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유행을 넘어 1~5년 정도 지속하며 상당수 소비자들이 동조하는 움직임을 나타낼 때 우리는 비로소 이것을 ‘트렌드’라고 부를 수 있다. 〈트렌드 코리아〉에서 소개한 ‘욜로’(2017), ‘1코노미’(2017) 등과 같은 키워드는 바로 이 트렌드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트렌드를 일반적으로 흔히 말하는 넓은 의미의 트렌드와 구별하기 위해 ‘좁은 의미의 트렌드’ 혹은 ‘학술적 의미의 트렌드’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나아가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조하며 10년 이상 지속되는 경향을 ‘메가트렌드’라고 한다. 메가트렌드는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만든 용어로서 “탈공업화 사회, 글로벌 경제, 분권화, 네트워크형 조직 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조류”를 뜻한다. 어떤 현상이 단순히 한 영역의 트렌드에 그치지 않고, 한 공동체의 사회?경제?문화적인 거시적 변모를 수반할 때 우리는 메가트렌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_24-25쪽, 〈2007-2018 메가트렌드 코리아〉 중에서
소확행에 담겨 있는 의미는 ‘작은’, ‘사소한’, ‘일상’, ‘보통’, ‘평범’일 것이다. 이미 선진 사회에서는 소확행과 맥락을 같이하는 다양한 개념이 등장한 바 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고요하고 조용하게 삶을 즐기는 모습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오캄(au calme)’, 화려한 장식으로 집 안을 꾸미기보다는 창가에 핀 허브를 키우며 소박하게 공간을 채워나가는 삶의 방식을 일컫는 스웨덴어 ‘라곰(lagom)’,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장작불 옆에서 핫초콜릿을 마시는 기분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의미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에 이르기까지……. 공통점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는 대신 찰나의 작은 순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경에 상관없이 현대인들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꿈꾸고 있다.
_250쪽,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 중에서
2017년 햄버거병 파동, 살충제 계란에 이어 유해물질 생리대까지 연이어 터지는 화학 관련 문제들로 케미컬 포비아는 더욱 확산되었다. 불안한 소비자들은 계란 대신 대안 식품을 먹고 천연 소재의 생리대를 찾았다. 불안하면 불매운동으로 이어지는 소비자들, 이들은 더 비싼 돈을 주고라도 안전성이 입증된 상품을 택한다. 소수의 여성들만이 사용했던 친환경 생리대의 브랜드가 오픈마켓의 판매 상위권에 오를 만큼 고객 반응이 뜨거웠고, 일부 천연 소재 생리대는 품귀현상까지 보였다. 특히 100% 천연 펄프로 만든 생리대의 경우 일반 생리대보다 가격이 약 3배가량 높은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기꺼이 비용을 지불했다. 이처럼 심리적인 안도를 위해 더 비싸게 지불한 비용이 ‘위안 비용’인 셈이다. 소비자는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니 비싸도 제 성능을 충분히 다했다고 스스로 믿게 된다. 다시 말해서 비싸지만 가심비 높은 소비다.
_275쪽, 〈가성비에 가심비를 더하다: ‘플라시보 소비’〉 중에서
그런 대한민국의 직장 문화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들에게 좋은 노동의 기준은 연봉과 회사 규모, 인지도가 아니라 ‘스스로 얼마나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인가’이다. 2016년 3월 한 취업포털이 구직자 2,935명을 대상으로 ‘직장 선택의 기준’에 대해 설문한 결과, 1순위로 경력직은 연봉 수준(24%)을 꼽은 반면 신입직은 근무시간 보장(24.8%)을 꼽았다. 기성세대 대부분이 하고 싶은 일은 억누르고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왔다면 젊은 세대는 ‘저녁이 있는 삶’을 요구하며 퇴근 후 시간조차 내일을 위한 휴식보다 오늘의 행복을 찾는 시간으로 채우려 한다. 이러한 사고는 안정성?보수?승진 등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기존 세대와 확연히 다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질을 높이려는 젊은이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면서 직장을 선택하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_293쪽, 〈‘워라밸’ 세대〉 중에서
국내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 매장에 입장하면 두 가지 바구니가 비치되어 있다. 고객이 ‘혼자 볼게요’ 바구니를 들면 점원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반면 ‘도움이 필요해요’ 바구니를 든 고객에게는 점원이 다가가 제품을 추천해주고 상담 서비스도 실시한다. 2016년 하반기에 시범적으로 운영되었던 이 서비스는 2030 젊은 소비자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고 해당 기업도 전국의 매장으로 두 가지 바구니 비치를 확대했다. 고객이 들어오면 먼저 말을 걸고 제품을 추천하는 것이 친절한 서비스로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손님 각자의 혼자 있는 시간을 인정해주는 ‘침묵’의 서비스가 새로운 쇼핑 문화를 만들고 있다.
_314쪽, 〈언택트 기술〉 중에서
한국인의 대표적인 제3의 공간은 카페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동시에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긴다. 도대체 왜 카페가 현대인들의 케렌시아가 되었을까? 아동교육학에서 이야기하는 평행놀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설명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비슷한 행위를 공유하는 것만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아동 발달단계의 심리적 놀이를 지칭한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놀이도 없고 놀이하는 두 아동 간에 적극적인 상호작용도 없지만 나란히 앉아 놀이하는 것만으로도 공감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카페에 가서 비슷한 카공족들을 바라보면 평행놀이를 연상하게 된다. 개인적인 시간이 편안하지만 나 혼자라는 외로움의 결핍도 채우고 싶기 때문에 카페와 같은 공간을 찾는 것이다. 고독은 수용하지만 고립은 되고 싶지 않은 현대인의 안식처로서 카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_352쪽, 〈나만의 케렌시아〉 중에서
그렇다면 이렇게 산업의 서비스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트리밍을 비롯한 기술적 변화가 서비스 공급의 방식을 바꿀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서비스화는 다양한 기술의 총체적 결과지만, 그중에서도 스트리밍 기술에 가장 큰 빚을 지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데이터에 콘텐츠를 실어 보낸다. 콘텐츠를 물질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즉 가치로서 소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본래의 온라인 재생이라는 의미가 확장되어, 소유하는 것이 아닌 원하는 때에 필요한 부분만 향유할 수 있는 서비스에까지 스트리밍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윤 창출의 모델이 재화가 아닌 서비스라는 점이다.
_369쪽, 〈만물의 서비스화〉 중에서
소비자의 의사결정이 ‘비보상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보통 소비자들은 구매를 할 때 가격, 성능, 디자인, 애프터서비스, 의미 등등 여러 가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한다. 이때 다른 요소가 아무리 탁월하더라도 한 가지 요소, 예를 들어 가격이 너무 비싸면 구매를 포기한다. 이 경우 한 기준이 다른 기준을 보상하기 때문에 ‘보상적 의사결정’이라고 한다. 반면 이런 여러 가지 구매 기준 중에서 단 하나의 기준만으로 구매를 결정할 때 “비보상적 의사결정을 했다”고 표현하는데, 지금까지 논의한 매력에 의거한 소비는 극단적인 비보상적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_398-399쪽, 〈매력, 자본이 되다〉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해시태그는 사회운동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가령 2016년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는 정치적인 관심과 공분을 끌어내어, 대규모 집회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역대 최대의 사전투표율을 기록했던 2017년 대선에서도 해시태그는 국민들의 투표 참여를 이끌어낸 주역이었다. 마치 유행처럼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SNS에 투표소를 배경으로 손등에 인주 도장을 찍은 인증샷을 올리면서, 선거 당일 인스타그램에는 ‘#투표’와 ‘#투표인증’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글이 각각 39만 개, 20만 개가 등록될 만큼 해시태그를 통한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해시태그 문화는 캠페인과 마케팅의 최우선적인 수단으로 꼽힐 만큼 강력한 매개체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비자들은 불합리한 기업을 향한 보이콧의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2017년 4월, 탑승객을 강제로 끌어내린 유나이티드항공의 만행이 전해지자, 전 세계의 소비자들은 자신의 SNS에 ‘#BoycottUnited’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해당 항공사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쳤다.
_409쪽, 〈미닝아웃〉 중에서
네 살 여자아이가 머리를 감고 밥을 먹는 모습이 올라오자마자 순식간에 ‘좋아요’가 쏟아진다. SNS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만 65만 5,000여 명에 달하는 권율이의 SNS 계정 풍경이다. 이 아이의 사진이 공개되는 순간 “너무 예쁘다”,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뽀뽀해주고 싶다” 등 딸바보 부모나 지인들이 남겼을 법한 댓글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들은 권율이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에 열광하는 이른바 ‘랜선이모’들이다. SNS?블로그?유튜브 등에 공개된 남의 집 아이를 보면서 마치 내 조카인 듯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랜(LAN)선과 이모를 결합한 ‘랜선이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_426쪽, 〈이 관계를 다시 써보려 해〉 중에서
그동안 한국 사회는 개인의 고유성이나 독립성을 중시하고 개인적 성취나 목표를 우선시하기보다는 집단과의 화합?조화?공존을 중시하며 개인의 목표보다 집단의 목표를 중요시했다. 사회적 관계에서 평등적 관계보다는 위계적 관계를 더 우선시하는 경향이 높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내 집단’에 더 애정을 갖기보다는 내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더 우월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렇다 보니 한국의 기성세대는 자신의 존재감을 독립적으로 인정받기보다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확인한다. 누구의 상사, 아무개의 친구, 어떤 사람의 부하, 한 사람의 자녀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존재감을 확인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적 존재감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때 그 상황은 매우 불안하고 동시에 좌절감을 가중시키게 된다. 자존감의 기반이 너무도 약한 것이다. 빈번한 존재감 상실의 경험이 반복되면 이는 곧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한국인은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대단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중요한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거나, 존재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을 때 무척 짜증을 낸다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한국인은 무시당함에 대한 공포(rejection sensitive)가 심리 기저에 잠재하고 있다.
_454-455쪽, 〈세상의 주변에서 나를 외치다〉 중에서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