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혀가 보이느냐?”
제자가 보인다고 답하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내 이는 보이느냐?”
제자는 이가 다 빠져서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혀가 남아 있는 것은 부드럽기 때문이고, 이가 다 빠진 것은 강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와 같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마지막 말이다.”
--- p.19
들뜬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용감하고 단호한 정신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 p.25
선비가 농부에게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떤 소가 더 힘이 세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쟁기질을 멈추고 다가와 선비의 귀에 대고는 가까이 있는 소가 더 힘이 세다고 했습니다. 선비가 왜 굳이 귀에 대고 소곤대듯이 말하느냐고 묻자 농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소도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 소가 힘이 더 세고 저 소가 약하다고 하면 저 소가 서운하지 않겠습니까?” 이 일화로부터 남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귀에 대고 말한다는 ‘부이세어(附耳細語)’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 p.31
여러 왕조를 거치며 일흔세 살까지 장수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왕과 왕조를 섬기면서도 큰 화를 당하지 않은 이유는 늘 말을 조심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남긴 시의 첫 구절에서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니 말을 조심하라’는 뜻의 ‘구화지문(口禍之門)’이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깨달음이 그 정도였다면 그가 다른 어떤 일을 했어도 순탄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양이나 서양이나, 예나 지금이나 입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재앙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 p.105
노인은 손숙오에게 지위가 낮은 사람은 지위가 높은 사람을 질투하고, 왕은 현명한 신하를 미워하며, 보통 사람은 녹을 많이 받는 사람을 원망하니 늘 조심하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 p.109
우주를 통틀어 당신이 분명하게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 p.129
이 이야기에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서로 맞물려 있어 이득도 없고 손해도 없는 상황을 뜻하는 ‘망극득모(亡戟得矛)’라는 말이 나왔는데요. 인생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말로 새겨집니다. 무엇인가를 얻었다 싶으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고, 뭔가를 잃었다 싶으면 또 다른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 인생이니까요. --- p.139
신하는 왕에게 가장 싫어하는 장군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야 옹치 장군이 아니겠소?” 왕의 대답에 신하가 말했습니다. “그럼 어서 옹치 장군에게 높은 벼슬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다른 장군들이 ‘옹치까지 벼슬을 한다면야……’라고 안심하며 반역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나라의 고조 유방과 그의 책사였던 장량의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싫은 사람까지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얄팍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싫은 사람도 포용해야 한다는 인생살이의 지혜로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 p.181
놀라운 속도로 변하는 세상은 뭔가 많이 복잡해 보이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면 한숨만 나옵니다. 불안하고 답답하니까요. 하지만 낙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길 위에 있는 첫 사람도 아니고 유일한 존재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말을 하고 다른 인간들과 어울려 살기 시작한 이후 지구상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인간은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또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삶의 문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현명한 답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동서양 현자들의 글을 읽다 보면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는 지혜의 수는 아주 적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마치 우주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자연법칙이 몇 안 되듯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부드러움은 인생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혜의 법칙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삶의 지혜이자 기술입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은 “위대한 정신은 부드러움의 힘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부드럽다는 뜻이지요. 실제로 영국인들이 가장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생각하는, 교양 있고 예의 바르며 점잖은 사람인 ‘신사(gentleman)’란 말은 원래 ‘부드러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부드러움을 사람이 갖춰야 할 으뜸의 지혜로 꼽은 것은 동양의 현자들이 먼저일 것입니다. 특히 노자는 동양 고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 보았을 ‘수유왈강(守柔曰强)’,
즉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이 곧 강한 것이라는 말로 부드러움의 덕과 힘을 강조했습니다.
간혹 부드러운 사람을 유약하다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것은 오해입니다.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은 모든 걸 포용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을 자기 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라 할 수 있는 물을 보십시오. 물은 바위를 뚫고서라도 바다를 향해 갑니다. 결국 강한 바위도 부드러운 물의 뜻은 꺾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책에는 자신들의 삶을 통해 그런 부드러움의 지혜와 기술을 보여 준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항복하지 않는 반란군 대장을 일곱 번이나 풀어 준 제갈량, 누가 얼굴에 침을 뱉으면 침이 마를 때까지 그냥 두라고 충고한 누사덕, 남의 장단점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던 황희, 늘 “좋다”라고 말한 사마휘, 성현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바느질하는 아낙네에게 지혜를 구했던 공자, 가장 미워하는 장군에게도 높은 벼슬을 주었던 유방, 늙은 말의 경험조차 무시하지 않은 관중, 남을 따르게 하려면 먼저 남을 따르라고 왕에게 조언한 좌구명…….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부드러움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건 그것은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내릴 수 있는 사람만이 보여 주는 지혜이며, 동시에 가장 오래가고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지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부드러움은 ‘낮고 수줍게 피어 있는 꽃’이자만 ‘가장 향이 좋은 꽃’이라는 워즈워스의 말처럼 말이지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부드러움의 지혜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동서양의 현자들은 부드러워지는 법에 대해 네 글자 혹은 한마디로 정리해서 말하기 때문에 그것을 마음속에 새기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물론 더 나아가 날마다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법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