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은 의식적인 감각 경험이다. 감각한 경험을 우리의 의식으로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지각이 성립한다. 즉 감각된 것 중 일부만이 지각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옷을 입고 있을 때 옷에 대한 촉감을 항상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옷에 대한 촉감을 느끼는 순간이 감각이 지각되는 시점이다. (…)
인식이란 뇌에 들어온 감각 입력을 해석해서 이해하거나, 들려오는 소리가 무엇인지 알아내거나, 지금 맡은 냄새가 갓 구워 낸 빵에서 난다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이다. 이는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에 기초한다. 그래서 재인이라는 용어로도 쓰이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거쳐 뇌는 여러 감각을 통합하여 지식을 쌓아 가고 운동 신경을 통해서 신체를 움직인다. 신체의 움직임은 소리를 듣는 과정이나 물체를 보는 지각 과정에서 이미 나타나기 때문에, 행위는 인식 과정의 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그 결과다.
--- p.19~21
편두통 환자들도 일부는 전조 증상으로 암점을 경험한다. 이 암점은 보통 주위 배경과 어우러진 이미지가 지각되지만, 주위 배경과는 전혀 다른 환시를 경험할 수도 있다. 몽환적인 화풍으로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친 키리코는 편두통에 의한 심한 전조 증상에 시달렸다. 그는 이때 보이는 기하학적인 형상과 지그재그 모양, 눈부신 빛과 어둠을 그림에 담았다.
--- p.45
파리와 같은 곤충은 시간당 감지하는 프레임의 숫자가 많다. 이들은 초당 265번의 깜박임을 감지한다. 인간의 눈이 초당 30~40개를 감지하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횟수다. 인간은 초당 30~40회보다 빠르게 깜박이는 영상은 연속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영화의 프레임은 초당 24회인데, 각 프레임이 두 번 투영되기 때문에 실제로는 초당 48프레임이다. 만약 파리가 영화를 보면 각 프레임이 슬라이드가 찰칵찰칵 넘어가듯이 보이기 때문에 무척이나 답답할 것이다. 그리고 손으로 자신을 잡으려고 할 때면, 그 움직임이 슬로모션으로 보이기 때문에 쉽게 도망칠 수도 있다.
--- p.83~84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음악상실증 환자는 음악가 모리스 라벨이다. 진보적인 음악을 만들어 내던 그는 52세가 되던 1927년부터 서서히 음악상실증 증상이 나타났다. 그로부터 5년 뒤에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치면서 베르니케 언어상실증 환자가 되어 버린다. 베르니케 언어상실증은 말은 하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를 잘 모르며, 다른 사람의 말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문서답하는 병이다. 그런데 그는 병에 걸린 뒤에도 예전에 자신이 만든 곡을 연주하거나 따라 부를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작품을 연주할 때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지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음악적 심상을 구체화하여 이를 종이에 옮기는 능력은 회복하지 못했다. 음악을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 음악이 표현되지 못하고 머리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 p.201~202
가려움은 통증과 유사한 감각이라고 알려져 왔다. 가벼운 자극은 가려움을 일으키고 강한 자극은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있다. 그러나 다음에 열거하는 사실은 가려움이 통증과는 다른 감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가려움은 긁는 행위를 유발하고 통증은 회피를 유발한다. 둘째, 마약 진통제인 모르핀은 통증을 완화하지만 가려움은 더욱 심하게 한다. 셋째, 가려움은 대뇌피질에서 인지되지만 통증은 시상에서 인지된다. 넷째, 통증과 가려움은 동일한 피부에서 각기 따로 인지될 수 있다. 또 최근에는 가려움에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신경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통증을 유발하는 자극에도 반응을 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결국 가려움에 특이한 반응을 보이는 감각수용체가 통각수용체와 별개로 존재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 p.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