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러리는 “에베레스트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간다(Because it is there)”는 명언을 남기고 에베레스트 등정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영웅이자 전설이 되어 불멸의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등정에 성공하려는 맬러리의 과욕 때문에 1922년 눈사태로 7명의 셰르파가 사망했고, 그의 보급판단 실수로 1924년에는 구르카 병사 2명이 동상으로 사망했다. 결국 맬러리는 자신과 어빈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대가로 자신은 행방불명되어,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어떠한 장애도 노력해서 극복한다는 의지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함께 등반한 동료들은 맬러리가 체력은 좋았지만 판단력이 떨어지고 건망증이 심해 책임자로서는 부적격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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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 등정을 두고 일부 서구 언론은 “한국원정대는 28명의 셰르파를 동원, 사우스콜 이상 오른 한국인은 등정자 외에는 없다. 따라서 셰르파들이 등반을 대신해 개발도상국 등산가들이 세계에서 8번째로 정상에 올랐다”고 폄훼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원정대가 준비한 산소통은 모두 100통이었으나 그중 절반인 50개의 산소통이 조절기와 규격이 맞지 않아 정상등정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아이스폴에서 1974년 가을, 프랑스원정대가 눈사태로 분실한 것으로 추측되는 산소통 13개를 주워 위기를 넘겼다. 따라서 우리 등산가들이 사용할 산소통의 여유가 없어 사우스콜에 진출할 수 없었던 것이지 결코 능력부족으로 사우스콜 이상 진출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