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에 단편 「이른비 늦은비」「바보들의 나라」가 발표되어 등단, 방송대 국문과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대신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침거해 글만 쓰는 전업작가다. 주요 작품에, 문화관광부의 한국문학특별창작기금 1천만원 수혜 창작집 『살아 있는 전설』과 『삼국지』『적자생존』『삐삐용군단』 등 장편 여러 편이 있다. 『월간문학』 신인작품상과 한국기독교문화예술대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고, 한국문화평화포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유명한 점쟁이를 집으로 불러 이제 막 출생한 다섯째 아들의 운명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점쟁이가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을 했다.
“이 아이의 사주는 귀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꼭대기에 턱이 져서 앞이 낮고 뒤가 높으며 뒤에는 두 개의 뿔이 날개처럼 달린 관이 머리에 얹혀 있는 사주입니다.”
“꼭대기에 턱이 져서 앞이 낮고 뒤가 높으며 뒤에는 두 개의 뿔이 날개처럼 달린 관이라고요? 그런 모자가 무슨 모자지요?”
“쉿! 익선관翼蟬冠입니다.”
“뭐라구요? 익선관이라면 바로…….”
“그렇습니다. 임금이 평상복으로 정사를 보거나 백관을 다스릴 때 쓰는 관입니다. 하니 이 무서운 사주를 함부로 소문을 내거나 다른 점쟁이들한테 경솔히 물어보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십시오. 그럼 소인은 이만…….”
점쟁이가 도망치듯 방을 나갔다. 문제의 아이를 낳은 트레머리한 여인은 훗날 태조 이성계의 정비 신의왕후가 될 한 씨이고, 아이는 조선 제3대 임금 태종이 될 이방원이었다. 점쟁이는 유명한 문성윤이란 사람이었다.
점쟁이가, 곤룡포와 함께 제사 때 쓰는 면류관冕旒冠, 정무를 보거나 조칙을 내릴 때 쓰는 통천관通天冠, 만조백관으로부터 조하를 받을 때 쓰는 원유관遠游冠 등 여러 왕관 중에서 하필 익선관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은, 장차 아이가 임금이 되면 평상복으로 정사를 보듯이 오래도록 용상에 앉아 있겠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다.
점쟁이뿐만 아니라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문신이며, 저 유명한 <위화도 회군> 때 이성계의 회군 결행에 적극 동참함은 물론, 정도전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을 개국하였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 의해 살해된 남은도 이방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할 때 매양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에게서는 하늘을 관통할 기이한 영기가 뻗친다.”
이렇듯 이방원은 출생하면서부터 남달랐다.
원나라 지정 27년, 그러니까 고려 공민왕 16년인 1367년 5월 16일, 조선왕조 발상지로 유서 깊은 함흥부 후주의 사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눈에서 총기가 불덩이처럼 번득였고, 아이답지 않게 기골이 장대하고 언행이 또깡또깡했다.
무엇보다 글 읽기를 형제들 중에서 가장 좋아했다. 학문이 날로 진보해 불과 16세 때 고려 제술과 ── 고려 시대 때 과거의 한 과목. 문신을 등용하기 위한 시험으로 시詩ㆍ부賦ㆍ송頌ㆍ책策 등의 한문학으로써 시취하였음. 진사과라고도 함 ── 의 진사 시험에 급제했고, 이듬해 1383년에는 병과 7등으로 과거에 급제했다.
아버지 이성계는 대대로 무장 집안인데 문과에 급제한 엉뚱한 아이가 툭 불거지자 이 특별한 다섯째 아들을 “별놈이 태어났다.”는 듯이 자랑스럽게 여겨 다른 아들들과는 내심 다르게 대했다.
아버지 이성계의 성품은 엄격하고 신중했으며 말수가 적었다. 특히 평상시에는 자주 눈을 감고 앉아 있기 때문에 위엄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사람을 접견할 땐 부드러움과 자상함이 강물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존경했다. 게다가 여러 장수 중에서도 그만이 유독 휘하 병졸들을 예로써 대하며 자기 몸처럼 아꼈다. 여간해서 꾸짖거나 노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장수의 휘하 병졸 모두가 그의 휘하에 있고 싶어 할 정도로 그의 인간미와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그는 크고 우뚝한 코에 마치 성난 용의 얼굴처럼 생긴 인상이었는데, 이방원의 용모가 그랬다. 아들 중에서 그가 유난히도 아버지를 가장 많이 빼닮았다.
이성계는 본디 유술을 존중했다.
따라서, 그는 일찍이 인과 예를 근본 개념으로 하며 수신에서 비롯하여 치국평천하에 이르기까지 실천을 그 중심 과제로 삼는, 곧 유학儒學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가문에 하나도 없음을 항상 불만으로 여기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다섯째 아들 방원으로 하여금 학문을 익히도록 했고, 그 아들이 글 읽기를 싫어하지 않고 밤마다 책을 큰 소리로 읽으면,
“고맙다. 장차 내 뜻을 이룰 놈은 너뿐이로구나.”
하고 든든해했다.
반면에 장차 신덕왕후가 될 계비 강 씨는, 이방원을 자기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시기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방원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저렇게 똑똑한 놈이 어찌하여 내 몸속에 잉태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저놈이 장차 이 집안에서 가장 큰 인물이 될 거야. 그러면 그 일을 어찌할꼬?”
하고 자신이 낳은 아직 어린 두 아들의 장래를 벌써부터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