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온 산 중턱에 있는 대제사장 가야바 집으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간밤에, 장인 안나스가 수상한 자를 체포했다는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그래서 느긋한 기분으로 무리 앞에 섰다. 죄인에 대한 심문은 이미 끝이 났을 터이고, 자기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수순을 밟으면 된다.?
이러한 관행을 편하게 생각하면서도 간혹 기분 나쁠 때도 있었다.
무리가 고발한 예수를 본 순간, 가야바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이럴 수가!”
며칠 전부터 성전 뜰에서 예수가 하는 말을 가야바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성전 뜰에서는 누구든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성전 경비병 레위인들이 현행범으로 체포했기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그런데도 예수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이고, 예수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가야바가 탄식을 하면서 벌을 주지 않으려고 하니까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자가 성전을 비방했습니다.”
예수가 유대 광야의 수도원 패거리라는 소리였다.
또 다른 자가 말했다.
“이 자가 거룩하신 분의 이름을 모독했습니다.”
야훼를 함부로 입에 담으면 죄가 된다.
그래서 기도할 때, ‘야훼’ 대신 아도나이(나의 주)라고 했다. 예수가 그런 것도 구별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가야바는 무리를 남겨두고, 안나스 집으로 달려갔다. 하스모니아 궁전을 비롯하여 가야바 집과 안나스 집은 시온 산 중턱에 있었다.
가야바가 안나스에게 말했다.
“그 사람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제가 며칠 전부터 유심히 봤습니다.”
안나스가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있다가 감람산에 숨어 있는 걸 잡아왔네. 그래도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가야바가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다면 속아서 간 겁니다. 죄가 있었으면, 경비대장 요나단이 벌써 감옥에 넣었습니다.”
안나스가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다시 말했다.
“나도 그 점이 이상해서, 제자들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했네. 그러니까 자기는 나쁜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 그러면서도 제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네.”
“그것 보세요. 제자들에게 속은 겁니다.”
가야바가 적극적으로 변호하니까 안나스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한 사람이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게.”
안나스는 예수를 죽여서, 경각심을 높이려고 했다.
안나스를 설득하려다가 되레 설득을 당한 꼴이 된 가야바가 집에 돌아오니까, 무리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가야바는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성전으로 갔다.
그 시각, 예수는 빌라도 총독 법정에 가 있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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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를 앞세운 고발 자들이 빌라도 총독을 찾아왔을 때, 고발 사유는 예수가 ‘인두세를 내지 말자고 선동했다’는 죄였다.
그 당시, 인두세는 세금징수 청부업자(푸블리카누스) 소관이었다.
푸블리카누스들은 해마다 증가하는 인구 숫자에, 인두세를 합산한 금액을 먼저 총독에게 지불하고, 세리들로 하여금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거두어들였다.
안티바는 베레아와 갈릴리 지역을 상속받은 지주였다. 분봉왕으로 알려졌지만 그와 같은 제도는 없었다. 헤롯의 자녀들은 토지를 물러 받은 지주들이었다.?
지주들이 세금징수 청부업을 겸하고 있었다. 그래서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출신임을 알고, 인두세 문제는 안티바 소관이니까 거기 가서 죄를 따지라고 보냈다.
시온 산 정상의 헤롯궁전에 있던 안티바에게 가서 죄명이 바뀌었다.
예수가 유대 왕을 사칭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 말에 속을 안티바가 아니었다.
“허허허, 존재하지도 않는 유대 왕을 사칭했다면, 그것은 황제를 능멸하는 것이라네. 다른 데 가서 알아보게.”
이렇게 말하고 돌려보냈다.
두 번째로 빌라도를 찾아왔을 때, 예수는 유대 왕을 사칭한 자로 바뀌었다.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총독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가벼운 매질을 하고, 방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유대 왕을 사칭한 자를 풀어주면, 당신은 카이사르 충신이 아니라면서 억지소리를 했다.?
그 소리에 화가 난 총독이, 감옥에 수감 중인 흉악범 바라바를 대신 방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엄포용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렇게 하라면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른 총독이 바라바를 방면했다.
백성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총독으로써는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그러자 약점을 잡았다고 판단한 무리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유대 왕을 사칭한 자를 십자가에 처하시오.”
이때부터 광기와 집단 히스테리가 발동하면서 ‘십자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축제 기간 중에 민란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총독은 마지못해 십자가처형을 지시하고, 하인이 떠온 물에 손을 씻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무관하니 너희가 당하라.”
기고만장해진 무리 중 누군가가 우리와 우리 자손이 책임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엄포를 놓으려다가 감정싸움으로 발전하게 된 사건에 대해서, 총독은 자괴감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자기의 자주색 외투를 벗어서 예수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말했다.
“이 시간부터 너는 내가 인정하는 유대 왕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저들에게 가거라.”
그런 다음, 왕의 행차에 시종이 따라야 한다면서, 두 명의 죄수를 함께 십자가에 매달게 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나사렛 사람 유대인의 왕’ 이라고 쓴 팻말을 십자가 형틀 위에 매달게 했다.
빌라도 총독은 해묵은 감정을 일시에 드러내면서 사악한 유대인들을 싸잡아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려고 작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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