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황은 평소 무엇을 하는가
“왜황은 매달 초하룻날부터 보름까지 신에게 제례를 올리고 염불(念佛)을 하며 소식(素食)을 하고, 여자 시종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홀로 앉아 재계(齋戒)하며 지낸다. 보름부터 그믐까지는 거처와 음식을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한다. 왜황이 저잣거리에 노닐러 가면 백성들이 길을 양보한다. 궁실과 의복과 음식과 기용(器用)은 소박하고 검소하다. 궁중에서는 항상 고요하며 떠들지 않는다. 신불(神佛)로서 자처하는데, 나라 사람 모두가 그를 신으로 대우한다.”
-‘왜황(倭皇)’은 일본의 ‘천황(天皇)’을 가리킨다. 『화국지』에는 ‘천황’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덕무는 『화국지』에서 인용할 때 ‘천황’이라는 말을 되도록 피하고 대신 ‘왜황’으로 바꾸어 썼다.
일본인의 성격을 살핀다
“일본 사람은 대개 유순하면서도 굳셀 줄도 아나, 굳센 것이 또한 오래가지는 못하며, 약하면서도 인내할 줄도 아나, 인내하는 것이 또한 떨쳐 일어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총명하나 앎이 편벽되고, 민첩하나 기운이 국한되어 있다. 겸손할 줄 아나 남에게 양보할 줄 모르고,
은혜를 베풀 줄 아나 남을 포용할 줄 모른다. 새것을 좋아하고 기이한 것을 숭상하며, 친하고 가까운 이를 좋아하고 소원한 이를 버려둔다. 고요한 곳에 처하기를 좋아하고 여럿이서 살기를 싫어하며, 본업을 편안히 여기고 분수를 지키는 것을 기뻐한다. 교묘한 물건과 진귀한 완구에 몰두하나 근면하여 전일(專一)하기도 하다.”
-이덕무는 일본인에 대해 ‘근면하여 전일(專一)하다’라고 쓰기도 하였다. 『화국지』에는 이 말 뒤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이어진다. “온종일 똑바로 앉아 있으며, 게으름 피거나 하품하는 기색이 없다. 변고가 있으면 혹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으며 항상 정신이 뚜렷하다. 일이 생기면 힘을 하나로 합쳐 하는데 각자 자기 몫을 다하며 남에게 미루거나 질투하는 습관이 전혀 없다.”
재조지은을 다시 생각하다
“히데요시는 마침내 이해 8월에 오사카에서 죽어 대불사(大佛寺)에서 화장하였으니, 대불사는 히데요시가 지은 절이었다. 그 곁에 이총(耳塚)이 있는데 둘레가 120칸이고 높이는 다섯 칸으로 조선에서 포획해 온 사람의 귀와 코를 묻은 곳이다.…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동쪽을 정벌하신 일은 조선에 있어서는 재조지은(再造之恩: 멸망에서 구해준 은혜)에 해당하고 명나라에 있어서는 천하를 다스리는 체모를 얻은 것이니, 아아, 성대하구나!”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조선에 있어서는 재조지은(再造之恩)에 해당하고 명나라에 있어서는 천하를 다스리는 체모를 얻은 것”이라는 구절이다. 원중거는 『화국지』 「수적본말」에서 명나라가 조선에 원군을 보냈던 동기를 두고 날카로운 논평을 쓴 바 있다.…명나라가 일본의 조선 침략을 막은 것은 오직 조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국의 안전을 고려해서였다는 것이다.
맵고 짠 조선 요리, 달고 싱거운 일본 요리
“음식은 맛이 담박한 것이 많으니 이들은 기름진 것과 매운 것과 젓갈과 심하게 짠 것을 먹지 못하고 오로지 달거나 신 것을 좋아한다. 육축(六畜: 소, 말, 돼지, 양, 개, 닭)을 먹지 않으니 풍속에서 도살을 꺼려서 개와 말이 죽으면 모두 매장하고 혹 병자를 위해 약으로 쓰려 할 경우 소를 절벽에 세워두고 밧줄로 끌어내려 떨어뜨려 죽인 뒤 고기만 가져다 쓰고서 나머지 부분은 묻어준다.”
-원중거가 일본인의 유사(儒士)들에게 조선 요리를 주었을 때의 일화를 남긴 바 있다. 그는 “유사들은 우리나라의 음식을 맛보고는, 몹시 기이하게 여겼다. 맵고 짜고 기름진 것에 이르러서는 번번이 말하기를 기름기, 소금기, 매운 기가 너무 성하다고 하였다”며 조선에서 가져온 요리는 일본인의 입에 안 맞았다고 하였다. 조선 사절에게 일본 요리는 너무 달고 싱거웠고, 일본인에게 조선 요리는 너무 짜고 매웠던 것이다.
카스텔라와 스기야키
“승기악이(勝其岳伊)는 가장 진미(珍味)이다. 도미와 숙복(熟鰒)과 달걀과 미나리와 파를 끓여서 잡탕을 만든다. 어떤 마을에서 사람들이 삼나무 아래에 모여 앉아 각자 자기 집에서 재료를 하나씩 가져와 이것을 만들어 먹었다고 해서 ‘삼자(杉煮)’가 되었다고 한다.”
-‘승기악이’는 ‘스기야키[杉燒]’를 말한다. 스기야키에 대한 기록은 『화국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본인들이 즐겨 먹는 ‘스키야키’와 발음이 비슷하다. ‘스키야키’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찍이 일본 농민들이 농사지을 때 사용하던 호미(鋤: 일본어로 ‘스키’라고 함)를 불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여러 음식물을 구워서(‘야키’는 굽는다는 뜻) 먹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가장 유명한 설인데, ‘스기야키[杉燒]’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