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보다 더 괴로운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수당도 안 주면서 주말 근무까지 시켰던 과장, 회식 때마다 노래와 춤을 시켰던 부장, 회사 근처 맛집 탐방을 함께했던 대리, 잔심부름을 도와줬던 사원까지. 누군가는 그녀에게 “너 곧 정규직 될 거래.”라고 말해줄 것 같았는데 모두들 조용했다. --- p.29
“앞으로 두 언니가 이것과 관련된 콘텐츠를 구성하면 돼요.” 뭐? 언니? 설마 지금 우리 보고 언니라고 한 건가? 놀라서 눈을 치켜뜨고 보니 과장이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딱히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첫 직장 외에는 프리랜서와 계약직으로 일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강하게 항의하려던 찰나 선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직급이 없는 거지, 이름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 p.63
팀장은 새벽 3시까지 카톡으로 업무를 지시했고 팀원들은 각자의 집과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풍경은 ‘디지털 노마드’인데, 실상은 ‘디지털 메이드’였다. 나는 그때 처음 만났다. 입도 아니고 손가락으로 밤새 화내는 사람을…. --- p.83
“처음부터 ‘싫다’라고 말했어야지!” 그녀의 대답에 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이렇게 물었다. “매일 12시간 이상 사무실에서 내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 바로 ‘No’라고 대답하는 게 쉬워요?” 그러자 그녀는 “요즘 애들은 엄청 당돌하지 않나?”고 받아쳤다. --- p.115
“우린 오래 같이 일할 사람을 찾아요. 아시죠?” 이날은 불합격을 작정하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면접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비전 없는 회사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사람을 뽑으시려면, 일단 이런 식의 면접보다는 회사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시는 게 어떨까요?” --- p.128
대한민국 평균에도 진입하지 못하는 삶이지만, 그래도 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점심시간에 친한 동료와 상사를 욕하며 마시는 달콤한 바닐라 라테, 야근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남편과 간 영화관, 주말에는 자유롭고 싶다며 떠났던 여행 등 아주 당연한 일상이지만, 그놈의 월급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퇴사한다고 바닐라 라테, 영화, 여행이 필요 없어질까? 글쎄다. 우린 이미 이런 삶에 길들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