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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의 정수, 주역 음양가 음양사 음양오행, 동이문명의 음양철학
eBook

동양철학의 정수, 주역 음양가 음양사 음양오행, 동이문명의 음양철학

[ EPUB ]
탁양현 | e퍼플 | 2018년 09월 2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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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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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9.3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4.4만자, 약 4만 단어, A4 약 90쪽?
ISBN13 9791163471394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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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檀君朝鮮’과 ‘箕子朝鮮’ 등에 얽힌 ‘古代史’의 문제들은, 현대에 이르러 특히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만큼 그 문제에 내재된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에 관한 ‘상고사’ 재정립의 문제는, 역사문제라는 것이 결국은 정치철학의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케 한다.
‘조선왕조’에서는 ‘기자조선’을 ‘역사적 事實’로 규정했다. 그래서 ‘기자의 홍범’을 國是로서 활용했던 것이다. 그러한 ‘政治史的 史實’에 대해서,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수십 년이 지난 후, ‘기자조선’의 실체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고려왕조’나 ‘조선왕조’에서는,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의 眞僞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려왕조’는 역사적 史料에 대한 인식이 다소 부족했다지만, ‘조선왕조’는 역사에 대해 각별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러한 인식 탓에 예컨대, ‘세조’ 때는 ‘受書令’으로써, ‘古記’로 분류되는 일련의 서적들을 강제로 수거하여 없애버린다. ‘세조의 수서령’은 ‘기자조선’의 역사를 事實로써 확정하는 데 장애가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歷史書를 대상으로 시행된 것이었다.
현재로서는 당시 逸失된 서적들에 기술되었던 내용을 확인할 방법은 없으며, 지목된 서적들의 제목으로써 유추할 때, 그 서적들의 대부분이 우리 민족의 ‘上古史’에 관련된 歷史書인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이러한 문제들은 ‘역사적 史實’의 문제이므로, 역사학의 所管인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은, 역사학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정치철학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어떠한 ‘역사적 事實’이 歷史書에 史實로서 기술되어, 하나의 歷史가 정립되는 과정은 지극히 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半島史觀’, ‘日帝의 植民史觀’, ‘중국의 東北工程’ 등에 의한 역사는, ‘역사를 위한 역사’가 아니라 ‘정치를 위한 역사’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흔히 ‘조선왕조의 반도사관’을 ‘日帝 식민사관’의 일종이라고 인식한다. 그러나 ‘요동 정벌’ 명령에 抗命하며 ‘위화도 회군’이라는 정치적 결정을 하고,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선언할 때 작동한 ‘사관’이야말로 ‘반도사관’이다. 본래 우리 민족의 영토이던 ‘요동’을 포기하고서, 우리 영토를 ‘압록강’ 이남의 ‘韓半島’로 국한시켰기 때문이다.
‘일제’는 그러한 ‘조선왕조’의 전통적인 ‘역사관’에 ‘반도사관’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반도사관’과 ‘식민사관 중의 반도사관’은 뭉뚱그려질 수 없는 별개의 개념이므로, 명확히 분별하여 살피는 것이 타당하다.
‘식민사관’은 19세기 말 도쿄제국대학에서 시작되었는데, ‘神功皇后’의 新羅征服說과 任那日本府說, 滿鮮史論 등을 내세우다가, 20세기 초 朝鮮侵略이 본격화되자 日鮮同祖論, 他律性論, 停滯性論, 黨派性論 등을 제시하고 있다.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李丙燾 등이 대표자들이다. ‘일제’의 ‘朝鮮史編修會’에 재직하던 ‘申奭鎬’는 解放 이후 ‘국사편찬회’의 회장이 된다. 이후 이러한 계통을 잇는 ‘植民史學派’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美軍政’, ‘左右對立’, ‘韓國戰爭’ 등의 이유로 인해 친일파 處斷을 엄정하게 실현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동북공정’은, 현재의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인 것으로 조작하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한, ‘중국’ 동북쪽 변경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다. 이러한 정책은 우리 민족의 ‘古朝鮮史’, ‘高句麗史’, ‘渤海史’ 재정립 문제와 첨예하게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으므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서 銳意注視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대해 기술되어 있는 最古의 史書는 ‘三國遺事’인 것으로 판단한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에 관하여 기술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위서’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어, ‘아사달(‘산해경’에서는 ‘무엽산’이라 하였고, 또 ‘백악’이라고도 하였는데, ‘백주’에 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백악궁’이 이것이다.)’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 하였으니, 바로 중국 ‘요임금’과 같은 시기였다.
‘고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 ‘환인(‘제석’을 말한다.)’의 서자 ‘환웅’이 있었는데, 종종 하늘 아래 세상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었다.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그래서 ‘천부인’ 세 개를 주며, 내려가서 인간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삼천 명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지금의 ‘묘향산’이다.)’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서, 그곳을 ‘신시’라고 불렀다. 그가 바로 ‘환웅천왕’이다.
‘환웅천왕’은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등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주’나라 ‘무왕’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 그래서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으니, 나이가 1,908세였다.
여기서 ‘삼국유사’에 인용된 ‘三韓古記’의 첫 문장은 원래 ‘昔有桓國’이며, ‘일제 강점기’에 ‘이마니시 류(今西龍)’에 의해 ‘昔有桓因’으로 조작되었다고 하여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으나, 현재까지도 명확히 규명되지 못 하고 있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서 ‘桓因’이라는 표현은 ‘세종’ 때부터 10여 차례 등장하지만, ‘桓國’이라는 표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왕조’ 後期 ‘南九萬’의 ‘藥泉集’이나 ‘李種徽’의 ‘修山集’에서는, ‘桓國’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에, 이 문제에 대해 현재로서는, 각계의 보다 명확한 검증 이후의 연구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세종실록’ 85권, ‘세종’ 21년 6월 26일 壬寅日 2번째 기사(1439년, 明 正統 4년)에는, ‘司憲府’에서 ‘세종’에게 올린 ‘상소문’이 기술되어 있다. ‘동방’에서 ‘단군조선’은 ‘요임금’ 때에 시작하였고, ‘기자조선’은 ‘주’나라 ‘무왕’ 때에 책봉되었으므로, 군신의 상하와 예악과 문물을 유지하여, 서로 전한 것이 오래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종실록’은 ‘단군조선’이 ‘요임금’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규정한다. 그리고 ‘기자조선’에 대해서도 ‘정도전’의 견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고려왕조 末’과 ‘조선왕조 初’에 모두 文臣으로서 살아낸 ‘權近’이 쓴 ‘三國史略 序文’에서도, 이러한 맥락의 인식을 살필 수 있다. ‘고려왕조’ 말기부터 ‘조선왕조’ 초기에, ‘단군조선’은 역사에 기록될만한 문명을 지니지 못 했고, ‘기자’가 책봉되어 건국한 ‘기자조선’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문명이 胎動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조선왕조실록’이나 ‘권근’의 例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현실세계의 표면에서 작동하는 주류적 인식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事大主義的 상황 인식은 후대에 보다 심화되어 ‘小中華主義’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성종실록’ 134권, ‘성종’ 12년 10월 17일 무오일 1번째 기사(1481년, 明 成化 17년)의, ‘梁誠之의 上言’에서는 ‘단군조선’의 素朴性과 ‘기자조선’의 文明性을 넘어서서, ‘조선왕조’에 이르는 3,900년의 역사가 모두 ‘작은 중국[小中華]’의 실현이라고 선언해버린다.
그러나 어떻게 3,900년의 역사가 죄다 事大의 체제를 추종하는 ‘소중화’일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무분별한 역사인식은 ‘역사적 事實’에 대한 지향이 아니며, 多分히 정치적인 인식의 결과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사대주의 역사관’에 대하여, 후대의 ‘申采浩’는 ‘朝鮮上古史’에서 강한 비판과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朝鮮上古史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하나는 가짜 중의 가짜이니, 예를 들면 ‘竹書紀年’은 진본이 없어지고 僞作이 나왔음을 앞에서 이미 말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사학가들은 늘 ‘古記’의, “檀君興堯竝立於戊辰.”이라고 한 글에 의하여, ‘단군’의 연대를 알고자 하는 이는, 항상 ‘요임금’의 연대에 비교코자 하며, ‘요임금’의 연대를 찾는 이는, ‘續綱目’에 考準한다.
그러나 ‘周召’의 ‘共和’ 이전의 연대는, ‘중국’ 역사가의 大祖라고 할 만한 ‘司馬遷’도 알지 못 하여, 그의 ‘史記’ 연표에 쓰지 못 하였거늘, 하물며 그보다도 더 요원한 ‘요임금’의 연대라니.”
‘조선왕조’는, ‘기자조선’이 ‘주’나라 ‘무왕’으로부터 제후로 책봉을 받아 건국되었으므로, ‘조선왕조’는 응당 ‘기자조선’을 추종한다는 사대주의적 정치신념을 왕조의 정통성을 정립하는 방편으로 활용한다. 그리고서 ‘단군조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러한 基調는 ‘日帝’에 의해 국권을 簒奪당한 ‘大韓帝國’에 이르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신채호’는 異見을 제시하는 것이다. ‘신채호’가 굳이 이러한 주장을 하는 데에는, 當代의 상황을 개혁하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
‘조선왕조’ 말기에 賣國奴 세력의 행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事大의 대상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뀌어도 ‘조선’으로서는 그 정치적 입지가 별다를 게 없다는 사대주의적 思惟方式의 위험성이, ‘조선왕조’의 멸망이라는 비극을 초래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홍범구주’가 ‘단군조선’ 시대에 ‘단군’의 아들 ‘부루’에 의해 ‘하’나라 ‘우임금’에게 전해진 ‘金簡玉牒’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朝鮮上古史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古記’에 이르기를, “‘단군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夏禹’를 ‘塗山’에서 만났다.”고 하였다. 또 ‘吳越春秋’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있어, “‘唐堯’ 때에 9년 동안 홍수가 져서 ‘당요’가 ‘하우’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라 하였다.
‘禹’가 8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 하고 매우 걱정하여, ‘南嶽’, ‘衡山’에 이르러 흰 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 드려 성공을 빌었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玄夷’의 ‘蒼水使者’라 일컫고, ‘우’에게 말하기를, ‘九山’ 동남쪽의 ‘도산’에 ‘神書’가 있으니, 석 달 동안 齋戒하고서 그것을 꺼내보라고 하므로, ‘우’가 그 말에 의하여 ‘金簡玉牒’이라는 ‘신서’를 얻어 ‘五行通水’의 이치를 알아 홍수를 다스려 성공하고, 이에 ‘州愼’의 덕을 잊지 못 하여 ‘井田’을 제정하고, 律度量衡의 제도를 세웠다.” 고 하였다.
‘玄夷’는 당시 ‘조선’의 동, 남, 서, 북, 중 ‘오부’를 ‘藍’, ‘赤’, ‘白’, ‘玄(黑)’, ‘黃’으로 별칭 했는데, 북부가 곧 ‘玄部’이니 ‘지나인’이 ‘현부’를 가리켜 ‘玄夷’라고 한 것이요, ‘蒼水’는 곧 ‘滄水’이고, ‘州愼’, ‘肅愼’, ‘稷愼’ 혹은 ‘息愼’으로 번역되었으니, ‘주신’은 곧 ‘조선’을 가리킨 것이다.
…‘하우’가 홍수를 다스린 공으로 왕이 되어 국호를 ‘夏’라 하고, ‘수두’의 교를 흉내 내어 ‘도산’에서 받은 ‘神書’를 ‘洪範九疇’라고 이름하여 신봉하였다.
‘하’가 수백 년 만에 망하고 ‘商’이 뒤를 이어 또한 수백 년 만에 망하고, ‘周’가 일어나서는 ‘周武王’이 ‘홍범구주’를 배척하므로, ‘殷’의 왕족 ‘箕子’가 새로 ‘홍범구주’를 지어 ‘무왕’과 변론하고서 ‘조선’으로 도망하니, 지금 ‘尙書(書經)’의 ‘洪範’이 그것이다.
…‘天乃錫禹洪範九‘는, 곧 ‘기자’가 ‘단군’을 가리켜 ‘天’이라 하고, ‘단군’으로부터 전수받은 것을 ‘천’이 주었다고 함이다. 이는 ‘수두’의 교의에서 ‘단군’을 하늘의 대표로 보기 때문이고, ‘기자’가 ‘조선’으로 도망한 것은 ‘商’이 ‘周’에게 망하는 동시에, ‘상’의 국교인 ‘수두’교가 압박을 받으므로, 고국을 버리고 ‘수두’교의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漢書’에서, 거북이가 문자를 등에 지고 ‘洛水’에서 나왔으므로, ‘禹’가 ‘洪範’을 연술하였다고 했지마는, ‘易’의 ‘繫辭’에, “河出書, 洛出書, 聖人則之.”라고 하여 분명히 ‘河圖’와 ‘洛書’가 다 ‘易卦’ 지은 원인임을 기록하였다. 그런데도 이제 ‘낙수’ 거북의 글씨로 인하여 ‘홍범’을 지었다고 함은, 어찌 망령된 증명이 아니랴(위 일절은 淸儒 ‘毛奇齡’의 설을 채택함).
‘오월춘추’에 의거하여, ‘홍범’, ‘오행’이 ‘조선’에서 전해간 것으로 믿음이 옳고, 또 ‘楚辭’에 의거하여 ‘東皇太一’ 곧 ‘단군왕검’을 제사하는 풍속이 ‘湖北’, ‘浙江’ 등지에 많이 유행하였음을 보면, 대개 ‘하우’가 ‘형산’에서는 하늘에 자세하고, ‘도산’에서는 ‘부루’에게 ‘신서’를 받은 곳이므로, 가장 ‘수두교’가 유행한 지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현재로서는, ‘조선왕조의 半島事觀’, ‘일제의 植民史觀’, ‘중국의 東北工程’, ‘上古史 재정립’ 등의 문제들이 뒤얽혀 명확한 일반론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근래에 이르러 이러한 분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으므로, 보다 정확하고 바람직한 ‘단군조선’의 역사가 정립되기를 희망한다.
‘조선왕조’가 ‘단군조선’을 배제하고 ‘기자조선’을 선택한 데는, 필연적인 정치적 판단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기자조선’의 위상을 부각시키려다보니, 부득이하게 상대적으로 ‘단군조선’을 배제한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역사적 史實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 자의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는 쉬이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근래에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발생한 사건 중에서 우리 민족에게 인상적인 사건으로서, ‘일본’의 現任天皇인 ‘아키히토(明仁, あきひと)’가 천황의 母系血統이 百濟系라고 언급한 사건이 있다. 이는 旣定된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 목적에 의해 時宜를 좇아 활용하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것이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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