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이 다소 비판적임을 인정해야겠다. 제목에서 말하는 ‘당신’은 책을 읽을 독자를 겨냥하는 것이 아님을 우선 밝혀두겠다. 그보다는 소통 과정에서 교감보다는 상처를 주고받은 기억이 더 많은 당신과 나, 우리 모두를 포함한다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책에는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유명인사, 그리고 내가 살면서 만난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나는 방송인이자 대학에서 ‘말하기’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직업적으로 무수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과 대화를 했다. 그러면서 때로는 말을 통해 상대방과의 벽이 쌓이기도 하고, 그 벽 한가운데 문이 열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무엇보다 말은 그 사람의 됨됨이, 즉 격을 보여주고 있었다. 책을 말의 벽, 말의 격, 말의 문으로 구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말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자신과 말의 격을 함께 높이고, 말의 벽을 허물어 문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 무엇보다 직업적으로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싶었다. 과연 나는 상대의 상처를 제대로 보고 느끼고 교감했는지. 말의 수사에만 빠져 있지는 않았는지.---프롤로그 중에서
조언은 상대가 요청할 때, 그리고 당신이 상대의 처지와 문제를 진심으로 염려할 때만 환영받는다. 앞의 문장은 ‘or’가 아니라 ‘and’로 이어진다. 즉 조언은 자신이 진심으로 염려하는 상대가 요구할 때만 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를 진심으로 염려하지 않는데 그가 요구할 때나, 진심으로 염려하는 상대가 요구하지 않을 때 둘 다 해서는 안 된다. 상대가 원해도 자신이 상대를 소중히 생각지 않으면 좋은 조언이 되기 어려우며, 상대가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는(상대는 그저 옆에 잠자코 있어주기만을 바라는데) 조언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오히려 도움이 아니라 해가 될 때가 많다. 구하지 않은 것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1장 ‘되잖은 조언은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한다’ 중에서
안타깝게도, 이 시대 대한민국의 대통령 또한 딱한 처지에 있는 개별적 인간에 대해서는 가슴아파할지언정 집단 혹은 조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차단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내가 모니터한 연설 곳곳에 그런 흔적이 자리하고 있다. 일례로 2011년 1월 24일 방송된 57차 연설을 보자. 전국이 구제역 몸살을 앓을 때였다.
“출입국 검역의 효과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구제역도 축산 종사자 여러분이 해외여행을 단체로 다녀온 뒤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해볼 때 백신 예방접종이 최선의 정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얼핏 보면 출입국 검역의 한계를 언급하기 위해 가볍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듯이 보이나, 대통령은 축산 종사자들의 해외여행 후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언급함으로써 축산업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는 느낌이다. 연설의 수사를 걷어내고 보자면, 이 연설의 화자는 구제역이 축산농가의 자업자득이라 생각하고 있다고까지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전체적인 연설이 방역에 종사하는 공직자, 방역에 희생된 이들의 가족, 연휴에 가족들과 함께하는 일반국민 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누구보다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상심하고 있는 축산농가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이해가 없다는 느낌이 다분하다. 대통령은 구제역으로 그 누구보다 상처 입었을 축산업자들을 두 번 죽이고 있었고, 이 연설 이후로 신문들은 ‘축산업자들의 부주의한 해외여행’ 기사를 보란 듯이 다루었다. 대통령은 방역 현장을 넘어 살처분 현장에 갔어야 했다. 축산업자들의 여행이 구제역 발생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이 시간적 선행을 가지고 인과관계처럼 추측하는 것인지 객관적 사실로 판명이 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부주의하게 방역 생각 못하고 여행을 다녀왔을지라도 자신의 머리를 짓찧으며 제 가축들을 땅에 묻고 있는 축산업자들에게 감정이입하려 애썼다면 이러한 연설은 나오지 않는다. (…)
대통령은 때로 눈물은 흘릴지언정 제대로 상대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상대가 되어보려 애쓰지 못했다. 타인의 관점에 서보고, 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고, 그의 행복에 대해 진심으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조직과 제도를 제대로 바로잡지 못했다.
소통은 말뿐이었다.---1장 ‘리더로서의 공감이란’중에서
스피치 교육의 시작은(특히 개인별 맞춤형 교육은) 심리치료에 가깝게 느껴진다. 아무리 스피치의 모든 걸 잘 숙지하고 있어도 마음에서 걸림돌이 되는 것을 치우지 않으면 입이 떨어지지 않으니, 그 걸림돌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걷어내야만 한다.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조지6세는 자신의 내면을 토로하고 가족(왕실)의 상황을 고백해야 하는 심리치료적 접근에 처음에는 대단한 거부감을 가지고 “스피치나 제대로 ?르치라”고 했다가, 마침내 로그 선생에게 백기를 든다. 그 백기가 그의 말더듬을 고치는 시작점이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 말을 더듬고 산다. (사시사철 어느 자리, 누구 앞에서도 청산유수처럼 유창하고 말의 막힘이 없는 자는 좀 ‘뻔뻔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상처에서 연유한다. 완벽하게 유창한 인간이 없다는 건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다는 방증이다. 상처가 깊고 마음은 앞서고 주변에서 닦달할수록 입은 더욱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 우리, 입 열지 못하는 상처투성이의 영혼은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속해 있거나 누구와 비교 대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로서 존재한다는 자신감이 생길 때 비로소 입을 뗄 수 있게 된다. 그 자신감을 되찾는 길이 바로 입을 떼고 좋은 스피치를 하는 시작이다.---2장 ‘상처가 있는 한 누구나 말더듬이다’ 중에서
내가 가르치던 학생 중에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이 있었다. 발성과 눈맞춤도 훌륭하고 재미있는 정신세계를 가진 듯 보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첫 발표인 자기소개 스피치를 시작하자 학생들은 연사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거나 킥킥 웃음을 참았다. 왜였을까? 한마디로 말해 그는 자신을 드러내는 스피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소개 스피치하는 사람을 연기하는 듯이 보였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으로 시작하는 진부하고 상투적인, 혹은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방백하는 듯한 그의 말에 청중은 민망해했던 것이다. 부자연스러워서 더욱 길게 느껴진 스피치가 끝난 후 그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신경 써서 코멘트를 해주었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스피치가 자신을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고. 그러나 연극무대의 연기가 하도 몸에 배서 그런지 이후 몇 차례의 스피치에서도 그의 ‘연기’는 잘 벗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학기가 끝날 때까지 그를 잘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를 믿을 수 없었다.
의도한 부정직함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역할연기를 할 뿐 자신이 솔직하게 드러나지 않는 스피치는 청자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개운하지가 않다. 연사의 신뢰도를 구성하는 요소들, 즉 능력, 인성, 카리스마 중 인성은 정직성과 불편부당성으로 정의된다. 화자의 정직성이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2장 ‘인성 : 당신의 말이 당신을 말한다’중에서
결혼 이후 줄곧 바깥일을 해온 나로서는 집에서 주부로 아이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하고 사는 친구를 만날 때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난감할 때가 있었다. 관심사도 다르고 매일매일의 생활도 만나는 사람도 다르니 공통 화제가 적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멀어지고, 그런 거려니 하면서도 마음에 미안함이 남았나 보다. 어느 날 한 선배와 밥을 먹다가, 이런 경우를 포함해 화제를 찾기 어려울 때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선배의 방법은 아주 훌륭했는데, 자신은 그 사람의 하루를 생각해본다는 것이었다. 앞에 앉아 있는, 혹은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때론 미워하기까지 하는 그 사람이 어떻게 아침을 시작했고 어떤 오전을, 오후를 보낼 것이며 누구와 어떤 밥을 먹을까를 생각해보다 보면 누구든 나름의 고단함과 고달픔이 있어 다 안쓰러워진다는 것이다. 그 안쓰러움이 이야기를 이끌며, 그러다 보면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3장 ‘‘쉽게 만나면 의미가 없잖아요’’중에서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학부모들이 새 학기에 하는 다짐 중 하나는 공부를 잘해보자, 잘하게 해보자는 것일 게다(이게 마음같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 다짐을 실현하기 위해 독서실을 끊고 엄마도 애 옆에서 같이 책을 읽고 아이를 신주단지 모시듯 설설 기지만, 공부를 잘하는 요체는 그게 아니다. 소통을 가르치며 깨닫게 되는 것인데, 공부는 소통이다. 소통의 ABC를 얘기하다 보면 결국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게 되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씌어진 것을 제대로 읽고, 말해진 것을 제대로 이해하며 들으면 저절로 공부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음파를 타고 뇌에 전달(hearing)된다고 해서 제대로 듣는(listening) 것이 아니다. 주의집중해(attending) 그 청각 자극에 의미를 부여하고(understanding) 기억해야(remembering) 내 것이 된다.---3장 ‘공부도 소통이다’중에서
호주 원주민 중 한 부족인 참사람 부족은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발견하는 것은 (단지 자기 수행과 표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당신 존재의 어떤 차원에서 그 사람과 똑같은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당신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현재의 대통령을 포함해 많은 사람의 소통에 대해 나쁜 점과 좋은 점을 지적했다. 내 눈에 그러한 점들이 보였다는 것은 내게 그러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나를 포함한 우리가 이 책이 언급한 여러 경우들을 거울삼아 보다 나은 사람으로 깊어져갔으면 좋겠다.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