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그 누구도 절대로 내게서 이 말을 꺼낼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절대로 나로 하여금 그에게 진실을 말하도록 할 수 없을 것이다! 난 이를 악물고 몇 년 동안 해온 거짓말을 계속할 것이다! 뭐라고? 웬 빅토르? 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생각을 하는 거니? 거울을 보렴, 아들아. 넌 우스우리만큼 날 닮았잖니! 코도, 눈도, 눈썹도,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기는 바보 같은 습관도…. 말할 필요가 있겠니? 웬 바보 같은 농담이람. 나는 그에게 말할 것이다. 넌 이성적인 사람이라 왜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꾸며냈는지 잘 알겠지! 맞아, 바로 그거야! 누가 날 비난할 수 있겠니? 그들은 두 번이나 너를 내게서 빼앗을 수 없을 거야. 난 끝까지 내걸 지킬 거고, 내 선의의 거짓말은 그들의 썩은 진실을 극복해낼 거야!
나는 긴장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는 거듭해서 아이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떠나기 전 소년은 이발했고, 습관적으로 입술을 양옆으로 잡아당기며, 이마에 흘러내린 앞머리를 계속해서 넘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두 개의 성」중에서
오늘 밤 아빠가 떠났다. 오빠와 나는 처음으로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는 현관에서 구두솔로 구두를 닦았고, 우리는 곁에서 어슬렁거렸다. 나는 팔걸이와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오빠는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입을 다문 채 아빠의 행동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빠는 즐겁고 활기가 넘쳤다. 어쨌거나 그렇게 보였다. 나는 아빠가 떠나지만 아직 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으레 그렇듯이 천천히 짐을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빠는 벽에 걸려 있는 엄마의 초상화만큼은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긴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마치 뒤돌아보는 것처럼 몸을 절반 정도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펠트펜으로 그려진,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초상화 말이다. 이 그림은 엄마 친구인 로자 이모가 그렸다. 로자 이모는 기자였다. 그녀는 ‘푸른 손수건’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울기 시작하는 고양이가 있었다. 나도 그랬다! 나도. 고양이도, 로자 이모도….
---「토요일에 눈이 내리면」중에서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창문의 격자와 창틀 사이에서 예전에는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빨간색, 빛나는 노란색 그리고 하얀색 립스틱이 있었는데, 그것은 전혀 필요한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약간 먼지가 끼어 있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나를 놀라게 한 건 립스틱의 불필요함이 아닌, 그 개수였다. 나는 선생님이 입술을 꼼꼼하게 관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사람의 입술을 위해 이렇게나 많은 립스틱이 필요한 걸까?
똑같은 리듬을 스무 번 반복한 후 나는 피아노 의자에서 일어나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립스틱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립스틱 한 개를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추리가 어떤 결과를 낳을까? 당시 나는 남의 물건을 가져간다는 것이 도둑질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초록 대문 너머의 집」중에서
예기치 못한 나의 콘서트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의 마음에 큰 반전을 일으켰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예술이 갑자기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단 한 방울로 인간을 유혹해 곱사등으로 만들어 끌고 가려는 악의 바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동년배 빡빡머리 중 한 명이 복역을 마치고 위대한 힘으로 자신의 운명의 관성에 맞서 싸워 보통의 삶의 궤도로 탈출한다면, 나는 오래 전 그 예술의 한 방울이, 순진했던 나의 그 콘서트가 구제불능이었던 인간의 귀중한 노력에 힘을 보탰다는 생각에 흐뭇할 것이다.
---「애서가 모임의 예기치 않은 콘서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