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출판기획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월간 「BIK」에 음악칼럼 ‘뮤직노트’를 연재했으며, 월간 「핫뮤직」 등 몇몇 매체에 음악 관련 원고를 기고했다. 다양한 음악장르를 편견 없이 듣던 중, 톰 웨이츠의 ‘피아노는 술에 취했네’라는 노래를 처음 듣고, 그 길로 10년 넘게 톰 웨이츠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 왔다. 현재 한국 팬사이트 톰 웨이츠 코리아(tomwaitskorea.com)와 톰 웨이츠 뉴스 블로그(imookin.com)를 운영하면서 최신 소식과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에 대한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그가 무학이었다는 것인데, 톰 웨이츠는 여러 매체를 통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말해 왔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5년 동안 샌디에이고 내셔널시티에 있는 나폴레옹 피자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의 음악적 영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쇼어 리브’나 ‘더 고스트 오브 새터데이 나이트’ 같은 곡들이 그 시절 피자 집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들이다. 당시 피자 집 사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곡을 쓰고, 공연을 하러 다녔으며, 굉장히 총명하고 끼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유명해질지는 몰랐단다. 무엇보다 가장 큰 오해는 만삭인 톰 웨이츠의 어머니가 병원으로 가던 중 택시 뒷좌석에서 그를 낳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번번이 스페인어 선생이었던 아버지가 “칼 던지는 광대”였다는 둥, 아내는 “이빨로 총알도 잡는다.”라는 둥 맥락 없는 말들을 공공연하게 내뱉곤 했다. 또한 종종 술에 전 목소리로 자신의 출생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나는 병원 주차장, 택시에서 태어났어요. 이 사건은 나를 조숙하게 만들었는데요. 왜냐하면 택시비 85달러를 내기 위해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일자리를 구해야 했거든요.”---pp.13~14
톰 웨이츠는 하루 종일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 친구들을 모아 놓고 녹음실에 술집을 차렸다. 1975년 톰 웨이츠와 프로듀서 본즈 하우는 할리우드의 레코드 플랜트 녹음실을 클럽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녹음실 한쪽 구석에는 단출하게 피아노와 테너색소폰, 콘트라베이스, 드럼을 놓아 무대를 만들었고, 그 앞에 맥주와 와인, 포테이토칩이 마련된 테이블 몇 개를 준비해 작은 홀을 꾸몄다. 음악은 악기 구성에서도 알 수 있듯 재즈와 포크적 색채가 짙게 배어, 깊은 밤 친구들과 날밤을 새우기에는 더 없이 좋은 분위기였다. 그해 7월 이틀 동안 네 번에 걸쳐 공연이 이루어졌다. 공연에 초대된 지인들은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며 톰 웨이츠의 농담과 음악에 취해 밤을 지새웠다. 오프닝에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3류 스트립걸 드와나의 공연으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이 독특한 신곡 발표회는 고스란히 실황으로 녹음되어 톰 웨이츠 정규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당시 피아노를 연주한 마이클 멜바인은 “테이블에 놓인 촛대와 방을 가득 메운 사람들, 스트립걸의 오프닝은 황홀할 지경”이었고, “밴드와 톰 웨이츠와 관객이 삼위일체”였다고 회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