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민계급과 부자계급은 무거운 것과 ‘거친 것’(서민계급), 가벼운 것과 세련된 것, 그리고 스타일(부자계급)같이 주요한 대조에 근거를 둔 생활양식으로 서로 구별되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아비투스(habitus)〔사회화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획득되는 지각·발상·행위 따위의 특징적 양태 ? 옮긴이〕를 가진 이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즉 계급 문화가 붕괴되면서 무거운 것과 살찐 것은 모든 집단에서 그 자격을 상실했고, 각 개인은 그 뒤로 음식과 외모, 이동성, 의사소통, 생활양식에서 가벼움을 탐욕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모든 사회집단이 가벼움의 가치를 그들의 상상세계와 행동에 통합시킨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들의 실제 생활방식은 물론 똑같지 않다. 아니, 절대 똑같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실제적 차이는 사회 곳곳에서 날씬한 것과 유행, 여가 활동, 이동성, 가상적인 것을 찬양하는 문화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사회라는 세계는 분리되어 있지만, 가벼운 것의 규범은 모든 단계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 p.9
이 책에서는 가벼움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찬양도 찾아볼 수 없고, 비난도 찾아볼 수 없다. 가벼움은 어떤 미덕이나 악덕으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하이퍼모던 시대에 엄청난 중요성을 띠는 하나의 인류학적 요구로서, 사회조직 원리로서, 미학적이며 기술적인 가치로서 분석된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영원하거나’ 형이상학적인 그 자체로서의 가벼움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구체적 형태 속에서, 사회의 역사 속에서, 더 특별하게는 현대세계 속에서 구현되는 가벼움이다. 이제부터 하게 될 분석을 주도하는 것은 가벼움에 대한 인류학적·사회학적 접근법이다. --- p.20
하이퍼모드 시대는 변화하는 속도의 가속화 및 모델과 이미지, 프로그램의 지속적 쇄신이 소비와 여가 활동, 통신을 주도해 나가는 시대를 가리킨다. 새로운 휴대폰 모델이 8개월에 한 번씩 선보여 판매되고, 새로운 농구화 모델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며, 새로운 영화가 끊임없이 개봉되고, 히트곡은 겨우 몇 주일 만에 사라진다. 단명(短命) 전략, 점점 더 빨라지는 신상품 발매, 파생상품의 증가 등 유행 세계의 특징이 소비 위주로 바뀐 경제의 주요 원칙으로 확립된다. --- p.42
인상파의 기법과 주제가 사용되면서 무거운 회화적 허구와 그 강한 표현력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회화의 세계가 틀에 박힌 관습과 장중함, “부르주아의 우둔함”(조르주 바타유 Georges Bataille)이 가하는 부담감을 버리고 가벼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 회화가 신화적·도덕적·역사적 허구로부터 해방되어 부드럽고 감각적인 떨림의 느낌을 전달하면서 유일한 시선의 즐거움과 자연적인 것의 숭배, 외광(外光)의 맑음에 빠져드는 순수회화로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인상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주제’의 전통적 중요성이 줄어들고 대신 빛과 빛이 모든 종류의 대상에 미치는 순간적인 효과가 중요해졌다. 눈부시게 빛나는 표면과 빛의 시정(詩情), 순간의 덧없음을 찬미하는 회화가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이것은 공기로 짜여져 있고, 중력에 저항하며, 매우 신선한 상태로 스쳐 지나가는 것을 포착하는 회화다. --- p.216
예술작품은 절대적인 것의 욕구를 충족하는 임무를 맡았다. 즉 그것은 일시적인 소비의 대상이, “여가 산업의 확대, 텔레비전 위쪽으로 1도 확대”(로버트 모리스 Robert Morris)가 되었다. 몰입해서 정중한 태도로 그것을 감상해야만 했던 것이 이제는 일종의 관광 코스가 되어 전속력으로 소비된다. 이제 더 이상 숭배가 아니라, 마치 여기저기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듯 빠르게 해치우는 유희적이며 오락적인 체험이 된 것이다. 미술관 관람객이 위대한 예술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겨우 몇 초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차례의 조사 결과가 보여준다. 예술과의 관계는 일시적인 하이퍼(hyper) 소비의 가벼운 주기 속으로 들어섰다. --- p.246
그러나 가벼움의 혁명은 양날의 칼과도 같다. 왜냐하면 개인주의적 자유는 파괴할 수 없는 관계를 끝냄으로써 불안정한 감정과 내일에 대한 불확실성,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그 속에 품기 때문이다. 관계의 불안정성과 결별의 용이함은 때로는 일신(一新)의 즐거움을, 때로는 혼자 내버려졌다는 악몽을 동반한다.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이다. 그리고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 즉 탈(脫)관계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상처와 눈물, 실망, 실의가 뒤따르게 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많은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실패를 또다시 겪게 될까 두려워서 언제 어느 때 맛보게 될지 모르는 애정 관계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생각만 한다. (…)
요컨대, 우리를 사회적 억압의 무게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오히려 반복되는 실패와 고독으로 더 무거운 짐을 안겨 주었다. 우리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보다는 존재의 고독이 불러일으키는 중압감에 더 시달린다. 가벼운 것의 혁명은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으며, 그 대차대조표는 양면적이다. 유동성으로서의 가벼움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내적 가벼움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 p.29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