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부산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과 인스부르크 대학교에서 연구하여 『네스트로이의 반환상극』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문학, 철학, 문화학 등에 관해 폭넓게 연구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교양』(공역) 『남자』 『지식』 『연극』 『춤추는 문화』 『나는 살아있는 것을 연구한다』 『철학자 경영을 말하다』 등이 있고, 저서로는 『빈 모더니즘』(연세대 출판부) 등이 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빈은 프랑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국가를 현대화하기 시작했다. 계몽군주로서 1740년부터 1780년까지 40년간 재위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은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여왕은 교회의 특권과 귀족의 병역 특례 폐지, 고문과 농노제 폐지, 의무교육 실시 등으로 국가 권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외교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왕자 16명과 공주들을 낳아 유럽 각국의 황실로 출가시키는 결혼 정책을 펼쳐 오스트리아의 국력을 튼튼히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리 앙투아네트도 여왕의 막내딸이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와 함께 단두대의 제물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았다. “나는 언제나 임신하고 있으리라”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국가적 신념이었다. 여왕은 평화적 결혼 정책을 통해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토를 폴란드 남부, 스페인, 이탈리아 북부, 그리고 유고슬라비아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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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내에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가 유난히 많다. 이미 17세기 말에 유럽에서 베네치아, 런던, 파리 등에 카페가 생겨났고, 빈에서도 1685년 최초로 카페가 문을 열었다. 1683년 빈을 침공한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버리고 간 물품들 중에 커피 원두 자루들을 발견했을 때, 빈 사람들은 거기 담긴 푸른 곡식들이 낙타 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콜쉬츠키라는 통역사가 그것이 커피 원두라는 것을 알았으며, 왕의 허락을 받아 현재의 돔가세에 빈 최초의 카페를 개업해 커피를 끓여 팔았다고 한다. 그 후 수많은 카페가 빈에 생겨났으며, ‘비엔나 커피’를 비롯해 약 30여 종의 커피가 개발되어 커피가 그야말로 예술로 승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