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내 돈 주고 손톱깎이를 살 땐 인생의 큰 비밀을 알아버린 기분이 들었다. 한 세트의 가구를 꾸린다는 건 이렇게 티도 안 나는 숱한 것들에 돈을 쓴다는 의미였구나. 가끔 자취를 안 해본 친구들이 “너는 혼자 사는데 뭔 짐이 이렇게 많냐?”고 물으면 손톱깎이를 예로 들며 항변했다. “혼자 산다고 살림이 4인 가구의 4분의 1이 되진 않아. 네 돈으로 손톱깎이를 사보면 알게 될 거야.” ---「완벽한 손톱깎이」중에서
사람들은 누가 유럽 여행을 하다가 소도시 갤러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추상화나 조각상에 홀딱 반해서 종종 생각난다고 말하면 고상하게 여기면서, 공산품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 속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형미라는 건 예술품이건 일상 소품이건 어디에건 깃들어 있다. 현대 설치미술 전시회에 가보면 온갖 생활 폐기물이 예술이란 이름으로 나뒹구는데, 그에 비하면 요즘 나오는 가전제품들이 훨씬 아름답다. 그러니 그걸 보고 설레는 건 죄가 아니다. 요구르트 할아범도 이쯤은 이해해줄 것이다. ---「울부짖는 냉장고」중에서
내가 한때 사랑했고 여전히 가치 있지만 내게는 필요 없어진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 행운의 선물이 되어 다시 사랑받는 것. 그거야말로 내가 중고거래를 좋아하는 결정적 이유다. 단지 물건을 처분하고 싶다면 고물상을 불러 한 방에 보내는 게 간단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물건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었다. 모든 물건에는 그것을 설계하고 만든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것이 쉽게 버려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때 나는 오랜 친구들과 공들여서 긴 이별을 하고 있었다. ---「당신의 지도에는 없는 나라」중에서
나나 이곳 이민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엄밀히 말하면 히피 보다는 정장에서 캐주얼로 갈아입고 시골로 내려간 여피에 가깝다. 히피들이 색바랜 스카프를 주렁주렁 늘어놓고 ‘Don’t grow up’ 따위 카피를 써 붙인 방갈로에서 장기투숙하며 자아와 투쟁할 때, 조기 은퇴 자금과 크라우드펀딩으로 에코 리조트를 짓고 투숙객들의 돈을 긁어모아 유유자적 사는 사람들이랄까. 그래서 ‘히피’에 ‘모던’을 더한 거라고 주장한다면, 글쎄 애초에 ‘모던’과 ‘히피’가 어울리는 단어이기나 한지 의문이다. 대체 이게 무슨 60년 전통 김할머니 비건 곰탕 같은 소리냔 말이다. 미디어에서 그럴싸한 억지 네이밍을 만들어낼 때는 상업적인 의도를 먼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모던 히피 라이프」중에서
손빨래가 익숙해지자 다음엔 ‘하는 김에’라며 간단한 슬리브리스 탑과 요가 바지를 넣어보았다. 그다음엔 역시 ‘하는 김에’라며 티셔츠를 몇 장 넣었다. 건조대가 모자라서 집 앞 나무에 빨랫줄을 걸었다. 다음엔 바지를 빨았다. 그런 식으로 하는 김에, 하는 김에 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묵직한 전신 타월과 이불보까지 발로 밟아 빨고 있었다. 이건 내가 부자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시간 부자. 나는 돈 대신 남아도는 시간으로 맑은 공기와 태양을 샀고, 그래서 세탁기를 버릴 수 있었다. 나는 발맹 스타일 셔츠를 입고 빨래를 밟으면서 생각한다. ‘이게 바로 럭셔리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