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는 칠순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고혈압이나 신경통 같은 것 때문에 늘 고생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었기에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날도 어머니는 점심을 맛있게, 많이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슈퍼마켓에 가시다가 쓰러져 어느 중년 남자에게 업혀 오셨는데, 영영 운명을 달리하시고 말았다. 남들은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깨끗하게 돌아가신 것도 큰 복이다.”며 위로해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서럽다.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않은 채로 가셨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처럼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불효막심한 이 아들에게 마지막 효도로 만회할 수 있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안타까움 때문만도 아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이따금 “나는 점심을 잘 먹고 갈란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어머니의 교회 친구분들은 그것이 어머니의 기도 제목이기도 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배경이랄까, 그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그로부터 네 해 전, 풍을 맞고 일 년 넘게 자리에 누워 계시다 세상을 뜨셨던 것이다. 손발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에서 당신도 고생하고 온 식구들도 고생시키는 것을 내내 지켜보시면서, 어머니 마음에 다져진 결심이었음에 틀림없다. 어머니의 간절함으로 그 마지막 소원,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때문에도 놀라웠지만, 당신의 죽음조차 자식들의 고생을 덜어주는 ‘자식 사랑’의 연장선에 두고 사셨던 그 극진한 사랑에 나는 진실로 몸 둘 곳이 없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두 분의 돌아가시는 방법 가운데서 아버지의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두루 고생이 됐던 것은 사실이고 경제적으로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남게 됐을 망정,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자식에겐 불효를 벌충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됐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우리를 고생시키지 않고 편히 가셨다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불효 아들의 처지에선 벌충의 틈도 주지 않고 가신 데에서 온 충격과 한이 두고두고 남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고 먹을 것, 입을 것을 나누는 작은 기쁨조차도 제대로 안겨드리지 못한 죄와 한. 이제 와 한탄하니 회한만 더 깊어진다.
**********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효를 다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네.
《한씨외전韓氏外傳》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돈을 벌면 잘 해드려야지, 성공해서 잘 해드려야지, 하면 늦습니다. 부모님은 돈을 많이 번 아들, 크게 성공한 딸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고생하며 노력하는 모습 그대로의 자식을 기다리며 행복해하십니다. 저도 이따금 ‘아버님이 조금만 더 사셨더라면……. 이 순간을 어머님이 곁에서 지켜보셨더라면…….’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너무나 아쉽습니다. 언제나 믿음을 보내주셨던 부모님께 당신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까지 오래 기다려주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