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판에서 문득 날아오르는 새 떼들 살림살이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다.
식구들 많은 살림을 보면 무얼로 저 배를 다 채우나 싶어진다.
흩어져 혼자 되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싶다가도, 힘없고 작은 존재들이 무리 지어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으리라 싶기도 하다.
그럴 테지! 그럴 테지!
작은 것들, 마음도 모으고 몸도 모아서 함께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테지!
흩어지라고, 혼자서 있으라고 하지, 세상의 큰 목소리는.
때로는 해산을 명하기도 하지, 세상의 큰 목소리는.
작은 새들은, 놀라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순간에도 흩어지지 않는다. 결코! --- p.26, ‘다시 시작하는 새날’중에서
늦가을, 된서리에 한꺼번에 쏟아져 내린 낙엽들이 거기 있었는데…….
이 겨울에는 흩어져버렸습니다. 나무 밑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해직과 실직의 끝도 이럴 거라. 뿔뿔이 흩어지고 헤어져 외로워지는 일. 겨울 깊어, 땅은 부풀어 오릅니다. 얼어붙는 거지요. 지금이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에게는 제일 가혹하고 힘든 시기입니다. 얼음과 서릿발과 눈보라의 계절입니다. 시린 겨울이지요.
그러니 죽음의 계절이라고요?
그런 꿈을 꾸실 건 없습니다. 시린 겨울의 짧은 한낮을 밝히는 햇볕이 이야기합니다. 겨울도 간다고. 봄을 이긴 겨울 없다고. 봄볕에 가랑잎 먼저 더워질 거라고. 이 계절은 누구에게나 힘겹다고. 그러니, 외로움에 지지 말라고. 겨울 햇빛 같은 인연들이 곁에 와 있을 거라고. --- p.32, ‘다시 시작하는 새날’ 중에서
긴 겨울 가뭄입니다.
밤하늘 별은 매일 명랑하게 밝아서 탄성을 자아냅니다. 저 별 좀 봐!
서편 하늘에 유난히 밝은 별 이름은 뭐지?
매일 궁금해하면서 여전히 모르는 채 바라봅니다.
무명, 익명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거기서 변함없이 밝고 아름답습니다.
세상에 이름 없는 것들, 하나같이 아름다운 별들입니다.
제 밝음, 제 아름다움 잃지 않는다면 오래오래 그렇게 소중히 빛날 겁니다.
아름답지 않은 별 없듯 소중하지 않은 생명 없습니다.
존재의 존엄을 살필 겨를 없고, 초라해 보이는 내게 스스로 실망하기 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모두 내 탓만은 아닙니다. 좌절 먼저 하시지는 마세요. --- p.36, ‘다시 시작하는 새날’ 중에서
동쪽 하늘에 별이 보입니다. 북두칠성입니다.
국자 끝에서 이어진 거기 북극성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정북을 가리키고 있는 별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나침반입니다.
구름, 안개가 가리면 그 지혜도 소용없긴 하지요.
동서남북을 종잡기 어려울 때 어디 한 곳이라도 바라볼 데 있으면 그를 푯대 삼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자리 지키는 존재, 모두 별빛! --- p.58, ‘사는 동안 꽃처럼’ 중에서
자벌레들이 도심을 기고 있는 소식입니다. 자벌레가 한 치 자로 사람 세상을 재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연과 우주의 크기를 재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요. 제 크기와 분수를 알고 나면 오히려 큰 세상을 어림할 수 있는 지혜가 가까워질지도 모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폭우 쏟아지고, 볕이 뜨겁습니다. 벌레들의 세상도 순경만 있을 리 없지요. 때로는 울고 웃고 상심하며 삽니다. 뉘우치고 기도하는 순간인들 없겠습니까? 밤하늘 별바라기도 하고.
--- p.92, ‘사는 동안 꽃처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