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는 국제사회와 중국 간의 관계를 사실상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중국을 갑작스레 맞이했고, 중국의 눈부신 번영에 감동 받아 양국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가정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잣대로 중국을 평가했던 것이다. 하기야 오랫동안 단절의 역사를 경험하며 현대 중국을 주시할 기회가 없었으니 그런 생각이 정상적인 범주를 이탈한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 전체의 시각도 비슷했으므로 이견이 개진될 기회가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의 정세를 통해 드러난 중국의 참모습은 특히 한반도와 관련하여 중국의 이해와 태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이 밝히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논제이다. --- p.13
중국이 주변국을 다루는 방법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우선 덩치가 커서 중국과 정면으로 경쟁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일단 정면으로 맞서는 척하고 뒤로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을 구사하는데, 소련과 인도가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덩치는 작으나 똑똑하고 끈질겨서 요주의 대상인 국가에게는 분리·지배정책(divide and rule)을 구사한다. 한국과 베트남이 대표적이다. 아주 작아 힘이 별로 없는 국가는 무자비하게 점령하는 정책을 쓰는바, 티베트가 대표적인 예이다.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척한다. ---p.50
한국전쟁이 종식된 후 미군의 주력함대가 서해에 진입한 적은 없었다. 중국은 틈만 나면 서해를 자신들의 내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묵시적인 메시지는 한국의 이해를 건드리지 않는 한 서해로의 진출은 삼가 하겠다는 것이었다. 뒤집어 보면 미국이 묵시적으로 서해를 중국의 세력권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직후 미국이 서해에 항공모함을 파견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자, 중국은 노발대발하며 반대했다. 미국도 중국의 입장을 반영, 애초의 의사를 접었다. 하지만 11월 연평도 포격 사태가 발생하자 미국은 주저 없이 핵 항공모함 조지워싱턴 호를 서해에 급파하며 한국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한미해상 합동훈련을 감행했다. 반면 중국은 변변한 비난 논평 한 번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