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으로 얼마간의 고민이나 주저함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오가타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동료들과 함께 작년 가을부터 연말에 걸쳐서 몇 번 합숙 생활도 했다. ---p.8
'드디어 새로운 미지의 생활이 시작된다.'라고 신스케는 생각했다. 모르는 거리,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체험한 적 없는 새로운 생활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런 상상을 하니 갑자기 가벼운 전율이 신스케의 몸속을 스쳐 지나갔다. ---p.33
그런 음악은, 설령 없다고 한들 신스케가 세상을 살 수 없을 만큼의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더욱이 아르바이트로 피곤에 절어서 몸과 마음이 잿빛으로 그늘질 때면 그런 음악보다는 오히려 미소라 히바리 같은 가수가 부르는, 평범한 가사로 된 유행가에 푹 젖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강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민중이라는 말로 총괄하는 세상의 많은 인간들 역시 그럴 것 같다. ---p.76
'동물적이라는 건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은 인간적인 욕망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신스케는 자기를 변호하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읊조렸다.
세상에는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 설령 혁명의 투쟁 속이건, 혁명 건설을 하는 도중이건,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구도적 생활이건, 그곳에 남녀의 세계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법칙은 없지 않은가? ---p.82
신스케는 더 이상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확실하게 하나의 선언을 하기 위해서 그는 그 남자의 주먹을 그대로 받아들였다.---p.133
신스케가 보기에 그들의 생각은 너무나 유치하고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그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그런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야말로 젊은이의 특권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꿈을 꾸지 않는 자신이 문득 노인네 같은 비참한 존재처럼 여겨졌다. ---p.144
"바로 너희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해. 너희 스스로가 좋아서 그 일을 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이면 괜찮을 거야. 그런데 자네들은 그렇지가 않아. 세상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정의와 이상을 위해서, 혁명을 위해서, 노동자의 미래를 위해서, 그런 멋들어진 목적을 위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서 싸운다는 느낌을 주는 얼굴들이야. 난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런 얼굴을 하진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얼굴이야. 나한테는 그렇게 보여."
"얼굴 표정에까지 책임을 질 순 없지요."
"아니, 책임을 져야 해."---p.151
"어떻게 할지 지켜봐. 나는 젊지는 않지만 내 남은 인생을 먹고 사는 문제만을 위해서 살아갈 생각은 없어. 무엇을 할지가 문제지. 여기서는 말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알게 된 날이 올 거야." ---p.170
"끝까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그놈들이 박멸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항구의 폭력단에 정면으로 대항할 수가 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확실하게 보여준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싹이 자랄 거야. 그런 우리들의 생각이 어설프다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어설픈 생각에도 진심으로 목숨을 거는 것이 우리들의 장점이잖아."---p.183
그 노쇠하고 영락한 노인의 몸 깊은 곳에 대체 어떤 불꽃이 타고 있는 것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생활 이외의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걸까? 평온한 생활보다도 우스꽝스럽고 비참한 만년이 과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40년, 아니 50년 후에 대체 어떤 노인이 되어 있을까? 청춘은 반드시 지나간다. 앞으로 10년도 채 안 되는 그 시간을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것이 지나간 후에 남는 것은 어떤 인생일까?---p.219
이부키 신스케는 지금 그 무겁고 단단한 철문에 그의 피와 살을 부딪치며 살아갈 용기와 에너지를 몸속에서 뜨겁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는 앞으로도 많은 실패와 절망의 여행을 반복해야만 한다. ---p.431
‘나는 살고 있다. 오리에도, 도미도, 그리고 오가타 선배도 마찬가지다. 나치나 시마 교코도 마찬가지다. 이와이와 미야하라 다미에도. 모두 각자 필사적으로 살고 있다…….’
---p.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