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들에 낯선 감정은 있을지언정 나쁜 감정은 없다고 믿으려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과 고민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툭하면 지치고 무기력해질 때에도 이런 시간도 있는 법이라고 여기려 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향해 혀를 차고 한숨을 쉬는 버릇이 불쑥 튀어나와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시간 역시 나를 돌보는 과정이라 여기고 조급해하지 않으려 한다. 그럼으로써 내가 어떤 상황에 있건, 어떤 마음을 갖건 그저 나로서 만족하고 살아가는 것이 목표다. 더 나은 내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세상에 한 명 있는 것이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프롤로그 억지로 얻은 긴 휴가」중에서
잘하려다보니 긴장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조바심을 낸다. 하지만 그런 다짐과 마음가짐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이끈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그래서 무슨 일을 하기에 앞서 생각한다. ‘그냥 하는 거야’라고. 그러고 나면 어떤 결과 앞에서도 담담해질 수 있다. 이미 그려놓은 계획표가 없고 상상해둔 결과가 없다면, 실망할 일도 비교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나 기쁨이 다가올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고난과 불행도 찾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그때도 다시 그냥 하면 된다. ---「나를 위한 주문」중에서
살아갈수록, 내 인생이지만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건 얼마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고 하고 싶은 것도 사라져가는 시기에 스스로에게 영어 이름 하나 선물하는 일은 생각보다 폭신한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이름은 누군가가 붙여줘야만 하는 거라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다. 내 이름은 내가 직접 지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사람들은 그 이름으로 나를 불러준다. 그 사실만으로도 내 인생이 온전히 내 것인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넉넉해진다. ---「내가 지은 내 이름」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의 나이를, 결혼 적령기를, 임신 가능성을 염려했고 몇 명의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예비 신랑감을 구해주겠다며 혈안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웃음이나 심드렁한 말투, 발끈하는 표정으로 대응해왔지만 그들의 애정 어린(!) 조언과 참견이 반가웠을 리 없다. (중략) 지금 여러분 곁에 있는 수많은 싱글 여성들은 결혼 안 한 사람이기도, 언젠가는 결혼할 사람이기도 하지만 결혼이라는 말 없이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결혼이나 나이 말고도 생각할 것들과 걱정할 거리들을 잔뜩 안고 있는 사람들이며, 무엇보다 결혼과 나이에 관련되지 않은 다양한 질문에도 잘만 대답해낼 사람들이다. ---「마흔의 미혼을 위한 질문」중에서
매일 거울을 보며 이야기하고, 나를 쓰다듬으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일 없이도 조금씩 내 모습에 대한 초조함을 덜어갔다. 나는 대단한 걸 이루지 않아도 쓸모 있는 사람이며, 앞으로도 그 쓸모를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모든 과정은 남들과 비교하기를 멈추고 나서야 발견한 것들이다.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불특정다수를 의식하는 한, 진정한 나를 대면하고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유난히 약해서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을 의식하며 사느라 이미 충분히 지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