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화는 소복 단장에 쾌자까지 두르고 온갖 몸짓, 갖은 교태를 다 부려가며 손을 비비다, 절을 하다, 덩싯거리며 춤을 추다, 하고 있다. 부뚜막 위에는 깨끗한 접시불(들기름불)이 켜져 있고, 그 아래 차려진 소반 위에는 냉수 한 그릇과 흰 소금 한 접시가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지금 막 그 마지막 불꽃이 나불거리고 난 새빨간 불에서 파란 연기 한 오리가 오르는 『신약전서』의 두꺼운 표지는 한머리 이미 파리한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모화는 무엇에 도전이나 하는 것처럼 입가에 야릇한 냉소까지 띠우며 소반에 얹힌 접시의 소금을 집어 인제 연기마저 사라진 새까만 재 위에 뿌렸다.
"서역 십만 리 예수 귀신이 돌아간다. 당산에 가 노자 얻고, 관묘에 가 신발 얻고, 두 귀에 방울 달고, 방울 소리 발맞추어, 재 넘고 개 건너 잘도 간다. 인제 가면 언제 볼꼬, 발이 아파 못 오겠다. 춘삼월에 다시 오랴, 배가 고파 못 오겠다……."
모화의 음성은 마주(魔酒)같은 향기를 풍기며 온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 보석 같은 두 눈의 교태와 쾌자자락과 함께 나부끼는 손짓은 이제 차마 더 엿볼 수 없게 욱이의 심장을 쥐어짜는 것이었다. 욱이는 가위 눌린 사람처럼 간신히 긴 숨을 내쉬며 뛰어 일어났다. 다음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뛰어 나온 그는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가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집어 들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냉수 그릇을 집어 들기 전에 모화의 손에는 식칼이 번득이고 있었고, 모화는 욱이와 물그릇 사이에 식칼을 두르며 조용히 춤을 추는 것이었다.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너 이제 보아하니 서역 십만 리 굶주리던 잡귀신하,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헤 깎아질린 돌 벼랑헤, 쉰 길 청수헤, 엄나무 발에 너희 올 곳이 아니다. 바른손헤 칼을 들고 왼손헤 불을 들고, 엇쇠 서역 잡귀신하 썩 물러서라."
이때, 모화는 분명히 식칼로 욱이의 면상을 겨누어 치려하였다. 순간 욱이는 모화의 칼날을 왼쪽 귓전에 느끼며 그의 겨드랑의 밑을 돌아 소반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들어 모화의 낯에다 그릇채 끼얹었다. 이 서슬에 접시의 불이 기울어져 봉창에 붙었다. 욱이는 봉창에서 방으로 붙어들어가는 불길을 잡으려고 부뚜막 위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물그릇을 뒤집어쓰고 분노에 타는 모화는 욱이의 뒤를 쫓아 칼을 두르며 부뚜막으로 뛰어올랐다. 봉창에서 방문으로 붙어들어가는 불길을 덮쳐 끄는 순간 뒷등어리가 찌르르하여 획 몸을 돌이키려 할 때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은 허옇게 이를 악물고 웃음 웃는 모화의 품속에 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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