 '커피한잔' '님아' 같은 노래를 부르는 대신 비지스의 디스코 사운드를 연주해 달라는 경영자 요청을 거부하자, 끝내 해고를 당하고 말았던 아픈 경험이 있다. 요즘도 그렇지만 한국의 음악 소비자들은 록 뮤직에 맞춰 춤출 줄 아는 록 댄스 감각이 너무 무딘 탓이었다.
- 본문 '새벽 여행' 중에서
70년대 서울의 보헤미안들은 무교동을 마지막 비상구로 찾아들었고, 그곳에서 록 밴드와 통기타 가수들, 그리고 DJ들은 뜨거운 가슴에서 분출되는 70년대의 낭만과 감성을 목마른 이들과 함께 나누며 청년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독재정권 아래서 얌전히 공부만 하던 젊은이들이 아니었다. 이미 서구의 팝 문화가 밀려온 지가 한참이고, 베트남 전쟁의 실상과 그 의문, 그리고 히피가 추구하는 사랑과 평화가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시절 미국의 록 평론가들은 이렇게 단정 짓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것은 정치가들의 결단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록 뮤직이었다."
- 본문 '열정의 샘' 중에서
두 사람은 밤이 늦도록 술을 마셨다. 그녀도 점점 취해갔다. 그녀가 살짝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안타깝게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사니 행복하니? 나보다 음악이 그렇게 좋았니?" 최 기타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본문 '슬픈 재회' 중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가슴을, 매일 밤 한 파운드씩 도려내어 연주하고, 노래하고 작곡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아티스트의 위대함은 바로 그 고통을 노래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노래 속에서 고통은 사랑이 되고 희망이 되어 꽃으로 살아나고 별빛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아티스트의 피는 장미가 되고, 아티스트의 눈물은 별빛이 되고, 아티스트의 땀은 서정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 본문 '바다 냄새가 나는 여자' 중에서
최 기타의 기타 연주는 생명력이 넘쳐흘렀다. 그 스스로가 어느새 씻김굿을 하는 무당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미친 듯 무대를 뛰어다녔다. 그 순간 최 기타는 어둠을 가로질러 비행하는 한 마리 갈매기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순간, 최 기타는 수없이 명멸하는 빛 속에서 정숙을 보았다. 정숙은 한줄기 빛처럼 무대 위로 다가와 최 기타를 가만히 포옹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정숙이 최 기타의 품에 안겨 나지막이 속삭였다.
- 본문 '빛을 찾아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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