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제국은 초기부터 비잔틴제국을 압박하면서 소아시아 서해안으로 영토를 넓혀 갔다. 물론 비잔틴제국이 십자군의 침공을 받아 수도가 함락되는 등 이름뿐인 제국으로 전락한 것도 오스만제국을 도왔다. 그러나 오스만제국이 비잔틴제국으로부터 소아시아를 빼앗을 수 있었고, 나중에 발칸반도, 중동 지역, 북아프리카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주로 '가자'와 성전 의식이었다.
--- p.8
오스만제국은 장자가 제위를 잇는 장자상속제를 택하지 않았다. 군림 중인 술탄이 나이가 들어 늙으면 본격적으로 왕위 다툼이 시작되는데, 형제들을 제거한 왕자가 제위를 차지했다. 제국의 왕자들은 14세가 되면 특정 지역의 총독이 되었지만, 술탄이 되기 위해서는 더 중요한 지방의 총독이 되는 것이 필요했다. 중앙정부 군대의 지지를 받을 경우 훨씬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흐메드 1세가 새로운 관행을 도입하는 1603년에 전까지는 왕자, 왕비, 수상, 장군들 사이에 음모와 술수가 끊이지 않았다.
--- pp.44-45
탄지마트개혁은 우선 정부의 제도를 근대적 제도로 바꾸었다. 우선 더 공정한 세금제도와 징병제를 도입했다. 또한 근대적 사법제도를 도입해 재판을 받지 않고는 처벌할 수 없게 만들어 누구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영예를 보전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모든 국민에게 인종과 종교에 관계없이 완전한 평등권을 부여했다. 그것은 제국에 살고 있는 기독교도들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개혁이었다. 사실 당시의 기독교도들은 그리스 독립운동과 그 과정에서 일어난 모레아ㆍ키오스학살사건으로 야기된 인종 갈등과 정치 갈등으로 매우 위험한 처지였다. 탄지마트는 기독교도들을 제국 국민으로 통합하려 했고, 이후 기독교도들은 장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직에 취임할 수 있었다.
--- p.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