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주가 헌제의 경악할 손금도 손금이지만, 그보다 그의 용꿈이라는 태몽 때문에 일차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이유는 순전히 그녀의 어머니가 유언으로 남긴 이상한 말 때문이었다.
여교주의 어머니 변강숙은 충청남도 P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그녀는 여고를 마친 후 잠시 부모의 농사일을 거들며 어여쁜 처녀로 성장하고 있었다. 시집갈 나이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보기 드문 미모도 미모지만 우선 몸매가 빼어났다. 당시 유행하던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주름치마에 휘감긴 그녀의 육감적인 엉덩이는 마을 총각들의 성기를 밤마다 발딱발딱 일어서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눈이 너무 높고 콧대가 높아서 잔챙이 같은 마을 총각들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마을의 산들이 단풍으로 불타고 선들바람이 선들선들 부는 화창한 가을날 강숙이는 바람이 들려고 그런지 왠지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동네 처녀들과 마을길에서 잠시 깔깔대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시집 안 간 처녀는 길바닥의 말똥만 봐도 키득댄다더니 그녀들은 우습지 않은 말에도 그렇게 허리를 얄기죽거리며 깔깔댔다.
바로 그때였다.
돌연 어디선가 불길이 야울야울 타오르는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니,
쉬익 ──
하는 광풍 같은 이상한 굉음과 함께 어디선가 커다란 불덩어리가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러더니 그 불덩어리가 강숙이의 치마 속으로 퐁 들어가 버렸다. 다른 처녀들도 그것을 똑똑히 봤다.
“으악!”
강숙이는 너무 놀라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어머나, 강숙아! 정신 차려, 강숙아!”
“이게 무슨 일이야? 방금 그게 뭐였지?”
“불덩어리였어. 사람 머리통만 한 커다란 불덩어리! 그게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았어.”
“그럼 혹시 벼락이 떨어진 거 아냐?”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벼락은 무슨 벼락이야? 그리고 그게 왜 하필강숙이의 치마 속으로 들어갔지?”
“알았다! 그럼 도깨비불 아냐?”
“대낮에 도깨비는 무슨 도끼비야? 참, 그럼 혹시 사람이 죽을 때 나간다는 혼불 아닐까? 혼불은 낮에도 날아다닐 수가 있잖아.”
“그래, 맞았어! 혼불인가 봐. 아이구, 무서워!”
처녀들 중엔 기절한 강숙이를 일으켜 급하게 업으려는 사람도 있었고 공포의 얼굴로 도망을 치려는 사람도 있었다. 파란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길가엔 코스모스들이 화창한 햇살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이상한 불덩어리는 분명히 벼락은 아니었다.
그리고 혼불이라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기 이삼일 전이나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육신에서 종발만 한 크기의 혼불이 나간다는 말이 있긴 하나 그건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근거 없는 말일 뿐, 사람의 육신에서 혼불 같은 무슨 불덩어리가 담배 연기처럼 소리 없이 나가는 것을 가족이나 누가 직접 본 사람이 그 마을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정말 혼불이 있다면 그게 왜 하필 사람의 치마 속으로 들어갔겠는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든지 아니면 저 세상을 향해 어디로든지 사라져버려야지. 이건 처녀들이 순간적으로 느낀 생각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제7부 치마 속으로 이상한 불덩어리가 들어간 여자
기절했던 강숙이가 가느다란 신음 소리를 몇 번 내는 것 같더니 금방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옷의 흙을 털면서 자신의 치마를 걷고 여기저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분명히 무슨 불덩어리가 치마 속으로 들어갔는데 아무 데도 화상을 입거나 상처가 난 곳이 없었다. 참으로 이상하고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녀의 그다음 행동이었다.
갑자기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푹 꿇어앉더니 쌍꺼풀진 예쁜 눈을 무섭게 치뜨며 하늘을 우러러 미친년처럼 뭐라고 부르짖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뭔가를 손으로 받듯이 두 팔을 쫙 벌리기도 했다. 그 이상한 행동에 처녀들은 강숙이가 갑자기 실성한 줄로 알고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강숙이가 미친년처럼 하늘을 우러르며 마치 누구와 대화라도 하듯 부르짖는 소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뭐라구요? 강님도령이시라구요? 강님도령이 누군데요? 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예? 그저 듣기만 하라구요? 알았어요. 그럼 듣기만 하겠으니 다시 말씀해 주세요.”
“강숙이가 왜 저러지?”
“미쳤다! 무슨 불덩어리가 치마 속으로 들어가더니 실성했는 모양이야. 빨리 강숙이네 집에 알리자!”
“기다려봐, 좀 더 들어보자.”
처녀들이 공포에 질려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강숙이는 두 팔을 쫙 벌린 채 계속 혼자 하늘을 향해 부르짖고 있었다.
“아이고, 강님도령님! 예예,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예? 뭐라구요? 너는 이제부터 신령한 국사(國師)의 몸이 되었으니 미련하고 불쌍한 중생들을 옳은 길로 교도하라구요? 그리고 특히 가난하고 불쌍한 병자들을 치료해 주라구요? 제가 무슨 재주로 그렇게 해요? 저에겐 그런 의술을 베풀 만한 재주가 없는데요. 예? 하늘에서 저에게 그런 신령한 의술을 영적으로 내려주시겠다구요? 그리고 영안을 열리게 해주시겠다구요? 영안이 뭔데요? 영안이란 영적 눈을 뜨게 하는 거라구요? 더 크게 말씀해 주세요. 음성이 점점 멀어져서 잘 안 들려요! 안 돼요!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이 점점 멀어지는지 강숙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좇아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계속 하늘을 우러러 음성이 안 들린다고 소리치며 어느새 부근의 언덕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미친년이었다.
처녀들이 너무 놀라 한동안 보기만 하다가,
“실성한 게 틀림없다, 빨리 붙잡아! 저러다가 언덕에서 떨어져 죽으면 어떡해?”
누군가가 소리치자,
“그래, 빨리 붙잡자! 동네 사람들을 불러!”
하고, 모두 우르르 뒤좇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숙이를 따를 수가 없었다. 어찌 된 셈인지 강숙이의 몸이 갑자기 나는 듯이 빨랐던 것이다. 그렇게 신기할 정도로 강숙이의 몸이 빨라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미모와 빼어난 몸매에 걸맞잖게 유독 운동 신경이 둔해서 학교에서도 달리기를 할 땐 언제나 꼴등이었는데 지금은 마치 바람 같았다. 어찌나 빠른지 금방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처녀들은 강숙이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수풀이 무성한 언덕 한 곳에서 강숙이의 모습이 잠깐 희번덕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어느새 강숙이의 모습이 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분명히 수풀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는데 처녀들이 뛰어갔을 땐 어디에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아니면 무슨 짐승한테 물려갔는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그 언덕의 수풀 속엔 가끔씩 늑대와 여우 그리고 산돼지가 나타날 때가 많았던 것이다.
--- --- 제7부 치마 속으로 이상한 불덩어리가 들어간 여자
처녀들이 강숙이를 다시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약 한 시간쯤 후였다. 발견 당시 강숙이는 야트막한 마을 뒷산의 꼭대기 바위 위에 혼자 꿇어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주문을 외듯 뭔가를 열심히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엄숙할 수가 없었다. 아니, 감히 말을 붙이거나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얼거리는 기도의 내용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처녀들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설고 이상한 기도의 내용이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제7부 치마 속으로 이상한 불덩어리가 들어간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