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분 후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대충 안정됐으니까 지금 계단으로 집까지 올라갈게. 당장 식사할 수 있도록 아침 식사를 준비해 줘. 배가 무척 고프거든, 하고 남편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즉시 프라이팬을 달구어 팬케이크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컨도 구웠습니다. 메이플 시럽도 적당한 온도로 데웠습니다. 팬케이크라는 건 결코 복잡한 요리는 아니지만, 순서와 타이밍이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팬케이크는 접시 위에서 점점 식으며 굳어갔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님 댁에 전화를 걸어봤어요. 남편이 아직 거기에 있나요, 하고. 그랬더니 벌써 오래전에 돌아갔다고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녀는 내 얼굴을 보았다. 나는 잠자코 얘기를 계속하기를 기다렸다. 여자는 스커트 무릎 위에 있는 가상의 형이상적 먼지를 손으로 털어냈다.
"남편은 그곳에서 사라져버린 겁니다, 연기처럼 말이에요. 그 후로 전혀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24층과 26층을 연결하는 계단 어딘가에서 흔적도 없이 우리 앞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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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페이가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이런 말을 했다. 피를 나눈 부자지간이기는 해도, 다정하게 무릎을 맞대고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허물없는 사이는 아니었으며, 아버지가 인생에 대해서 철학적인 (아마도) 소견을 피력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상황이 선명하게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떻게 하다가 그런 얘기까지 하게 됐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지만.
"남자가 일생 동안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여자는 세 사람밖에 없다. 그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지"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니, 단언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는 담담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마치 지구는 1년이란 시간을 들여 태양 주위를 일주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준페이는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런 말을 별안간 들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고, 적어도 그 시점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적당한 의견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만일 네가 앞으로 여러 여자를 만나고 사귄다고 하더라도" 하고 아버지는 계속 말했다. "상대를 잘못 고르기라도 하면 그건 모두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리지. 그 점을 똑똑히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뒤에 가서야 몇 가지 의문이 어린 아들의 머리에 떠올랐다. '아버지는 세 여자를 이미 만난 것일까? 어머니는 그 가운데 한 사람일까? 그렇다면, 나머지 두 여자 사이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처음얘기로 돌아가자면, 두 사람은 마음을 활짝 열고 얘기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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