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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KBS 1TV 명작 스캔들 02 : 클래식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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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명작 스캔들 01 : 클래식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
[CD] KBS 1TV 명작 스캔들 01 : 클래식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
Various 아울로스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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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명작 스캔들 01 : 클래식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

음반소개

구성

[곡해설]

01
로드리고 | 아랑후에스 협주곡 2악장
Rodrigo : Concierto de Aranjuez 2nd 'Adagio'
Richardo Gallen (guitar), Asturias Symphony Orchestra, Maximiano Valdes (cond)

스캔들 - 로드리고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아내를 위한 기도곡이다?
'아랑후에스 협주곡' 2악장에는 부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다?
기타는 사람의 감정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악기 중의 하나다. 기타'는 스페인어로 여성이라는 뜻으로 그만큼 섬세한 연주가 가능한 악기다. 주로 독주 악기로 많이 사용되고 애절한 감성을 잘 표현하지만 음량이 작아 오케스트라 협연에선 외면을 받아왔다. 그 가녀린 선율이 주인공이 된 최초이자 최고의 기타 협주곡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의 걸작이다. 기타가 독주로 나선 첫 협주곡, 사람들은 그 독특함에 환호했다. 또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기타 주법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도 되었다. 섬세하고 다양한 연주 기법은 물론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조화까지 기타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도 당연히 넘어섰다. 20세기 기타음악사를 새로 쓴 걸작이 탄생된 것이다. '아랑후에스'는 스페인 국왕의 여름 별궁이다. 로드리고는 생전에 아내와 함께 이곳을 자주 찾았는데, 스페인 내전 당시 피난 시절의 느낌을 되살려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스페인의 숨결이 스며있는 '아랑후에스 협주곡' 2악장이 아픈 아내를 위한 기도곡이라면... 젊은 시절 '로드리고'는 기타를 배우기 위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던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카르미'를 만난다. '빅토리아'는 '로드리고'의 눈이 되어주었고 둘은 결혼을 한다.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던 '로드리고' 부부는 생활고 속에 첫째 아이를 유산으로 잃고, 아내 '빅토리아'도 사경을 헤매게 된다. 아내의 쾌유를 빌던 '로드리고'는 그 간절한 기도를 담아 곡을 만드는데 이 곡이 바로 '아랑후에스 협주곡' 아다지오다. 1940년,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로드리고'의 친구이자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데 라 마사'의 독주로 초연됐다. 최초의 기타 협주곡은 발표와 동시에 전설이 되었다. '아랑후에스 협주곡'의 성공 이후 '로드리고'는 스페인의 대표 작곡가가 되었고 사후에는 후작 칭호를 받아 아내 '빅토리아'와 함께 '아랑후에스' 궁전에 영면했다. 어쩌면 '로드리고'는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방법으로 아내에게 최고의 선물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본래의 협주곡 모습을 벗어던지고 다른 음악 장르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재즈, 발레, 노래까지 '아랑후에스 협주곡'은 음반사에 획기적인 기록들을 많이 남겼다. 20세기에 가장 많이 연주된 곡이며, 편곡 음반만 해도 50여 종이 넘는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로드리고', 그만의 순수한 상상력이 있었기에 이토록 역사에 길이 남는 명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02
푸치니 | 오페라 라보엠 중 아리아 '그대의 찬 손'
Puccini : 'Che gelida manina' from Opera La Boheme
Jonathan Welch (tenor), Slovak Radio Symphony Orchestra, Will Humburg (cond)

스캔들 - 푸치니의 '라 보엠'은 친구의 것을 훔친 곡이다?
푸치니, 친구를 배신해 오페라의 성공을 이끌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오페라 '라 보엠'은 푸치니의 오페라 중 가장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 4막의 오페라 '라 보엠'은 보헤미안적 삶을 사는 파리 예술가들을 다루고 있다. 파리의 뒷골목 다락방에 살고 있는 시인 '로돌포'와 화가 '마르첼로', 철학자 '코르리네', 음악가 '쇼나르' 등 보헤미안 기질을 가진 네 사람의 방랑생활과 우정 그리고 폐결핵을 앓는 소녀 '미미'와 '로돌포'의 비련을 묘사한 작품이다. 1896년 2월 토리노의 '레조'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전 곡을 통하여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중에서도 '로돌포'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 '미미'의 아리아 '나의 이름은 미미' 등이 특히 유명하다. '푸치니'가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할 당시 이탈리아에는 '베리스모'라 불리는 평범한 시민의 일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노래한 사실주의 오페라가 유행하고 있었다. 기존의 오페라가 귀족이나 상류층의 삶을 우아하고 멋지게 그려왔다면 베리스모 오페라 '라 보엠'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오페라 '라 보엠'의 사실적인 요소는 대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리고 기존의 오페라에서 극적인 순간들은 오케스트라가 아닌 성악가가 부르는 멜로디 위주의 노래로 표현 됐다. 오케스트라는 반주의 역할을 뛰어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푸치니'는 '라 보엠'에서 오케스트라를 제 3의 배우로 적극 활용함으로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시대를 읽는 눈과 대중의 취향을 포착하는 감각을 가졌던 '푸치니', 그의 장점이 한껏 발휘된 '라 보엠'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상연되는 명작 중 하나이다. 오페라 '라 보엠'은 '앙리 뮈르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을 먼저 오페라로 만든 이는 푸치니의 절친 '레온카발로'였다. 그는 '라 보엠'의 작곡 사실을 친구인 '푸치니'에게 알렸다. 하지만 '푸치니'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오페라 '라 보엠'을 작곡한다. 게다가 출판사와 계약까지 하며 발 빠르게 공연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푸치니'는 친구 '레온카발로'보다 1년 먼저 '라 보엠'을 발표했고,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은 '푸치니'의 성공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게 된다. '레온카발로'는 신문 등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같은 소설! 두 편의 '라 보엠'! 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푸치니'는 대본을 새롭게 구성했고, '레온카발로'는 원작에 충실했다. '푸치니'는 '미미'와 '로돌포'를 주인공으로 부각시켰다. 이것이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푸치니'의 '미미'와 '로돌포', 두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03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
Bach : Aria from Goldberg variations, BWV 988
Jeno Jando (piano)

스캔들 -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불면증치료제였다?
바흐, 수면제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음악 작곡을 의뢰받다?
작품 속에 담겨져 있는 다양함이 다중인격의 인물 '한니발' 박사를 표현하는데 적격이었기 때문일까?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엽기적인 천재 살인마 '한니발' 박사가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이곡은 장중하면서도 명상적인 스타일로 2개의 아리아와 30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졌다. 30개의 변주곡이 치밀한 수학적 논리를 통해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 이 곡은 '바흐'의 작곡 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주제 아리아는 '바흐'의 아내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수첩에 포함돼 있던 곡이다. 그리고 15년 후, 이 아리아는 30개의 변주로 발전한다. 작곡가의 끝없는 상상력과 최고의 기술적 수완이 발휘된 작품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잔잔한 선율의 아리아에서 화려한 리듬의 토카타까지 그 시대의 모든 음악 양식을 담아낸 '바흐'의 대표작이며 건반악기 음악사에서 최고의 곡 중 하나다. 그런데 이 변주곡이 어떤 사람을 위해 특별한 불면증 치료용으로 만들어졌다면? 클래식 음악만 들으면 잠이 온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공연장에서 실제로 코까지 골며 잠들어 민망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런데 감상하는 사람을 일부러 잠들게 만들려는 작품이 있다. 대가 중의 대가 '바흐'가 걸작 중의 걸작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수면용으로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바흐'의 전기 작가인 '포르켈'이 남긴 기록으로부터 시작됐다. 1741년 드레스덴에 파견된 러시아 대사 '카이저 링크' 백작은 스트레스로 인해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던 백작,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바흐에게 불면증 치료 음악을 부탁한다. 백작의 요청에 따라 바흐가 작곡한 작품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고 백작은 이 곡 덕분에 불면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밤마다 불면으로 고생하는 백작을 위해 작곡됐다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오르가니스트였던 '바흐'는 불면증을 치료하는 음악이 아니라 불면증의 원인이 된 우울한 마음을 달래줄 음악을 만들었던 것이다. 불면으로 고통 받던 백작에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행복을 주는 맞춤 음악이 아니었을까? 바흐는 선명하면서도 우아한 테마 아리아를 생동감 넘치는 서른 개의 변주곡으로 발전시켰다.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작품들 중에서 가장 긴 길이의 곡이다. 이것은 불면증 환자가 음악을 즐기면서 서서히 수면에 빠져들도록 한 '바흐'의 세심한 배려가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곡에는 건반악기의 모든 기교가 망라 되어있다. '바흐'는 음악의 언어로 다양한 표현을 시도했다. 양 손이 위 아래로 교차하는가 하면 동 시대 악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음계 진행이나 잠시도 손을 쉬지 못할 정도의 빠른 템포 등 많은 기교를 30개의 변주곡에 녹여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교들은 완벽하게 하나의 변주곡으로 완성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주제는 마치 삶의 희로애락을 담은 듯하다. 무궁무진한 변화의 음악적 구성을 가진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후배 음악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견고한 구성이 돋보이는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에서부터 풍부한 표현력을 담은 '브람스'까지 위대한 작곡가들도 그 뒤를 이었다. 정상의 기교를 정밀한 구성 속에 녹여낸 '골드베르크 변주곡', 불면증 치료제든 아니든 18세기 최고의 변주곡임에 틀림없다.

04
브람스 | 헝가리 무곡 1번
Brahms : Hungarian Dance No.1 in G minor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Marin Alsop (cond)

스캔들 -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브람스의 곡이 아니다?
브람스가 표절논란에 휩싸인 까닭은?
흥겨운 리듬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온 '브람스'의 대표작 '헝가리 무곡'. 이 곡은 정열적인 집시 음악 리듬이 돋보이는 곡이다. 4개 곡집에 수록된 21곡의 '헝가리 무곡'은 '브람스'가 아직 20세가 되기 전 연주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시켰다. 편곡과 가정교사로 가계를 지탱하며 피아노 연주회를 열기 시작하던 신출내기 '브람스'는 1853년 헝가리에서 온 바이올리니스트 '에두아르드 레메니'를 알게 된다. '레메니'는 20대 초에 이미 유럽 각국을 순회할 정도로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브람스'는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열린 '레메니'의 독주회를 보면서 단번에 매료됐고 서로 친교를 나누면서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된다. 그의 피아노 반주자로서 함께 연주여행을 떠난 '브람스'는 '레메니'로부터 헝가리 집시음악을 배운다.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연주여행은 하노버를 거쳐 바이마르로 이어졌고, 뒤셀도르프에 머물고 있던 '슈만'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음악 평론지에 그 이름을 드러내게 된다. '브람스'는 이 연주여행을 통해 집시음악의 선율을 배우고 그 독특한 리듬을 주의 깊게 연구하여 나름대로의 악상으로 표현하며 흥미를 가지게 된다. 그 후 집시음악을 수집, 정리한 끝에 '헝가리 무곡'을 탄생시켰다. 그 중에서도 1869년에 출판된 '헝가리 무곡' 1, 2 집은 발표 당시 큰 흥행을 불러 일으켰고 악보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브람스'는 또 직접 '헝가리 무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1889년 12월 2일에 실린더 레코딩 방식으로 자신의 소개 “안녕하세요? 저는 '요하네스 브람스'라고 합니다”와 함께 '헝가리 무곡 1번'을 독주 피아노 연주로 남겼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순간에 '브람스'가 자신의 많은 레퍼토리 중에서 왜 '헝가리 무곡'을 선택 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브람스'에게 중요한 곡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브람스'는 '헝가리 무곡'을 통해서 작곡가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브람스'는 이 곡을 발표하면서 표절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브람스'를 표절로 고소한 이들은 다름 아닌 헝가리 작곡가들이었다. 특히 같이 여행을 다녔고 집시음악을 가르쳤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는 '브람스'의 표절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과연 그의 주장대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은 표절 곡이었을까? 실제로 헝가리 작곡가 '벨라 켈러'의 곡과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은 거의 흡사하다. 조만 다를 뿐 같은 곡임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브람스'도 '헝가리 무곡'을 '작곡'이 아닌 '편곡'으로 발표했다. 작품번호도 붙이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곡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비록 자작곡은 아니지만 이를 발굴한 '브람스'가 있었기에 지금의 '헝가리 무곡'이 탄생됐다 하겠다. '헝가리 무곡'은 '브람스'가 헝가리 음악을 채록하고 정리한 끝에 탄생시킨 결실이다. 당시 피아노의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연주곡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던 시기, '브람스'는 '헝가리 무곡'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 연주곡으로 탄생시켰다. 전문 연주자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브람스'는 비주류 음악이던 헝가리 민속음악을 주류음악인 클래식 선율 속에 녹여냈다. '헝가리 무곡'의 성공은 체코의 '드보르작'과 헝가리의 '코다이' 같은 민족주의 음악가들의 출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브람스'는 민속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고, 결국 '헝가리 무곡'은 누가 뭐래도 '브람스'가 재탄생시킨 명곡이다.

05
헨델 | 수상음악 중 제 11곡 'Alla hornpipe'
Handel : 'Alla hornpipe' from Water music No.11
Capella Istropolitana, Bohdan Warchal (cond)

스캔들 - 헨델의 '수상음악'은 왕에게 아부하기 위해 작곡한 곡이다?
헨델이 50인조 오케스트라를 배에 실어 보낸 까닭은?
헨델의 '수상음악'은 영국 국왕 '조지 1세'를 위하여 개최한 템즈강 뱃놀이에서 연주되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다양한 악기편성과 웅장하고 아름다운 곡 '수상음악'은 국왕 '조지 1세'를 매우 기쁘고 흐뭇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헨델'의 대표적인 관현악곡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다. 모두 20곡(새 전집에서는 21곡)으로 F장조 텱장조 텴장조의 3개 모음곡으로 이루어졌다. 독일 출신의 영국 작곡가 '헨델', 그는 주로 영국에서 음악활동을 하며 오페라를 비롯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지금까지 영국을 대표하는 국민 작곡가로 평가되고 있다. 1710년, 독일의 하노버 궁정 악장이던 '헨델'은 휴가를 내고 영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머무르며 발표한 곡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영국 여왕의 신임을 받게 된다. 독일로 돌아갔던 '헨델'은 다시 휴가를 내 영국으로 돌아왔고 오페라 등을 발표하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자 독일로 돌아오라는 하노버 선제후(중세 독일에서 황제 선거의 자격을 가진 제후(諸侯))의 명령을 어기고 영국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는 사이 독일 선제후와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 그러나 탄탄대로를 걷던 '헨델'에게 큰 시련이 닥치는데, 영국 여왕이 서거하고 자신이 배신했던 독일 선제후가 영국 왕 '조지 1세'로 즉위하게 된 것이다.
이에 전전긍긍하던 '헨델'은 왕을 위해 작곡을 시작했고, 그렇게 탄생한 곡이 바로 수상음악이었다. '헨델'은 왕의 템즈강 연회에 50여명의 오케스트라를 실은 배를 띄워 보냈고, 왕의 배를 맴돌며 연주하게 했다. 만족한 '조지 1세'는 결국 '헨델'을 용서한다. 이 이야기는 유명하지만 그 진위는 알 수 없다. 아무튼 '헨델'이 한때 '조지 1세'와 불화로 소원해졌지만 후에 그의 음악적 매력을 통해 관계가 복원되고 해소된 것은 사실이다. '수상 음악'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적어 둔 짧은 악장들을 모은 것으로 악기 편성도 낡았으므로 오늘날 원곡 그대로 공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오늘날엔 영국의 지휘자 '하티(Hamilton Harty)'가 편곡한 '수상음악'이 일반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헨델의 대표적인 관현악곡 수상음악! 물 위에서 펼쳐지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당시 과감한 시도였다. 이 작품은 전부 21곡의 소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시 유행한 춤곡을 모은 합주협주곡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야외에서 연주되는 음악처럼 낭랑한 울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현악합주 외에도 혼이나 트럼펫 같은 금관악기와 플루트, 오보에 등 목관악기가 각각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남성적인 강인함과 여성적인 차분한 정서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영국적 혹은 독일적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산뜻한 이탈리아풍의 음악이다. 또한 거대한 뱃놀이의 선상 연주를 위해 바로크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모든 악기들이 배에 실렸다고 한다. 첼시와 화이트홀을 왕복했던 뱃놀이 연회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어졌다. 노 없이 조류를 따라 배가 떠다니게 했는데, 덕분에 야외에서도 음악이 잘 들릴 수 있었다. '헨델'은 실내악에서만 쓰던 현악기를 과감하게 배치해 관악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주요 선율에는 최초로 호른을 사용했다. 물살을 가르는 듯 시작하는 서곡, 프랑스풍 경쾌한 리듬의 부레,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미뉴에트까지 음악의 종합 선물세트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왕의 마음을 단숨에 녹였던 '헨델'의 '수상음악', 그 곡에 담긴 '헨델'의 높은 음악성은 독일에서 온 이방인이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06
베르디 |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
Verdi : 'La Donna e Mobile' from Opera Rigoletto
Yordy Ramiro (tenor), Slovak Radio Symphony Orchestra

스캔들 - 베르디의 '리골레토'는 검열에서 살아남았다?
19세기 깐깐한 검열관으로부터 작품이 살아남았던 비법은?
세상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아리아 중 하나가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에 나오는 '여자의 마음'이다. '갈대와 같이 변하기 쉬운 게 여자의 마음이다'라는 내용의 노래로 '만토바' 공작이 군복 차림으로 변장해 주막에서 의기양양하게 부른다. 원래는 갈대가 아니라 깃털이었는데 여자의 마음은 깃털보다 가볍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번역을 하면서 깃털이 갈대가 됐고 지금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이 됐다. 아리아의 극적이면서도 기품 있는 선율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고 있다. 아름답고 독특한 선율미가 돋보이는 오페라 '리골레토'는 1851년 3월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어 보기 드문 갈채를 받았다.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의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그의 초기 작품이라면 '리골레토'는 전성기에 나온 작품이다. 세상을 삐뚤게 보는 꼽추 '리골레토'는 어릿광대지만 한편으로는 선량한 아버지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딸 '질다', 바람둥이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만토바' 공작 이렇게 세 인물을 중심으로 극은 전개된다. '만토바' 공작은 대단한 호색가로 '리골레토'의 딸을 정부로 착각하고 손을 뻗친다. 뜻하지 않게 딸 '질다'도 '만토바' 공작을 좋아하게 되자 '리골레토'는 딸을 보호하려고 자객을 보내 공작을 죽이려 한다. 그러나 '만토바'공작 대신 딸이 자객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베르디의 '리골레토'는 비극적인 서정성을 잘 표현한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으로 기존 오페라와는 다른 독창적 시도를 선보였다. 당시 성행했던 오페라는 사랑이야기였는데 주로 테너가 주인공을 맡았다. 그러나 베르디는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상을 다루고 싶었고, 그래서 주로 악역을 맡던 바리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세 주역 중에서 주인공 '리골레토'는 가장 복잡한 감정의 소유자다. 리골레토의 묵직한 바리톤은 극의 긴장감과 드라마틱한 전개를 주도한다. 오페라 공연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다. 또 하나의 특징은 완성도 높은 앙상블, 서로 다른 입장에 처해 있는 배역들의 심리적 갈등을 극적인 하모니를 통해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베르디의 명품 오페라 '리골레토'가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세상에 알려졌다면? 문제가 된 것은 작품의 파격적인 내용이었다. 오페라 '리골레토'의 원작은 '빅토르 위고'의 희곡 '환락의 왕'이다. 이 작품은 당시 국왕을 노골적으로 비판해 초연 후 50년 동안 상연이 금지됐던 문제작이었다. 1894년경, 작품을 접한 베르디는 그 신랄한 내용에 매료되었다. '베르디'는 극작가 '피아베'와 대본 작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 정부는 권력자를 방탕한 인간으로 묘사한데 불만을 제기했고, 공연은 금지 됐다. 검열 당국의 입장은 단호했고 베르디는 깊은 좌절에 빠졌다. '라페니체' 극장장 '마르자리'는 검열당국과 6주간의 협상을 진행했고 마침내 합의를 이뤄냈다. 제목은 '저주'에서 '리골레토'로, 배경은 16세기 프랑스 파리에서 이탈리아의 '만토바'로, 방탕한 왕 '프랑수아 1세'는 '만토바' 공작으로, 곱추 광대 '트리불레'는 '리골레토'로, 그의 딸 '블랑쉬'는 '질다'로 전면 수정됐다. 합의서가 작성되고 초연이 될 때까지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뤄졌다. 출연자 리허설도 비밀리에 이뤄졌다. 심지어 '만토바' 공작 역할을 하는 테너에게 아리아 내용이 새어 나갈까봐 악보도 늦게 전달됐다. 엄청난 비밀 프로젝트였다. 우여곡절 속에 무대에 오른 오페라 '리골레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거리 곳곳에는 '리골레토'의 아리아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베르디'의 용기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면 '리골레토'는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됐을까? 결과적으로 '베르디'의 뛰어난 예술성은 엄격한 검열도 막지 못한 것이다.

07
모차르트 | 오페라 마술피리 중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 내 마음에 불타오르고'
Mozart : 'Der Ho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 from Opera Die Zauberflote
Sumi-Jo (soprano), Berlin Radio Symphony Orchestra

스캔들 - 오페라 '마술피리'에는 비밀결사단체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숨겨져 있다?
'프리메이슨'의 단원 이었던 모차르트와 '마술피리'의 관계는?
오페라 '마술피리'는 1791년 9월 모차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발표한 2막의 오페라다. '타미노' 왕자가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를 구해내기 위해 시련을 이겨낸다는 동화적인 내용을 담은 징슈필(Singspeil*)이다. '모차르트'의 비참한 말년을 지켜준 영혼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음악이다. 오페라 '마술피리'에는 유명한 아리아가 많지만 특히 2악장에 나오는 “밤의 여왕의 복수 아리아”는 압권이다. 최고의 음역을 넘나들어야 하는 '콜로라투라' 대표곡으로 손꼽힌다. '파미나' 공주가 홀로 있는데 '밤의 여왕'이 나타나 단검을 주며 기회를 보아 자비의 승려 '자라스트로'를 찔러 죽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르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바로 유명한 '복수의 아리아'이다. 소프라노 아리아중 가장 어렵다는 평을 받는 곡이다. 모차르트는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음악 양식과 기법을 쏟아 부었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자신의 일상에서 얻은 영감들을 마음껏 녹여냈다. 익살스런 민요풍의 아리아로 관객의 흥을 돋우는가 하면 화려한 기교의 소프라노로 관객을 압도한다. 모차르트는 엄숙한 종교음악에서부터 독일 특유의 아름다운 가곡 그리고 이탈리아 코믹 오페라까지 이 모든 음악들을 '마술피리'에 망라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마술피리'에 자신이 꿈꾸던 세계, 무력이 아닌 음악으로 평화를 이루는 세상을 꿈꾼 그 이상향을 그려냈다. 신분의 차이를 뛰어 넘은 이중창은 음악 안에서 이룬 '평등'이었다. 명쾌한 주제와 다채로운 음악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다. '마술피리'는 첫 연주부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불행히도 '모차르트'는 죽음이 너무나 가까이 와 있었기 때문에 그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1791년 9월 30일 '프라이하우스' 극장에서 초연된 '마술피리'는 이 극장에서만 1백회 연속으로 공연되는 등 모차르트의 오페라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했다. 오페라 '마술피리'에는 '프리메이슨'적 상징주의와 천진한 유머가 곳곳에 많이 들어있다. '프리메이슨'은 자유, 평등, 박애를 이상으로 하며 18세기 유럽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비밀결사단체다. 사실 '모차르트'는 자신이 가맹하고 있었던 비밀결사 '프리메이슨'의 신조나 의식 등을 오페라 곳곳에 숨겨 놓았다. 밤의 여왕의 세 시녀, 사원을 지키는 세 소년, 사원으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 세 도막 난 뱀 등 계속 반복되는 숫자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숫자 '3'이다. 전문가들은 숫자 3이 비밀결사단체 '프리메이슨'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완벽한 숫자 3은 '프리메이슨'의 이상인 아름다움, 힘, 지혜를 뜻하는 것이다. 이 단체는 가입사실조차도 비밀에 부칠 정도로 단원들에게 엄격한 '침묵'을 요구했다. 단원은 조직에서 알게 된 비밀을 절대 발설해선 안 되는 규정을 지켜야 했다. 모차르트는 바로 이'프리메이슨'의 충실한 단원이었다. 충실한 단원이었던 모차르트는 왜 이 침묵의 서약을 어긴 것일까? 입막음 당한 '파파게노'는 프리메이슨의 덕목인 '침묵'을 또 눈을 가린 '타미노'는 프리메이슨 가입의식을 연상케 한다. 현명한 철학자 '자라스트로'는 프리메이슨 지도자를 상징한다. 프리메이슨의 의식을 오페라의 소재로 사용하고 스스로 단원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탓에 모차르트는 죽기 직전까지 각종 시비에 휘말렸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오페라 '마술피리'를 초연하고 두 달 만에 갑자기 숨을 거둔다. 모차르트의 죽음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수많은 의혹들 그 중 하나가 모차르트는 누군가에 의해 독살 되었다는 것이다. 배후로 지목된 건 다름 아닌 프리메이슨! 하지만 모차르트가 숨진 1791년 당시 프리메이슨은 이미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 왕실로부터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메이슨이 모차르트를 살해할 수 있었을까? 모차르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프리메이슨을 위한 곡을 썼다. 프리메이슨도 모차르트의 죽음에 최대한 예를 갖췄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젊은 작곡가를 위해 추모 행사도 열었다. 또 악보 발행을 통해 모차르트 부인에게 경제적 도움도 주었다. 모차르트가 '마술피리' 때문에 살해됐다면 극작가 '쉬카네더'에게도 후환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마술피리의 흥행 대박으로 큰돈을 벌었고 별 탈 없이 예순한 살까지 살았다. '마술피리'를 작곡 할 무렵, 서른다섯 살의 모차르트는 이미 건강을 많이 해친 상태였다. 모차르트의 공식 사망원인은 속립열로 류머티즘과 유사한 급성질환으로 사망한 것이다. 병석에서도 오페라 '마술피리'만을 생각했다는 모차르트, 프리메이슨과 그의 죽음에 얽힌 논란은 요절한 천재에 대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 징슈필 : 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가는 서민을 위한 독일어 노래극

08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J.Strauss II : An der Schonen Blaunen Donau (The Blue Danube)
Swedish Chamber Orchestra, Thomas Dausggard (cond)

스캔들 -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없다?
오스트리아의 상징, 도나우 강에 숨겨진 진실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대표적인 왈츠 곡이다. 도나우 강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오스트리아인들의 삶을 음악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런데 이 곡의 제목엔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빈을 가로질러 흐르는 도나우 강의 색깔은 제목과 달리 푸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도나우 강은 역사적으로도 푸른빛을 띠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슈트라우스 2세'는 왜 푸르지도 않은 강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란 제목을 붙였을까? 그 이유는 이곡의 작곡배경에 있다. 1866년,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정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으면서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빈 남성합창협회는 시민들에게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슈트라우스'에게 희망찬 곡을 의뢰하였고, 그는 협회의 요구대로 애국적인 소재를 찾게 된다. 시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줄 소재를 찾던 그가 떠올린 건 바로 오스트리아의 젖줄, 도나우 강. '슈트라우스'는 도나우 강을 노래한 '카를 베크'의 시에서 영감을 받고 이 시의 한 구절에서 제목을 차용한다. '슈트라우스'의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작곡가의 바람대로 우울한 시민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이후 관현악곡으로 편곡된 도나우 강은 '가사 없는 국민가요'라 불릴 정도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곡이 되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란 제목은 강의 풍경을 묘사한 선율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시각적 이미지가 매우 강한 곡이다. 이 곡을 듣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건 두 가지, 우아한 왈츠와 도나우 강이다. 강물의 흐름을 선율의 변화로 표현한 예술적인 도입부는 물론 오케스트라에 동원되는 악기도 이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슈트라우스 2세'는 사교춤곡에 불과했던 왈츠를 예술성 높은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완성시켰다. 빈 신년 음악회에서 늘 연주되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와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향,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며 전 세계에 감동을 전하고 있다.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푸른' 도나우 그러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속엔 분명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09
라벨 | 볼레로
Ravel : Bolero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Adrian Leaper (cond)

스캔들 -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는 볼레로가 아니다?
라벨의 관현악곡에 스페인 무곡의 이름이 붙은 까닭은?
라벨의 '볼레로'는 반복되는 리듬을 타며 잔잔한 듯 시작해서 연주가 계속 될수록 주제 음을 연주하는 악기가 달라지며 곡의 재미를 선사한다. 연주가 막바지에 다르면 모든 악기들이 더해지면서 단 하나의 크레센도를 완성해 나가며 '볼레로'만의 폭발적인 완성을 만들어낸다. 곡이 연주 될수록 긴장감이 고조되는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어우러지는 리듬 소리 그리고 반복되는 두 주제 음은 짙은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볼레로'란 본래 스페인의 민속 무곡을 의미한다. 밝고 경쾌한 빠른 박자를 지닌 무곡이다. 그런데 '라벨'의 '볼레로'는 일반적인 스페인 무곡 '볼레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곡의 기본이 되는 리듬이 다르고 템포가 두 배나 느리다. 스페인의 '볼레로'는 스페인 전통 무용을 위한 곡이지만 '라벨'의 '볼레로'는 관현악을 위해 작곡됐다는 차이도 있다. 특히 스페인 춤이 아닌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발레를 위한 곡이었다. '라벨'의 '볼레로'가 가진 또 다른 점은 같은 주제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처음, 중간, 끝 부분의 리듬과 주제가 아무런 변주 없이 그것도 169회나 반복된다. 169회나 같은 주제를 반복하는 '볼레로'가 우리에게 지루하지 않게 다가오는 건 곡 전체를 하나의 크레센도로 완성해 나갔기 때문이다. 크레센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그가 새롭게 시도한 것은 악기구성의 변화다. 주제 음을 연주하는 플루트와 리듬을 연주하는 북으로 잔잔한 듯 시작하는 처음 부분은 연주되면서 주제 음과 리듬을 연주하는 악기가 변화한다. 또한 악기를 하나씩 하나씩 더해 가면서 지루하지 않게 음량을 키워나간다. 종반으로 치달으면서 모든 관현악이 등장하고 같은 음을 연주하면서 곡의 클라이막스를 선사한다. 이런 작곡법은 음악사상 전무후무한 평가를 받으며 대표할 만한 작곡가가 없던 프랑스 음악의 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곡이 초연됐을 당시 공연을 관람하던 한 공작부인은 일어나서 '라벨'에게 '미쳤다'고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독창적인 그의 작품에 다만 스페인 풍의 무곡 제목이었던 '볼레로'만을 가져다 쓴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곡의 제목을 '볼레로'라고 붙였을까?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지방에서 태어난 '라벨'은 어머니 또한 스페인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스페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또한 당시 프랑스에는 스페인을 비롯한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열풍이 대단했다. 자신의 곡에도 이국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라벨의 '볼레로'는 원래의 춤곡 '볼레로'와는 리듬 뿐 아니라 템포에도 차이를 보인다. 라벨의 새로운 문화를 향한 호기심이 우리에게 새로운 느낌의 볼레로를 선사한 것이다. '라벨'의 '볼레로'는 후대 예술가들에게도 많은 예술적 영감을 불어 넣어 주었다. 특히 '볼레로'곡을 사용한 창작 무용의 발표는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매해 다른 느낌의 '볼레로' 창작무용을 연작으로 발표하는 예술가가 있을 정도다. 그뿐이 아니다. 할리우드에서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다양한 곡을 위한 편곡이 이뤄질 정도로 원래 스페인 '볼레로'의 영향력을 넘어설 정도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볼레로'는 고전 음악과 현대 음악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전 세계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라벨'의 '볼레로', 그 가치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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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노 | 아베마리아
Gounod : Ave Maria
Ingrid Kertesi (soprano), Camerata Budapest

스캔들 -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바흐의 '프렐류드 1번'을 표절했다?
구노는 '아베마리아' 반주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 1권 1번 '프렐류드'를 사용했다?
가장 친숙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서양 고전음악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애청되고 있는 노래가 바로 성모찬가 '아베마리아'다. 이 노래의 배경은 누가복음 1장에서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수싅고지(受胎告知*)를 알리는 장면의 성경구절이다. “Ave-아베”는 안녕하시냐는 뜻으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인사하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누가복음 1:28절의 말씀에서 나왔다. 특정 종교를 위하여 만들어졌지만 일반 사람들도 친숙하게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곡이다. 슈베르트나 카치니를 비롯해 많은 작곡가들이 '아베마리아'를 작곡했고, 그 곡수가 무려 100여 곡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작곡가 '샤를 구노(Charles Gounod)'의 '아베마리아'는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위안을 주는 곡으로 손에 꼽히는 명작중의 명곡이다. 그러나 '샤를 구노'의 명곡 '아베마리아'는 음악 역사 속에서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바흐'의 '프렐류드 1번'과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서로 다른 두 작품이지만 쌍둥이처럼 닮아있다. '바흐'의 '프렐류드 1번'을 반주로 사용하고, 그 반주 위에 간단한 선율을 더해 만든 것이 바로 '구노'의 '아베마리아'다. 왜냐하면 두 명의 위대한 작곡가의 공동작업(collaboration)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명의 음악가가 동시대를 살았던 것은 아니다. 이곡의 멜로디는 반주가 쓰여 지고 130년이 지난 뒤에야 만들어진다. 기존의 음악을 거의 손대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건 음악사 적으로도 아주 드문 일이다. 바흐의 순수 기악곡에 붙인 그의 노래는 너무도 자연스러워 두 멜로디가 원래 하나였다는 인상을 줄 정도이다. '구노'는 1839년 로마대상을 받고 3년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그 곳에서 '구노'는 음악 인생에 없어선 안 될 사람을 만난다. '멘델스존'의 누이 '파니'였다. '구노'는 그녀로부터 '바흐'의 평균율을 처음 소개받아 듣게 되었고, 곡의 의미와 정신에 큰 감동을 받게 된다. '바흐'의 음악은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음악세계와 전혀 달랐고 엄청난 충격이었다. '구노'는 이 평균율의 1권 프렐류드를 배경화성으로 곡을 만들었고 후에 아베마리아 가사를 붙여 곡을 완성 시킨다. 결국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반주와 가사 모두 다른 사람한테서 빌려온 것으로 '구노' 자신이 쓴 오리지널 부분은 멜로디뿐이다. 오늘날이라면 틀림없이 저작권 문제가 되었을 법하지만 예전에는 타인의 음악을 자신의 곡으로 차용하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또한 '구노'는 '아베마리아'를 처음부터 종교적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것도 아니었다. 오랜 것에서 새로움을 창조해낸 '샤를 구노',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성직자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구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떨칠 수 없었고, 결국 사제의 길을 포기한 그는 음악가의 길을 선택한다. 이루지 못한 꿈 때문일까? 그의 작품엔 종교적인 색채가 짙게 묻어난다. '구노'의 이런 성향은 종교적인 성스러움이 느껴지면서도 대중성을 갖춘 작품들을 만드는 기초가 됐다. 그런 '구노'의 개성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 바로 '아베마리아'다.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단순하면서도 경건함을 잃지 않는 선율, '아베마리아'는 '구노'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대중의 취향과 종교적 신념 사이에서 최상의 조화를 이뤄낸 작품이기에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닐까?
* 수태고지 : annunciation,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태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것


11
슈만 | 교향곡 4번 1악장
Schumann : Symphony No.4 in D minor 1st
Stuttgart Radio Symphony Orchestra, Neville Marriner (cond)

스캔들 - 슈만의 '교향곡 제 4번'은 결혼 찬가다?
슈만의 그녀! 클라라를 향한 슈만의 열정과 사랑이 교향곡으로 탄생했다?
슈만의 '교향곡 4번'은 장엄한 협주 사이로 부드러운 선율이 교차되고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 변화무쌍하게 진행된다. 교향곡의 혁명이라 불리는 '교향곡 4번'은 슈만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곡이 처음부터 찬사를 받았던 건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했다. 교향곡 4번을 발표하고 10년 후, '슈만'은 곡의 흐름을 쉽게 바꾸고 대중이 좋아하는 웅장한 곡으로 다시 수정했다. '슈만' 본인의 지휘로 발표된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슈만'의 '교향곡 4번'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가장 큰 특징은 기존 교향곡의 4악장 체제를 무너뜨린 것이다.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고전주의 음악을 넘어서 자유로운 음악형식을 창조해냈다. '슈만'은 후대 교향악의 새로운 장르 탄생에도 일조한다. 그의 서정성은 '교향곡 4번'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바그너'와 '리스트'의 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내용면에서도 보다 강렬하게 감정을 표현했다. 부드러운 화음을 내는 관악기를 대거 편성해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한다. 그 파격성과 독창성으로 인해 낭만주의의 포문을 연 '슈만'의 명곡이 탄생된 것이다. 슈만의 '교향곡 4번'을 들은 시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런데 승전보를 울리는 듯 웅장한 느낌의 이 곡엔 특별한 사연이 담겨 있다. 아내 '클라라'를 향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교향곡 4번'은 아내에게 바치는 결혼 1주년 선물이었다. 무명의 작곡가였던 '슈만'은 9살 어린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만나 곧 사랑에 빠진다. '클라라'는 당시 유럽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여류 피아니스트였다. '슈만'은 '어린이 정경'을 비롯한 많은 곡을 통해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슈만'의 스승이자 '클라라'의 아버지 '비크'는 둘의 사랑을 결사반대했다. 그는 가난한 작곡가 '슈만'이 딸의 앞길을 막을 것이라 생각했다. 더구나 딸 '클라라'는 '비크' 집안의 경제적인 가장이었다. 아버지의 완고한 반대에 결국 둘은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법정 공방은 1년간 계속되었고 '비크'는 '슈만'에 대한 온갖 험담을 쏟아내며 결혼을 방해했다. 결국 소송은 '슈만'과 '클라라'의 승리로 끝이 났고 둘은 판결 한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클라라'가 스물한 살이 되기 전날, 둘은 부부가 되었다. 결혼 후 '슈만'은 '클라라'를 주제로 수많은 명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대표작이 바로 둘의 결혼 과정을 담아낸 '교향곡 4번'이다. 그 안에 녹아 있는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가슴 설레는 첫 만남, 사랑의 짜릿함, 결혼을 위해 거쳐야 했던 투쟁의 시간들 그리고 마침내 쟁취한 사랑의 환희로 녹아있다. 일생의 동반자인 '클라라'를 쟁취하는 과정을 그린 곡이 바로 '교향곡 제 4번'이다. '슈만'에게 열정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이토록 낭만적인 '교향곡 4번'이 탄생될 수 있었을까? '슈만'과 '클라라'는 '교향곡 4번'의 선율 속에서 환생하여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해설 : 프로듀서 민승식

디스크

CD 1

  • 01 멘델스존: 무언가 No.30, A장조 Op.62/6 '봄노래' - Dana Protopopescu (piano)
  • 02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1악장 모데라토 - Garrick Ohlssohn (piano), Academy of St.Martin in the Fields, Neville Marriner (cond)
  • 03 슈베르트: 마왕 Op.1 - Olle Persson (bariton), Mats Jansson (piano)
  • 04 알비노니: 아다지오 G단조 - Capella Istropolitana, Richard Edlinger (cond)
  • 05 쇼팽: 연습곡 Op.10, No.3 E장조 'Tristesse' - Freddy Kempf (piano)
  • 06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 Bulgarian National Svetoslav Obretenov Choir, Sofia Philharmonic Orchestra, Georgi Robev (cond)
  • 07 에릭 사티 ㅣ짐노페디 No.3 - Roland Pontinen (piano)
  • 08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No.13 '백조' - Johannes Moser (cello), Stuttgard Radio Symphony Orchestra
  • 09 로시니: 세비야 이발사 서곡 - Moscow State Radio and Television Symphony Orchestra Peter Klaus Hahn (cond)
  • 10 브람스: 현악6중주 제2번 G장조 Op.36 1악장 - Stuttgart Soloists
  • 11 베토벤: 엘리제를 위하여 - Mark Ehrenfried (piano)
  • 12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중 1악장 (꿈-열정) - Stuttgart Radio Symphony Orchestra, Roger Norrington (cond)

DVD

  • 01 멘델스존의 뒤에는 '대필 작곡가'가 있었다?
  • 02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은 최면요법으로 탄생됐다?
  • 03 슈베르트의 '마왕'은 슈베르트의 작품이 아니다?
  • 04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알비노니 작품이 아니다?
  • 05 쇼팽의 연습곡 '이별의 곡'은 “애국”을 노래한 곡이다?
  • 06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이탈리아 독립 운동가였다?
  • 07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는 최초의 Bgm이다?
  • 08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만 출판된 이유는 악플러 때문이다?
  • 09 '세비야 이발사' 서곡은 재활용 곡이다?
  • 10 브람스의 '현악 6중주곡 제2번'에는 암호가 숨겨져 있다?
  • 11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는 엘리제를 위해서 만든 곡이 아니다?
  • 12 '환상교향곡'을 작곡한 베를리오즈는 피아노를 못 쳤다?

품목정보

발매일
2011년 12월 14일
시간/무게/크기
240g | 크기확인중

제작사 리뷰

듣고 또 들어라 인생이 명작이 되는 그 날까지
최근 어느 책에서 보니 '시청'과 '견문'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해놓았다. 시청은 흘려보고 흘려 듣는
것, 견문은 깊이 보고 깊이 듣는 것이라고. '명작스캔들'이 어느덧 1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는 시점에 서게 되었다. 지난 1년간 우리 '명작스캔들'을 함께하신 분들은 말한다. 명작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시청'의 자세가 아닌 '견문'을 할 줄 알게 되었다고. 명작과의 이런 작은 만남들이 일상에서의 통찰력을 키우고, 우리의 인생을 조금씩 바꾸어 갈 것이다. 명작이란 무엇인가. 많은 정의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감상하는 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작품'이 진정한 명작이 아닐까.

첫 한 해, 마치 어린 아이가 수시로 아프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듯이 우리 '명작스캔들'도 안팎으로 크고 작은 소용돌이 속에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양분으로 KBS 대표 교양프로그램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아마도 명작이 결코 학식이 풍부하고 우아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프로그램을 통해 느낀 분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 '명작스캔들'은 위대한 명작 앞에서 쫄지 않고 거침없는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여러분들의 명작을 대하는 '견문'이 더 편해질 수 있도록!

명작스캔들 MC : 최원정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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