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올리는 음식 중에는 과정을 생략하거나 재료를 뺄 수 있는 음식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참 많아요. 제대로 재료를 넣고, 제대로 조리해야만 비로소 제 맛이 나게 되는….
사람 사는 것도 꼭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건너뛰어도 되는 일이 있지만 그 시기에 꼭 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다 보니 자식 된 도리, 아내 된 도리, 부모 된 도리를 제대로 하면서 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드네요. 마치 깨끗이 씻은 굴을 얌전하게 밀가루에 굴리고 달걀물에 담근 다음, 약한 불로 느긋하게 지져낸 굴전처럼 정갈하고 향긋하게,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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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가 다섯입니다. 시어머니와 다섯 며느리끼리 점심을 먹기로 벌써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버이날인 오늘, 예정대로 어머니 모시고 점심 먹고 왔습니다. (중략) 고기 구워 먹으면서 동서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잔잔한 행복이랄까? 뭐, 그런 게 느껴지더라고요. 동서지간이라는 게, 가깝자고 들면 한없이 가깝고, 또 멀자면 끝없이 먼 관계죠. (중략) 그렇지만 오랫동안 서로 이런저런 일을 지켜보면서 살다 보니, 동서라기보다는 친구 같다는 생각도 들고, 같이 나이 먹어가는 여자들로서 뭐랄까. 연민 같은 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래서, 어버이날 고부만의 점심 모임, 아주 오래도록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봤어요. 아주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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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엄마, 난 엄마의 뭘까? 자식이라고 엄마에게 너무 치대기만 하는 것 같죠? 이 나이가 되도록 배추김치 한번 제대로 담글 생각하지 않으면서 엄마 눈치만 보고, 국간장은 그렇게 퍼가면서 장 담그는 일은 엄마에게 다 떠넘기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지, 태어난 지 사흘 된 핏덩이, 엄마에게 떠 안겨서, 그 바람에 외손녀 하나에 친손자 둘까지, 손자들 셋 키우느라고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다리의 관절염도 심해지고…. 제 탓이에요. 엄마가 손자 키우느라 고생한 건…. (중략)
미안해, 엄마. 내가 엄마 호강시켜줘야 되는데, 그게 생각뿐이지 맘대로 안 되네. (중략) 엄마 울어? 울지 마, 엄마. 엄마 울리려고 이런 소리 하는 거 아냐. 대구찜 먹다가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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