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다. 중국학 연구공동체인 한성漢聲문화연구소를 운영하면서 계간 《시평詩評》기획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통변역학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딩씨 마을의 꿈』, 『앵그리 차이나』, 『변경』,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핸드폰』, 『중국문화지리를 읽다』, 『문명들의 대화』등 80여 권의 중국 저작물을 한국어로 번역했다.
“황효경의 다른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녀의 허리가 탐났던 걸세. 한 줌에 움켜쥘 수 있는 그 허리 말일세.” 유약진의 머릿속에서‘쾅’하고 폭발음이 울렸다. 자신은 황효경과 십삼 년을 살면서도 그녀의 허리를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고 그녀의 허리가 다른 허리와 다르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바로 그 허리가 마누라로 하여금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게 하고 자신을 망가뜨린 것이었다. 그 허리를 자신은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갱생은 발견했던 것이다. --- p.46, 4장 〈유붕거〉 중에서
“홍량아, 거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더냐?” 홍량이라고 불린 어린 뚱보는 그 자리에 몸이 굳은 채 멍하니 있다가 잠시 생각해보고 나서 대답했다. “사람들이요.” 조 형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았다. “너희 엄마는 그렇게 가르쳤겠지. 하지만 거리에 나가면 온통 사람이 아니라 늑대들뿐이야.” 빡빡머리가 홍량을 꾸짖으며 말했다. “거리에 나갔다가 까딱 잘못하면 잡아먹힌단 말이다!” --- pp.143-144, 11장 〈조무상, 빡빡머리 최 형〉 중에서
“잡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다 가지려고 그러는 거지? 돈을 가지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가방 안에 있던 다른 물건은 내게 돌려 달라고.” 조 형은 유약진이 이토록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데 대해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유약진에게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 마작 테이블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내가 또 실수를 한 모양이군.” --- pp.162-163, 13장 〈유약진〉 중에서
“선생님들은 임보량이 하는 멍청한 소리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저와 유약진이 알고 지낸 건 맞는데 그렇다고 친구 사이는 아니에요. 오히려 원수지간이지요. 그가 제 돈을 빌려 가서 아직 안 갚고 있거든요.” 뚱뚱한 사람이 웃으면서 말했다. “원수지간이라니 잘됐군. 친구를 찾을 때보다 원수를 찾을 때 더 힘이 나는 법이니까 말이야.” --- p.393, 27장 〈인씨〉 중에서
엄격의 차는 다시 몇 바퀴 굴러 오환로 밖으로 나가떨어지더니 길가 나무에 부딪혀 튕겨져 오르면서 배수로에 처박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차 주변에는 마치 비가 온 것처럼 수십 마리의 양이 나뒹굴고 있었다. 양들은 차에서 튕겨져 나와 배수로에 처박혀 죽어 있었다. 차안에 있는 엄격도 피와 살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으로 핸들 위로 비스듬히 머리를 박고 죽어 있었다.
유약진은 6년 전 자신의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난 마누라와 이혼하고 고향인 하남을 떠나 북경으로 와 건축 공사장의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이혼해주는 대가로 그가 받은 것은 6년 후에 6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차용증 한 장뿐. 그 돈을 받아 자신의 식당을 차려 당당하게 사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다. 하지만 만기일이 다 되어 가던 시점, 유약진은 그 차용증이 담긴 가방을 도둑맞는다. 가방을 훔친 사람은 북경에서 도둑질을 해서 먹고사는 청면수 양지. 그런데 그 역시 유약진의 가방을 도둑맞는다. 그 후 청면수 양지는 자신의 노름빚을 갚기 위해 부촌의 빌라를 털고 그 와중에 여주인에게 발각되어 여주인의 핸드백만 집어 들고 도망을 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찾아온 유약진에게 훔친 핸드백만 던지고 도망친다. 유약진이 핸드백 안을 살펴보니 그 안에는 자신이 생천 처음 보는 USB라는 물건이 들어 있다. 문제는 거기에 고위층 관리의 뇌물 수수 및 성 상납 현장이 녹화된 동영상이 담겨 있는 것. 고위층에서 그 USB를 찾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쓰는 과정에서 유약진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추격전에 투입되고, 오직 자신의 가방을 찾는 데만 주력했던 유약진은 USB의 정체를 알게 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동네 미장원 주인에게도 제대로 호감 한번 표현하지 못했던 소심한 남자 유약진. 그는 쫓고 쫓기는 상황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추격자들과 거래를 하는 치밀한 남자로 변화하고, 사건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이야기가 물처럼 흘러간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침없이. 무엇보다도 유쾌하게. 이 소설의 재미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주인공들은 제가끔 비참한 사연들을 갖고 있다. 바닥의 인생들이다. 그러나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다. 삶의 바닥을 마침내 바닥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만이 눈물 대신 웃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작가 류전윈이 그렇고 주인공 유약진이 그렇다. 갈래갈래로 흘러가는 이야기들은 한꺼번에 뭉쳐 폭발한다. 무엇으로 폭발한다 할 것인가. 바로 이야기의 힘과 즐거움이다. 김인숙(소설가)
하나의 거짓말이 다른 거짓말을 폭로한다. 그의 유머는 역시 독보적이다. 류전윈은 눈부신 문학적 성취를 이뤄냈다. 틸먼 스펭글러(독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