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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앤드 1-2 -은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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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앤드 1-2 -은여경

은여경 | 동아 | 2013년 04월 2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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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4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364g | 128*188*30mm
ISBN13 9791155110102
ISBN10 115511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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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지?”
하얀 손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단정하고 깨끗한 글씨체는 마치 이 서류가 이혼 서류가 아닌 중요한 계약서라도 되는 양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느낌을 주었다. 서은수란 이름 옆에는 이미 붉은 인주의 도장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둥근 원 안에 서은수란 한자가 궁서체로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벌써 도장을 찍어 놓을 만큼 확고한 결론을 내렸단 말이지?
“소란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긋하고 조용하지만 감정이 배제된 목소리였다. 마치 남의 일을 대신 나와서 처리하고 있는 대리인 같았다. 그녀의 말과 행동이 두 사람의 이별을 쉽게 해치우려는 가벼움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아서 더 충격적이었다.
“지금 나랑 헤어지자는 얘긴가?”
서은수, 이것이 네가 내린 결론인 거야?
“부탁해요.”
깔끔하게 대답하는 그녀는 어쩌면 얼굴 표정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강현은 심장에 화르륵 오르는 분노로 인해 머리가 돌 것 같았다. 최승우와의 화려한 연애담을 들었어도, 결혼 후 계속된 밀애를 직접 고백 받았어도, 심지어 호텔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조차 그는 은수를 포기하지 못했다. 배신감으로 미칠 것같이 화가 나고 가슴이 쓰렸지만 온 힘을 다해 견디고 있었다. 사랑을 포기할 수가 없으니까. 그녀가 원한다면 그까짓 일은 얼마든지 없었던 일로 치고 잊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 뿐이다. 그녀의 기만과 배신으로 인해 불타는 분노와 질투가 심장을 까만 재로 만들었다. 그랬어도 배냇병신처럼 어떡하든 그녀를 제 곁에 돌아오게 하고 싶었다.
내가, 너를 놔줄 것 같아?
“부탁…… 내가 왜 들어 줘야 하지?”
삐딱한 조소를 머금은 그의 입에서 소름끼치도록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류를 들지 않은 반대편 손은 너무 꽉 쥐어져 있어서 툭툭 불거진 힘줄이 곧 터져 나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손을 들어 저 가늘고 하얀 목을 꼭 그러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녀는 죽음의 순간에도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일까?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자신을 밀어내려나? 그의 위험천만한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은수는 황당한 말로 이별을 고했다.
“보내 드릴게요. 사랑하는 사람한테로…… 가세요.”
말을 하는 은수의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남자를 자신의 손으로 보내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장을 갈가리 찢어 놓은 남자를 이렇게 고이 보내는 마음을 사랑이란 단어가 아닌 무슨 말로 대신 할 수 있을까? 이만큼이나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필시 나를 비웃겠지?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이별을 고하는 이 순간조차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어. 어차피 보상받지 못할 내 사랑을 입 밖으로 내뱉어 이대로 시궁창에 처박히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하!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랬다는데,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 맞아? 나를 보내 준다? 당신이 가고 싶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돌려 말하면 안 되지. 드디어 사랑하는 최승우에게로 돌아가겠단 뜻 아니야? 왜, 내 등 뒤에서 하는 사랑 놀음을 들키고 나니 이젠 아예 세상에 대놓고 정식으로 그 자식에게 가겠단 거야?”
서은수! 정말 이럴 순 없어!
강현은 배신감으로 인해 머릿속의 뇌가 온통 하얗게 산화될 것 같았다. 홀랑 탄 머릿속은 텅 비었고 무너진 가슴은 뻥 뚫렸다.
마치 비난처럼 퍼붓는 강현의 말에 꼭 다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은수는 부정(否定)하지 않았다. 그에게 부정(不貞)한 여자라고 오해를 받는 것은 슬프지만 이제 와 그런 것을 따져서 무엇을 할까? 유경과의 사이를 들킨 마당에도 그는 끝까지 자신에게 이 헤어짐의 책임을 지우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가 원한다면 자신이 그 멍에를 뒤집어쓰고 그의 자존심을 세워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없을 테니까.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굳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은수가 흔들림 없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그런 반응이 강현을 더욱 괴롭혔다. 끝까지 아니라고 변명하지 않는 그녀의 고고한 모습이 이젠 정말로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이제는 그녀의 가녀린 목을 겨냥해 분노로 흥분한 손이 튀어나가지 않도록 오히려 자제를 해야 할 정도였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굳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정말 교묘히도 진실을 회피하는군.”
강현은 분노로 가슴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자신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마주 앉아 있는 것이 미치도록 힘이 든데 은수는 이별을 말하면서도 너무나 침착한 것이 더 화가 났다. 혼자서 착각에 빠진 채 한 사랑의 마지막이 너무나 씁쓸했다. 서른 살이나 먹은 남자가 스물네 살짜리 동갑내기 남녀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농락당한 느낌이었다. 부아가 나고 억울했다. 내 것인 줄 믿었던 소중한 것이 처음부터 결코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 허망함 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뺏길 수 없어 차라리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뜨겁게 뇌를 잠식했다.
“내가, 널, 쉽게 내어 줄 것 같아?”
씹어뱉듯이 말하는 강현의 얼굴에 차가운 비소(誹笑)가 어렸다.
“말해 봐. 내가 이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면 넌 나에게 뭘 줄 거지?”
거래를 해 보자, 서은수.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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