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모토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절망이라는, 30년 동안이나 잊고 있었던 감정이다. 대부분의 일은 술을 마시면 해소된다. 술에 취한 다음날처럼 앙금이 남아 있어도, 쓸쓸함이나 허망함과 잠시 마주하다 보면 대충 잊어버릴 수 있다. 체넴과 권태에 몸을 맡기고 있다보면 그럭저럭 하는 사잉에 종착역에 도착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p.239
석 달 정도 전에 소년이 형과 자기의 여름용 잠옷을 두 벌씩 한꺼번에 샀는데, 가정부인 시마무라가 실수로 아버지한테 줘버리고 말았다. 소년은 자기와 똑같은 잠옷을 입은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방을 나오려고 하는데, 손잡이를 잡는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다는 듯 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 p. 157
몸을 밀착하여 쿄코의 머리를 껴안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허리를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자기 심장 아래서 고동치는 심장, 그리고 그 바닥 아래에 있는 또 하나의 움직이지 않는 심장을 의식하였다. 소년은 자신이 시체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섹스를 하는 것인지 시체의 존재를 의식하기에 이 방에서 섹스를 하고 있는 것이지 알 수 없어졌다. ... 중략... 보라색으로 변색한 페니스는 딱딱하게 발기해 있다. 소년은 눈을 감고 사정의 순간을 향하여 집중하였다. 빗소리와 웃음 소리와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불협화음의 홍수가 되어 머리 구석구석까지 들러붙어 있던 어둠을 밀어내고, 한순간 싸늘한 빛 같은 오한이 등줄기를 훑어 내리는가 싶더니 뜨거운 쾌락이 용솟음치고, 소년은 해방과 동시에 포용을 느꼈다.
--- p.3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