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태어난 집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이삿짐을 싸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 집의 뼈대만 남겨두고 다시 수리하여 살았을 뿐 집에서 벗어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동네 슈퍼마켓을 하시던 아버지가 집 근처 하천부지를 사들여 전업농부로 전향하셨다. 키우는 작물에 꼬박꼬박 때맞춰 물을 줘야 하고 땅을 지켜야 하셨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짧은 여행조차 가기 어려웠다. 방랑벽이 심하다는 말띠로 태어난 나는 평생 똑같은 집에서 산다는 것이 참으로 답답했다. ---pp 16-17, ‘19년 동안 한 집에 살던 소녀’ 중에서
짐은 주인도 모르게 슬슬 몸을 불리는 것 같다. 이사올 때는 분명 호돌이리어카로도 충분했는데 나갈 때는 짐이 넘쳤다. 학생이 무슨 짐이 있을까 싶겠지만 두꺼운 전공책에 토익책이며 충동구매한 옷가지들이며, 하다못해 펜이 그득한 연필꽂이, 귀걸이, 머리끈, 자잘한 화장품 샘플까지 6개월 동안 꾸준히 소비한 업보인지 이사 때면 항상 힘에 부쳤다. 몇 번 이사를 다녀보니 무소유가 제일이라는 생각에 되도록 세간을 늘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pp. 21-22, ‘이사의 달인’ 중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남매이건만 오빠와 난 경제적 관념이 서로 달랐다. 짠돌이 오빠는 매달 나가는 월세 30만 원이 허공에 돈을 뿌려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오빠는 우리가 이사온 첫날부터 최대한 빨리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자고 설득했다. 오빠의 논리는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자는 형편인데 하루에 만 원씩 그냥 생돈이 나간다는 것이었다. 오빠는 ‘생’자에 힘을 주어 ‘쌩’돈이라고 한 번 더 강조해서 말했다. 나는 오빠의 조언을 수렴하여 이사한지 1년 만에 집을 내놓기로 했다. 2년 전세기간을 끝내기 전에 집을 내놓게 되면 복비가 우리 부담이었지만 당장 복비를 손해보더라도 월 30만 원 월세를 끝내야 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p. 43, ‘매일 만 원씩, 허공에 뿌리는 월세 30만 원’ 중에서
지금 사는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가볼까?
현재 보증금 3,000만 원에 월 30만 원인 원룸에 살고 있는 회사원 보나 씨. 모아둔 돈은 3,000만 원인데 매달 월세로 30만 원씩 빠져나가니 돈도 안 모아지고 아깝다. 대출을 받고 8,000만 원 정도의 전세로 옮긴다면 어떨까? 2,000만 원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대출이율을 연 6퍼센트라고 가정한다면 2,000만 원×0.06÷12=10만 원, 매달 내야 할 이자가 10만 원이라고 나온다. 월세 보증금과 모아둔 돈 합이 6,000만 원 그리고 은행대출 2,000만 원을 받아 전세로 옮기고 매달 10만 원 이자를 내며 사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물론 내 돈 3,000만 원을 은행에 넣었을 때 얻는 이자의 기회비용이 없어진다는 것도 고려하자. 또한 대출이라는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는 위험 요소도 생각해야 한다. 최근 가계대출로 인한 경제 위기도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출 이자도 사람마다, 이용실적에 따라 편차가 크다. 최근 위험해지고 있는 금융기관 위기를 고려해 대출은 제1금융권에서 받는 것이 좋으며 최근 전세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요즘에는 괜찮은 전세는 보자마자 계약하는 경우도 많다. -----p. 50, '“전세나 반전세나 똑같아” 과연 그럴까?‘ 중에서
1년에 2,500만 원을 올려달라니! 세입자로서 설움과 분노가 몰려왔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일이 터질 때는 배신감과 서러움이 생기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집을 사겠다는 대책 없는 반감이 확 올라왔다. 많은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전세금이 하도 오르는 통에 집을 사나 전세를 얻나 거의 비슷해질 판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p. 153, “나를 위한 집은 한 채도 없구나” 중에서
많은 집을 보다 보면 전세, 월세, 보증금, 매매와 관련된 숫자들이 머릿속에 절대로 저장되지 않을 터, 메모가 답이다. 예를 들면 ‘성신여대입구역 5분, 복층, 보증금 얼마, 관리비 10만원 남짓, 깨끗, 복도 어두움, 도배 해줌, 집주인 별로임.’ 간단해 보이지만 나중에 수많은 쇼핑 리스트들 중에서 선택을 하려면 꼭 필요한 정보다. 계약금액에 대해서도 나중에 계약을 할 때 집을 팔려는 부동산의 의지로 ‘지금 사시면 얼마까지 해드릴게요.’라는 친절한 가격이 있었다면 꼭 적어두는 게 나에게 유리하다. ---p. 175, ‘밤에 꼭 혼자 가보자’ 중에서
우리는 모두 집이 없었다. 집은 언제 사지? 바닥을 칠 때? 바닥이란 건 어떻게 알지? 바닥에 갈 때까지 나는 또 2년마다 이사를 되풀이해야 할까? 나는 집을 사서 큰 부자가 될 생각은 없는데 말이다. 집이 필요했다. 금이나 은, 주식처럼 언젠가 가격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사하다 돈은 물론 몸과 마음만 축나고 이고생하느니 이제 내 집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왔다. 오피스텔 사건 이후로 전세와 집값이 얼마 차이나지 않는데도 세상 집주인들의 돈놀음에 휘둘리고 싶지도 않았다.
---p. 164, ‘집값은 떨어진다, 사람은 집에서 산다, 살집이 필요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