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실린 한국의 모습들은 대부분 한국 사회가 ‘지양(止揚)’해야 할 모습들이다. 솔직히 다른 나라 사람들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대목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썼다. 물론 내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내 나름대로 표현한 것이다. …… 굳이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잘하고 있는 것, 우리가 외국 사람들에게 내세울 만한 것들은 차고 넘치게 많다.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서도 우리가 지양해야 하는 것들을 살펴보는 일은 바람직한 작업이 될 것이다.
― 머리글 ---pp.5~6
간첩 색출이란 명분으로 태어난 주민등록증을 처음 갖게 된 박정희와 그의 부인 육영수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100001’과 ‘200001’이었다. …… 박정희의 주민등록번호는 ‘110101-100001’이었는데, 앞의 두 자리 11은 서울, 다음 01은 자하동을 뜻하고, 뒷자리의 1은 성별 구분을, 그 다음의 숫자는 주민등록을 한 순서를 뜻한다. …… 번호를 매겨서 국민을 관리하는 나라, 그것도 번호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서 관리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다. …… 우리는 여전히 간첩을 골라내기 위해 만든 숫자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 전 국민을 관리하는 ‘친절한’ 번호 ---pp.31~33
한국에는 유독 24시간 영업을 하는 음식점 등 가게가 많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24시간 꼬박 영업하는 비결의 핵심은, 초저임금의 ‘알바’를 고용하는 데 있다. …… 24시간 언제나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편리함은 시급 3,100원을 벌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 가며 밤을 새는 가난한 집 청소년들의 희생에 기댄 것이다. …… 많은 나라들에서는 노동을 보호하고 청소년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법률 체계를 갖추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밤샘 노동으로 내몰려야 하는 나라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은 많은 나라들이 일찍이 깨달은 바다.
― 24시간 기업하기 좋은 나라 ---pp.69~70
검문소 설치는 박정희 시대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울 광화문, 구체적으로 청와대를 정점으로 하여, 청와대를 향하는 길목마다 검문소가 세워졌다. …… 명분은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했지만, 실질은 청와대로 향하는 군의 움직임을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자신이 탱크를 몰고 한강 다리를 건너 쿠데타를 일으켰던 장본인으로서, 박정희는 혹시 자신의 뒤를 따르는 후배가 있을까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 결국 검문소의 남는 기능은 기소 중지자나 벌금 미납자 검거가 거의 전부다.
― 검문소, 청와대를 지켜라 ---pp.73~74
재소자의 생활 전반을 규정하고 있는 행형법에는 재소자의 흡연을 금지한다는 조문이 없다. 재소자의 흡연 금지는 명백한 위헌이다.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시행령의 규정만으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형행법 시행령에조차도 담배에 대한 언급은 없다. …… 한마디로 그냥 피우지 못하게 하는 거다. 이미 성인이 되었는데, 재소자라고 해서 금연을 강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 금연을 강요하는 교도소 ---pp.77~78
한국의 형사 사건 무죄율은 2005년 현재 0.18퍼센트이다. 곧 한국의 검찰은 형사 사건 피의자를 재판에 붙이면 99.82퍼센트 유죄를 받아 낸다는 것이다. …… 무죄율이 매우 낮은 것은 기본적으로 법원이 검찰의 수사 결과를 너무 신뢰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공소장과 전혀 다른 새로운 논리를 전개하며 판결문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판사들의 태도도 문제이다. …… 어쨌거나 법원이 얼마나 제 역할을 하지 않으면 검찰이 99.82퍼센트의 순도로 일하고 있다고 보도 자료까지 내어 자랑하고 있을까. 한심한 일이다.
― 세계 최고 순도로 일하는 검찰 ---pp.91~92
검찰과 경찰 그리고 정부는 입만 열면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 흉포화, 조직화된다고 주장한다. 매년 꾸준히 범죄는 증가하며, 시민들의 안전은 갈수록 위협 받는다고 하는데, 역시 사실과는 거리가 먼 과장이다. …… 정부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고, 그저 위험만 강조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도리어 위험한 일이다. 올바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검찰과 경찰의 인력과 예산, 그리고 법적 권한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포의 과장이 아니다.
― 범죄의 위험, 그만큼 위험한 과장 ---pp.104~106
서울을 벗어난 교외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길거리 상인’들이 있다. 이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 강도 또한 엄청나지만 하루 종일 일해 봐야 몇 만 원 손에 쥐기도 어렵다. …… 운전자의 손짓을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은 새벽을 기다리는 파수꾼보다 훨씬 처연해 보이기도 한다. 정규 일자리가 없어 비정규직으로, 그것도 없어 듣기만 좋은 자영업으로 쫓겨난 서민들의 일상은 이렇게 고단하기만 하다.
― 길만 막히면 나타나는 ‘길거리 상인들’ ---pp.173~174
고속도로관리공단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아웃소싱으로 구한 다음 불시에 암행 감찰을 벌인단다. 그래서 불친절한 직원이 있으면 하청 업체에 당장 해고할 것을 요구한단다. 그러니 톨게이트 계산원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친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 해고 협박으로 강요된 친절, 살아남기 위해 친절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힘겨운 웃음을 지켜보면, 도대체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인가 싶다. …… 밥줄을 쥔 누군가의 지시와 강압에 의한 친절은, 친절을 가장한 봉건이요 친절을 강요한 압제일 뿐이다.
― 언제나 친절한 고속도로 톨게이트 계산원 ---pp.178~181
세례를 받을 때, 금주와 금연을 서약하게 하는 교회도 많다. 어떤 목사들은 소주 한 병, 담배 한 갑으로 음주와 흡연의 마지노선을 구체적으로 정해 준다. …… 세계적으로 술과 담배를 금하는 기독교는 한국의 개신교밖에 없다. 아주 독특한 현상이다.
― 술 먹고 담배 피우지 말하는 예수의 가르침 ---pp.225~229
삼성이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했고 세계 경영을 한다지만 ‘무노조 왕국’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회사에 노조가 없다면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태이고, 따라서 부끄러울 만도 한데 삼성은 오히려 그것이 전통이라며 자랑하기까지 한다. …… 법조인들에게 일상적으로 뇌물을 주는 삼성의 입장에서 노조 활동을 하는 노동자 한 명쯤 손봐 달라는 것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황제의 심기’를 위해서도 쉬운 일이다. 대한민국이란 공화국 안에 버젓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왕국이 바로 삼성이다. 그렇다면 삼성은 국가를 참칭하는 반국가 단체이다. 그리고 이건희는 반국가 단체의 수괴이다.
― 무노조 왕국, 그 주인은 황제 ---pp.272
법을 아는 똑똑한 사람들, 변호사들의 회사가 최근 블루오션이라고 개척한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이 바로 저작권법을 악용한 단속 행위와 이를 통한 협박, 그리고 적당한 액수의 합의다. …… 원래는 한 법무법인이 시작했는데, 수익이 좋다는 소문이 나자 대형 법무법인들이 너도나도 끼어들었다. …… 법무법인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계속 기각되었다. 저작권법을 악용해 어린 청소년들과 서민들을 공갈·협박하고 금품을 빼앗는 일이 매일처럼 되풀이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법을 잘 아는 변호사들이 서민의 피눈물을 빼는 범죄 행위를 ‘블루오션’이라며 계속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돈을 많이 버는 변호사들의 뒷배는 든든한가 보다.
― 법무법인의 블루오션
---pp.305~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