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맨 꼭대기 층,무균실 병동에는 늘 푸른 전등이 켜져 있었다. 복도뿐만 아니라 병실 안도 온통 푸른 전등이 내리비추고 있었다. 밤은 물론이고 낮에도 마찬가지였다. 푸른색은 불빛뿐만이 아니었다. 환자복도 면회하는 사람이 입는 가운도 침대를 에두르고 있는 비닐 커튼도 모두 푸른색이었다. 심지어 음식까지도 불빛 때문에 푸르게 보였다. 그곳에 들어서면 지구로부터 몇백 광년 떨어진 또 다른 행성,혹은 수천 미터 깊이에 있는 해저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 것은 모두 그 푸른빛 때문이었다. 심지어 푸른 옷을 입고 병실을 오가는 간호사들의 조용한 발걸음은 외계인의 몸짓과 흡사해 보이기까지 했다. 「예인선」,---p.41
푸른 병실에 아내를 홀로 두고 올 때면 그녀 혼자 바다 위에 누워 있는 것만 같았다. 아내의 삶을 어딘가에 정박시킬 때가 되었다고 K는 생각했다. 이미 엔진이 꺼진 지 오래인 당신을 예인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예인선」,---p.53
‘꽃’이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넓은 범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은유를 생각한다면 한 사람을 부르는 말로는 분명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남자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꽃,보다 훨씬 좁은 의미를 가진 글라디올러스나 달리아 같은 좁은 의미를 가진 낯선 꽃 이름이 그녀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를 그냥 ‘꽃’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남자의 비극은 한 여자를 아주 큰 범위를 가진 단어로 부르면서 시작되었을지도 몰랐다. 「너는,나의 꽃」,---p.86
나는 풍선이고 싶다. 그가 넣어주는 바람을 타고 달팽이가 되고,칼이 되고,우산이 되고……. 그와는 이 세상에 없는,결코 헤어지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그것만 현실이었으면 좋겠다. 「회전목마 안으로 걸어가다」,---p.121
나무 비계를 타고 높은 건물을 내려오던 때가 있었다. 주로 페인트칠을 했지만 가끔은 아파트나 빌딩의 유리창을 닦는 일도 했다. 건물 꼭대기에 밧줄을 매고 후크를 풀어가며 아래로 아래로 내려오던 기억들. 한 손으로 밧줄을 살짝 잡고,발 앞부분으로 건물 벽을 툭 차면 그 탄력으로 몸은 한순간 허공에 머물렀다. 그때 후크를 풀면,풀어진 시간만큼 몸은 아래로 떨어졌다. 우주유영을 하는 우주인이 그런 기분일까. 짧은 시간 동안 가슴이 작은 두려움으로 부풀어 오르다가 사그라졌다. 유쾌한 일이었다.「건조주의보」,---p.145
언제부터 우물에 물이 고이기 시작한 것일까. 물은 당신 발바닥을 적시고 금세 발목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당신은 춤추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좁고 컴컴한 우물 속에 갇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춤을 추는 일밖에 없는 것처럼 당신은 춤에 몰두했다. 물은 사방에서 밀려드는 것 같았다. 심지어 당신의 배꼽에서도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물은 빠르게 채워졌다. 당신의 허리를 지나 가슴까지 차올랐다. 메워졌다고 생각했던 그 우물은 흐르고 흘러 마침내 당신의 배꼽까지 흘러든 것인가. 「당신의 캐비닛」,---p.161
떠나기로 했다면,거기가 어디든 지금껏 당신을 붙잡고 있던 것들을 모두 버려야 하지 않을까. 우물가에서 춤을 추던 언니가 맨발로 이끼 낀 돌을 딛고 깊은 우물 속으로 들어갔던 것처럼.
이 작가에게는 작품이라는 항아리를 잘 빚기 위해 필요한 상징의 원관념과 보조관념에 대한 신중한 선택이 있다.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료를 찾고 매만지는 솜씨, 곧 성실하고도 꼼꼼한 취재와 그것으로만 가능할 단단한 문장과 선명한 묘사가 있다. 또한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구성력, 삶과 죽음이라는 원환을 오가면서도 삶의 저쪽이라는 환상과 삶의 이쪽이라는 실상을 함께 돌아보고 살피는 작가적 시선의 긴장과 균형 등도 강진, 이 작가의 장점이다. 복도훈 (문학평론가)
과연 우리는 ‘모르는 그 어떤 곳에 닿기 위해 평생을 떠도는 것뿐’일까. 강진의 소설은 일상에 잠복해 있는 삶의 아픔을 일깨운다. 어렴풋이 잊고 있었는데, 문제들은 여전히 회전목마처럼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곳’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닥쳐오는 위험이 있다. 그리고 흐릿한 부표등을 켠 삶이 있다. 상황이 끝나려면 많은 너울을 견뎌야 한다. 때로는 죽음의 얼굴이 겹쳐오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은 빛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보여준다. 바람이 센 날, 꿋꿋한 아름다움으로 이 생경한 삶을 이끄는 방법을 만나는 길이 열린다. 윤후명 (소설가)
우리는 왜 잔업 후에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가. 구석에 웅크려 우는 자들과 낮게 엎드려 기어가는 자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끊임없이 누군가를 떠나고 떠나보내야만 하는가. 나는 고통을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고통의 메리고라운드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소설을 읽고 나니 지상의 모든 가난과 병약함을 빛나는 폭주 기관차에 싣고 달리고 싶다. 질주하고 싶다. 이야기의 레일에서 탈선하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언젠가는 하나도 안 아픈 나라로. 그것이 환상이라고 해도. 결국 죽음이 끝이라 해도. 그리고 그 끝에서 묻고 싶다. 당신도 그러하냐고. 김태용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