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바다흐샨에 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여행에 나설 경우 차 밑에 폭탄을 설치해 죽이겠다고 탈레반이 위협했다. 그들은 정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성들을 싫어하고 자기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나의 태도는 더더욱 싫어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를 암살하려 한다. 최근에는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가족을 위협하고, 여행 내내 쫓아다니며 내 차가 지나갈 때 폭탄을 터트리려 한다. 심지어 경호하는 경찰차량에 총격을 가하기까지 했다. 총격은 30분 동안 계속됐고 경찰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는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 알지도 못한 채 차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부패를 일삼는 이 나라의 지도층과 탈레반 모두, 그들을 서슴없이 비판하는 내가 죽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날도 경고를 무시했다. 무시하지 않으면 해야 할 일들을 할 수가 없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위협을 당하면 겁이 난다. 매번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이 위협의 성질이며, 이 전술을 사용하는 자들은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새벽 6시에 열두 살 된 큰딸 샤햐자드를 살며시 깨웠다. 그리고는 며칠이 걸릴 여행에서 만약 내가 집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동생 슈흐라에게 이 편지를 읽어주라고 말했다. 샤하자드가 질문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난 아이의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그녀와 잠들어 있는 슈흐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 나는 내가 살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나라 최빈민 지역의 대표로서 일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사명과 사랑스런 딸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다. 내게 의지하고 있는 그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 결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p.프롤로그
나는 태어나던 날부터 죽음의 문턱에 섰다. 그 후 35년간 수없이 죽을 위험을 겪었지만, 아직 살아 있다. 내 명이 이렇게 질긴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신께서 어떤 목적을 주신 게 아닌가 싶다. 이 나라를 부패와 폭력의 심연에서 이끌어내라고 살려두신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단순히 딸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라고 살려주신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아버지의 23명 자녀 중에서 열아홉 번째 자식이고 어머니에게는 막내딸이다. 어머니는 두 번째 부인이었다. 날 임신했을 때 어머니는 이미 낳은 일곱 아이들로 인해 육체적으로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아버지가 나이가 한참 어린 일곱 번째 아내를 새로 맞아들인 것 때문에 상심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죽기를 바라셨다. 나는 들판에서 태어났다.---p. 14
만찬이 열릴 때마다 아버지는 모든 게 완벽하길 기대했다. 쌀은 보슬보슬 낟알이 다 떨어져야 했다. 요리가 기대에 부응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아내를 잘 골랐다고 만족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만약 낟알이 몇 개라도 붙어 있으면 그의 낯빛은 어두워졌다. 손님들에게 점잖게 실례를 구하고 부엌으로 들어와 말 한마디 없이 어머니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들고 있던 국자를 빼앗아 그녀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면 어머니는 이미 전에 맞은 매질로 인해 흉터투성이인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가끔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일어나 피가 더 나지 않게 뜨거운 재를 머리에 문지르고, 다시 부엌일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하인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다음에 나갈 쌀알들이 완벽히 떨어지게 하는 데 집중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이런 처벌을 견딘 이유는 그녀가 사는 세상에서는 매질이 사랑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남자가 아내를 때리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거야”라고 어머니는 내게 설명했다. “네 아버지는 엄마한테 큰 기대를 걸고 있어. 그래서 엄마가 실망시켰을 때 때리는 거야.”---p. 24
나는 ‘아버지가 살아 있어, 아버지가 살아 있어’라고 생각하며 뛰어나갔다. 이제 모든 게 괜찮아질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버지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사람들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 질서를 회복할 것이다. 맨발로 달려나가다가 순간 죽은 듯이 멈춰 섰다. 어머니가 자기 옷을 쥐어뜯으며 흐느끼고 있었다. 어머니 앞으로 달려나갔을 때 거기 아버지 시체가 있었다. 총을 맞은 두개골 윗부분이 뜯겨나간 상태로. 나는 울기 시작했다. 아직 일의 심각성을 충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이제부터 우리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장례를 치르기 전에 시신을 방으로 모셔다 눕혔다. 어머니가 다음 날 장례를 위해 시신을 준비하러 따라 들어갔다. 아내들 중에서 내 어머니만이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방에 들어갔다. 아주 가끔씩 남편과 아내로서 누워 이야기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고, 또 나와 다른 오빠, 언니들을 잉태했던 그 방에서 어머쾴는 지금까지 가혹한 삶의 시련들을 모두 견뎌냈듯 그 일을 견뎌냈다. 품위 있게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악을 쓰거나 울부짖지 않았다. 조용히 신이 바라시는 대로 시신을 닦고 준비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처럼 돌아가신 순간에도 어머니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p. 55
이런 정치적 격변이 일어나던 열다섯 살 시기는 인생에서 매우 우울한 기간이었다. 도시를 돌아다니려면 내 평생 처음으로 부르카를 입어야 했다. 무자헤딘은 종교적으로 근본주의가 아니라서 부르카를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입는 건 안전상의 문제였다. 수년간 여자 구경도 못하고 전쟁으로 거칠어진 남자들이 주위에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젊은 여성이 얼굴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과거에 부르카를 입는 것은 고결함의 표시였지만 동시에 실용적인 용도도 있었다. 부르카는 거센 폭풍우와 이글거리는 태양, 모래 먼지와 가혹한 바람으로부터 여자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많은 서양인이 부르카를 여성 억압과 종교적 근본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보지 않는다. 누구든 자신이 좋다고 여기는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 물론 이슬람의 한계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말이다.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고 팔과 가슴과 엉덩이 부분이 드러나지 않는 헐렁하고 긴 튜닉을 입는다면, 그것으로 신 앞에서 단정해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을 지키기에 충분하다. 여자가 얼굴을 전부 가려야만 진정한 이슬람교도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는 이유는 이슬람 율법에서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개는 문화적 혹은 사회적 이유 때문이다. 일부 서양 국가에서 부르카를 입는 무슬림 여자들이 정치적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다. 부르카 착용을 법으로 금지하려는 정치인들도 있다(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이미 부르카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유럽과 다른 서양 국가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옮긴이). 자국의 문화와 법을 결정하는 것은 각 나라 정부의 권한이지만, 선택의 자유도 우리가 존중해야 할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서양 정부들이 무슬림 여성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입게끔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p. 77
‘가족.’ 간단한 단어지만 아마 아이가 배우게 될 가장 중요한 단어일 거야. 가족은 아이에게 고향이자 안전하고 따뜻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피난처야. 비가 내리든 우박이 쏟아지든 로켓포나 총탄이 밤하늘을 가르든 가족이 옆에서 아이를 지켜줘야 돼. 아이는 집 안에서 안전하게 옆에 서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엄마 품에서 곤히 잠들 수 있어야 돼. 그런데 지금 우린 그렇지가 못해. 슬프게도 너희를 포함해 이 나라의 많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모두 갖지 못한 채로 살아가고 있어. 엄마가 너희를 사랑하고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부디 기억해주렴. 부모를 모두 잃은 아이들도 있어. 전쟁에서 부모를 잃고 누구 하나 보살펴줄 사람 없는 가엾은 아이들이 이 나라에 너무나 많아. 부모뿐 아니라 형제자매도 아주 중요해. 엄마에게는 세다가 잊어버릴 정도로 많은 형제자매들이 있어. 대가족이라 서로 경쟁하고 질투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지. 특히 내 아버지의 아내들 사이에 그게 심했어. 하지만 아이들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낀 적은 없었어. 엄마들은 모든 아이들을 똑같이 사랑했고, 그렇게 많은 엄마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었어. ---p. 92
왜 무킴이 죽어야만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린 어떠한 답도 알지 못 한다. 상냥하고 똑똑하고 점잖은 청년을 누가 왜 죽였을까? 그는 제 힘으로 삶을 일궈나가려고 노력하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직업을 찾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가정을 꾸려가는 게 그의 소망이었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한순간에 생명을 빼앗겼다. 이슬람 문화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숨을 거두기 전에 알라의 이름을 세 번 불러야 하는데, 가엾은 무킴은 잠깐의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사랑하는 이들에 게 작별 인사할 시간도 갖지 못했다. 나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인사도 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왜냐고 물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우리 삶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p. 99
데흐마장Dehmazang이라는 지역에 도착했을 때, 택시가 한 대 보였다. 택시기사가 뒷자리를 치우고 거기에 시신들을 쌓고 있었다. 남자는 피범벅이었다. 흰 셔츠에 진홍빛 물이 들었고, 주머니와 단추 주위의 피는 검붉은색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그 차는 마치 도살장 같아 보였다. 전투 희생자들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사지가 배배 꼬이고 머리와 상반신이 너덜너덜한 남녀 시체들 밑으로 피가 줄줄 흘러 차체의 녹슨 구멍들을 지나 더러운 길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거기에 걸쭉한 피 웅덩이들이 고였다. 충격으로 거의 얼이 빠진 것 같은 그는 ?지땀을 흘리며 또 한 구의 시신을 차에 밀어 넣고 있었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시신을 빨리 매장하는 게 중요하다. 자기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이 그는 그저 쌀자루 싣듯 묵묵히 그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서 그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여름밤, 거리에는 그와 나 둘뿐이었다. 가끔씩 울리는 총소리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기 위해 생명을 걸고 있는 택시기사의 끙끙대는 소리만이 거리를 적셨다. 차에 더는 시신이 들어가지 않자 그는 파란 배기가스 구름을 일으키며 시동을 걸고 병원 쪽으로 차를 몰았다. 뒷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으며,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조수석에 늘어진 시신들의 팔다리가 춤을 추었다. 그 죽은 자들의 운명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이름 없는 희생자들의 얼굴이 자꾸만 내 가족의 얼굴과 겹쳐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p. 110
얘들아, 엄마도 우리 가족들도 다른 사람들의 친절 덕분에 살아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우릴 도와주었어. 위험으로부터 우릴 숨겨주거나 우리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했지. 우리만 그런 도움을 받은 게 아니야. 이 나라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었어. 어둠이 내린 후 지하 비밀 학교로 공부하러 가는 여자아이들을 모르는 척 눈감아준 이웃들에게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지. 그 학교는 용감한 아프간 여인들이 운영했단다. 자신이 위험에 처하더라도 탈레반이 파괴해버린 여성교육을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던 거야. 그 시절에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이 너무나 많았어. 수많은 여자들이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가장이 되어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했단다. 그러나 탈레반은 여자들이 일하는 것을 금지했어. 여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했어. 그래서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이 여인들은 낯선 이들의 친절에 의지해 구걸하며 살아야 했지.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고 그들의 많은 자녀들이 질병이나 굶주림으로 죽어갈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거리에서 구걸하는 이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사람들 덕분에 살아남은 여인들도 있었단다. 많이 갖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나눠주려 한 사람들이 있었던 거야. 이것이 바로 진정한 무슬림으로서의 행동이야. 우리가 배우는 이슬람 교리와 성스러운 코란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가르치잖니. 이드Eid 축제 같은 커다란 행사 때뿐 아니라 살아가는 매일매일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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