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벌레가 된 나는 하굣길에 관통해야 하는 압구정동에서 종종 길을 잃었다. 내가 시간을 허무는 동안 압구정동의 건물들은 점차 빼곡해졌다. 한양아파트의 단층 종합상가였던 한양스토어는 4층짜리 한양백화점으로 솟았다. 조그만 상점들을 몰아내고 학동 사거리까지 패션 스트리트가 조성되었고 그 안 골목길의 시장은 유흥가가 됐다. 천박하고 사치스러운 여자처럼 강남은 매일매일 화장과 옷을 바꾸고 있었다. 강남 이주에 성공한 담임은 ‘우리의 강남’이 선진국이 100년 동안 한 일을 10년 동안 해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지난 10년간 혼자서 100년은 살아온 셈이라고 생각했다. 겨우 열여섯 살에 나의 유년기는 한 세기 저쪽으로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 진정 새로운 것은 햄버그스테이크보다 더 비싼 빅맥도,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만족하는 손님들도, 사이보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종업원들도 아니었다. 전면에 통유리를 단 2층의 인테리어였다. 그리고 그 유리를 통해 훤히 들여다보이는 여자들의 다리였다. 창가가 아니라 쇼윈도였다. 처음에는 한산했지만 그곳은 점차 스스로 자신을 진열하는 살아 있는 마네킹들로 빼곡해졌다. 나는 맥도날드의 옐로 마크가 한껏 발기한 여성의 유방 같다고, 무릎을 세워 벌린 창녀의 다리 같다고 생각했다. 쇼윈도는 매장의 바깥까지 확장되었다.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맥도날드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아무나 서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잘생기고 예쁜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메이커 옷은 기본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유전자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흠결 없는 피부와, 뼈대 있는 가문임을 증명하는 길쭉길쭉한 골격이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에 단 하나 있는 압구정동의 맥(脈)이었다. 동네 이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어디서 만날까?” “맥도날드 앞으로 와.” 아, 그 달콤한 권력의 말.
- 좋은 교육을 받는다는 건 별게 아니다. 남들은 죽도록 노력해야 얻는 것을, 어떤 이들은 놀면서 터득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게 노는 물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였다. X고에는 미국 시민권자가 꽤 많았다. 시민권을 유지하려면 방학 때마다 미국에 다녀와야 했다. 그 애들은 나갔다 올 때마다 한국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음악을 사오거나 녹음해왔다. 시민권자와 친하고 소형 카세트 레코더가 있는 애들만이 그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환경은 선천적인 재능이었다. 90년대 초반에 한국 최초의 힙합 그룹을 결성한 가수와 이십대에 한국의 음반 시장을 좌지우지하게 된 엔터테인먼트계의 큰손이 모두 강남 8학군에서 나온 건 우연이 아니었다. 민주주의 사회는 공평했다. 종과 유를 막론하고 동일한 게임을 해야만 했다. 일테면 포유류거나 어류거나 똑같이 수영 실력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포유류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어류는 하던 대로 하면 그만이다. 자유경쟁이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냐? 해박한 인문학적 교양은 뭐고 뛰어난 예술적 소양은 무슨 소용이냐. 세계 명작보다 일본 만화가 위대하고, 미국의 팝이 러시아 클래식보다 예술적이며, 영혼의 깊이보다 메이커의 가격이 더 가치 있다는 게 어류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기준이었다.
1990년대의 압구정, 청담동에 원주민인 ‘감귤족’과, 신흥부자로서의 외래종 ‘오렌지족’, 또 강북에서 월강해 터 잡은 어중간한 ‘탱자족’이 있었다는 걸 이 소설로 알았다. 이 이야기는 압구정 청담동 일대의 내밀한 풍속화지만, 우리 모두가 지향해 마지않았던 헛된 꿈의 부스러기들이기도 하다. 재미있고, 섬뜩하고, 쓸쓸하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도 전국적으로 가열하게 퍼져 나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이야기다. 청담동 ‘감귤족’으로서 왕따의 전설을 거쳐 나온 노희준이 최종적으로는 오렌지족에의 헛된 지향을 버리고 본래의 자리로 되 구부러져 와 마침내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보고서이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선언서로도 읽힌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자만이 갖는 당당한 목소리가 이 소설의 뒷배에 담겨 있다. 박범신(소설가)
흘러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라고 작가는 썼다. 곪을 것은 곪고 터질 것은 터져버린 2010년, 서늘한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우리의 90년대. 다시 오지 않아도 좋을 청춘은 없으리. 문장과 문장은 아교처럼 연결되어 첫장과 끝장이 순식간에 만난다. 세다. 입속에 남아 가시지 않는 청양고추의 매운맛에 찬물을 들이켜듯, 이야기의 끝을 찾아 읽고 또 읽게 만든다. 암울한 청춘들은 들썩이던 강남의 오렌지 문화에 휩쓸려 어디가 끝인지를 굳이 확인해보는 것이다. 말로(재즈 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