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일지 몰라도, 자고 일어났더니 PM(Project Manager)이 되었다는 말은 사실에 가깝습니다. PM 준비를 착실히 해오신 분들도 있겠지만, 제 경우엔 이 말은 사실입니다. 올해로 PM으로서 걸음마를 뗀 지 4년이 됐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이력서를 살펴보니 1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하면서 17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더군요. 말하자면 제가 살아온 삶의 3할은 프로젝트로 채워져 있으며, 다시 그 절반의 삶을 PM으로서 보낸 셈입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이었던 프로젝트, 매일같이 회식을 했던 프로젝트, 힘들었던 프로젝트, 악몽이었던 프로젝트, 실패했던 프로젝트, 성공했던 프로젝트, 지겨웠던 프로젝트, 즐거웠던 프로젝트, 개발자로 참여했던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일했던 프로젝트, 그리고 팀장을 맡았던 프로젝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참여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애환은 남다릅니다. 어떤 감정이 남았던 간에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모두 소중하지만 그래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건, 처음으로 PM을 맡았던 프로젝트입니다. PM이 되기 전까지 프로젝트 관리 교육을 두 번 정도 받았으며, 프로젝트 관리 서적 몇 권을 읽은 게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팀원이나 고객을 확 끌어당길 만한 카리스마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죠. 그러기에 PM으로서 프로젝트를 이끈다는 것은 제게 커다란 도전이자 시련이었습니다.
막연한 요구사항, 바쁘다는 핑계로 콧등도 보이지 않았던 고객, 제대로 관리하라고 눈치 주었던 팀원, 더디게 올라가던 개발 진행률, PM을 맡고 하루도 마음 편하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정신 없이 흘러가서,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능숙한 것보다 실수한 것이 더 많았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운 좋게 끝났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에 겨웠던 초보 팀장이 초심자의 행운에 기대어 프로젝트를 끝냈던 셈입니다.
팀장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 달력이 몇 번이나 바뀐 지금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하지만, 팀장을 처음 맡는 동료나 후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충고를 해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회사생활을 하면서 본받고 싶은 팀장도 예전보다 많아졌으며,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 관리 서적도 다양하게 출판되었습니다. 확실히 몇 년 전보다 프로젝트 관리를 배우기 좋은 환경인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프로젝트 실패 이야기나 프로젝트 때문에 힘들어 하는 동료나 후배를 보면, 프로젝트 관리라는 세계는 그 정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고준한 산인 것 같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문명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수많은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실행되고 실패하고 좌절하고 성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몇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니 팀장이 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관리자라면 처음부터 판타스틱하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겠지만, 개발에만 전념했던 분은 8할의 시행착오와 2할의 행운에 기대어 제대로 끝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길지 모릅니다.
프로젝트 관리라는 게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닌데 관리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프로젝트 관리는 일종의 기술(Art)인 듯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프로젝트 관리 지식이 뛰어나도 관리자로서 역할을 수행해 머릿속에 알고 있던 지식들이 뼛속까지 내 것이 되지 않는 한, 알기만 많이 아는 헛똑똑이 초보 관리자를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보 PM이었을 때 제가 습득하고 있던 프로젝트 관리 지식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프로젝트 관리를 하는 데 그다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프로젝트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앞서 말씀 드렸듯이 머릿속에만 있던 지식들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들이대는 것은 덧없는 행위죠. 그래도 '저에게 모자랐던 경험을 채워줄 선배 팀장이 곁에 있었더라면,' 첫 번째 프로젝트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든든한 멘토가 있었더라도 스스로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혼자일 때보다 그렇게 외롭지도 그렇게 두렵지도 않았을 겁니다.
물론 책은 단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질문을 던질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즉, 진짜 사람이 들려주는 충고와 책 속에 적힌 이야기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존 프로젝트 관리서적이 지식의 나열에 그쳐, 프로젝트의 경험적인 혹은 기술(Art)적인 측면에 소홀한 듯합니다. 물론 이 책도 활자화된 텍스트이기에 분명 한계는 존재하지만, 소설의 형식이 이런 경험적인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이유로 PM으로서 간접 경험을 초보 팀장이나 관리에 관심을 두신 개발자 여러분께 전해드리고자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 책을 썼습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