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작가 백석의 작품이기에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빼어난 동화시 네 편이 실려있다. 귀머거리 겁쟁이 너구리가 용감한 줄 알고 대장삼아 마을로 먹이 사냥을 나갔다가 싸움에 지고 만 동물들 이야기인 귀머거리 너구리, 남의 어려움을 지나치지 않고 도와주었던 개구리가 자신이 어려움에 빠지자 도움을 받는 개구리네 한 솥 밥, 집게네 네 형제, 오징어와 검복 이야기가 그림책처럼 꾸며졌다. 감동을 주는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동화를 서사시처럼 동화시로 쓴 것이 새롭다.
--- 허은순 (purpleiris@channeli.net)
백석의 동화시집<집게네 네 형제>안에 수록된 동화시 네 편을 그림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즘엔 이곳 저곳에서 동시집을 출판할 때 그림과 함께 그림책으로 만들어 내는 곳이 늘어갑니다. 동화에 대한 관심에 비해 동시에 대한 관심이 적고, 출판물의 수도 많이 빈약한 것을 생각하면, 아이들이 좀 더 재미있게 동시를 읽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동시 그림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 '귀머거리 너구리..'는 그 중에서도 특이하게 동화시입니다. 이 그림책은 백석의 시를 특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읽힐 것입니다. 오래 전에 쓰인 것이지만, 맞춤법은 오늘날에 맞게 바꾸어 놓아서 읽기 쉬웠습니다. 옛날 말투가 남아있어서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좀 낯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래도 재미있다고 하는군요. 이 안에는 '귀머거리 너구리', '개구리네 한 솥밥', '집게네 네 형제', '오징어와 검복' 이렇게 네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그 중 우리 아이들은 '귀머거리 너구리' 와 '오징어와 검복'을 꼽았습니다. '귀머거리 너구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느 산 속에/귀머거리 너구리가 살고 있었네./ /어느날 밤/마을 가까운 강냉이 밭에/곰도, 멧돼지도, 귀머거리 너구리도/다함께 내려와 강냉이를 따 먹었네./"
여느 동화하고는 느낌이 많이 다르죠? 어쨌든 너구리는 귀머거리였기 때문에 고함치는 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듣지 못해서 다른 동물들처럼 도망가지 못했을 뿐이데, 웬걸... 다른 동물들은 겁 없고 용감하다고 귀먹은 너구리를 우러러보고는 저들의 왕으로 삼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마을 사람들과 산 짐승들이 어울려 싸우게 되었는데요. 산 짐승들은 너구리를 대장으로 삼고 앞으로 나갔어요. 하지만 바로 앞에 몽둥이 든 사람들이 개들을 앞세우고 오는 것을 보자 겁 많은 너구리는 제일 먼저 도망을 갔답니다.
'개구리네 한솥밥'는 꼭 옛날 이야기 같아요. 친구들의 딱한 사정을 보고 모른 체 않고 도와주었더니 나중에는 그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징어 뼈가 왜 하나 밖에 없고, 검복은 왜 얼룩덜룩하게 되었는지는 '오징어와 검복'을 읽어보면 알게 되지요. 그러나 그림은 글에 비해 부족함이 많습니다. 글은 옛날 말투인데 비해 그림은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그림이에요. 이렇게 짤막한 동화시를 좀 더 풍부한 그림으로 표현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요. 여기에 써있는 동화시는 매우 압축되어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