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청소년들도 요즘 청소년들처럼 지겹도록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요즘이야 공부를 못해도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많지만 옛날에는 공부를 잘하지 않고는 잘살 수 있는 길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생결단을 하듯이 공부에 올인 할 수밖에 없었고, 부모들은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자식 취급도 하지 않았다.
결국 어느 시대건 시험을 등지고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이 세상 모든 시험의 시작이었던 과거시험이라는 것이 어떤 제도였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거시험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과거시험이라는 것이 단점도 많지만 놀랍게도 장점이 아주 많은 제도라는 사실도 알았다. 옛날 공부의 기본은 철학과 글쓰기였다. 철학이란 대부분이 유교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고, 글쓰기란 ‘겸손하게 자신의 생각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하지 못하면 절대 좋은 직장도 얻을 수 없었고, 고위 공무원도 될 수 없었다. 그러니 요즘 우리나라에 치러지는 고시보다도 과거시험이 훨씬 더 좋은 제도였음을 알았다. 물론 여성 차별과 신분 차별이 있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시험과목 그 자체만으로 봤을 때는 요즘 시험보다 오히려 더 진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부디 이 책이 아이들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최대한 쉽게 쓰려고 했고, 최대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들을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려고 했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이 잠깐 쉬어가듯이 이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
『옛 하인 막동이』라는 옛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3대째 과거 합격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그 집안에서는 모든 것을 걸고 수험생에게 올인하기 마련이야. 생각해보렴. 모든 집안 식구가 자기만 쳐다보고 있다면 어쩌겠니?
“이제 집안을 일으켜 세울 사람은 너밖에 없다. 그러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서 꼭 과거에 급제하여야 한다. 그래야 양반으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느니라.”
나 같으면 도저히 부담스러워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을 것 같구나! (본문 23쪽)
승경도 놀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거의 모든 관직을 다 외우게 될 뿐만 아니라 관직의 특징까지도 알게 된단다. 게다가 유배를 당하고 사약을 받는 항목까지 있기 때문에 현실 정치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어서 아이들이 더욱 재미있어 했어.
“야야, 넌 사약 받았으니까 죽은 거야. 넌 꼴찌!”
“이놈들, 내가 암행어사가 됐다! 어디로 출도해서 못된 관리를 처벌해줄까!”
뭐 그런 식으로 요란하게 떠들어대면서 놀이를 하는 거야. 결국 그 놀이를 자꾸 하다 보면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돼.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쟁자를 떨어트려야 한다는 점도 일 찍부터 가르치는 놀이기도 했어.
그러다 보니 뜻있는 선비들은 승경도 놀이가 아이들의 정신을 타락하게 하고 지나치게 경쟁을 유도하여 진정한 학문을 하는 뜻을 해친다고 걱정하고, 왕에게 그런 놀이를 금지해달라고 건의하기도 했어. 하지만 대다수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놀이를 통해 과거 시험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으니, 그 놀이를 아이들에게 권장했단다. (본문 27쪽)
지후_ 아빠, 진짜 요즘이랑 똑같다! 믿어지지 않아. 옛날에도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 있었다니!
그래서 내가 요즘도 과거시험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는 거야. 족집게 선생님은 과거에 수차례 응시했다가 떨어진 사람들이 하였는데, 하도 떨어지니까 합격을 포기하고 돈이나 벌자고 생각한 거야. 그들은 한양까지 정보망을 구축해놓고는 과거시험의 여러 가지 유형을 분석하면서 가르쳤어.
이게 바로 족집게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이용한 『과문』이라는 책이야. 실제 우리 조상들이 공부했던 것들이야. 『과문』이란 과거시험에 많이 출제된 문제들만 뽑아서 엮은 책이란다. 그러니까 요즘으로 말하자면 대학 입시에 잘 나오는 문제들만 뽑아서 엮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지. ‘대학 입시 10년간 총정리’ 뭐 그런 형식의 책이지 않을까? 다만 옛날에는 출판사가 없었기 때문에 족집게 선생들이 개인적으로 그런 책을 만들어서 팔거나 자신이 가르치는 수험생들에게 주었어. 자, 만져보렴.
지후_ 아빠, 진짜 놀랍다! 대박! 대박! 이게 과거시험에 자주 나오는 문제만 뽑아놓은 거라고. 글씨가 한자라서 알아볼 수는 없지만 모두 다 손으로 썼네. 그때는 지금처럼 인쇄할 수 없었을 테니까, 모두 이렇게 손으로 써서 만들었겠지. 이건 호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네. 가지고 다니면서 펼쳐볼 수 있도록 작게 만들었나 봐. 진짜 요즘이랑 똑같다! 그치, 소연아?
소연_ 응, 이건 작은 병풍처럼 만들어졌어. 뭐라고요? 이건 책상에다 펼쳐놓고 공부하는 것이었다고요? 이건 시험에 자주 나오는 시, 이건 시험에 자주 나오는 유교 경전, 이건 시험에 자주 나오는 조선시대의 법, 이건 시험에 자주 나오는 시제. 진짜 이런 걸 본 사람이랑 안 본 사람은 차이가 많이 나겠는데요. (본문 38~40쪽)
소연_ 선생님, 그럼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험이나 특별 시험이나 합격하면 똑같은 대우를 받았나요?
지후_ 아빠, 그래도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험에서 합격해야 더 대우를 받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단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험이든 특별한 시험이든 합격자들은 똑같은 대우를 받았단다. 그러니 아무거나 응시해서 합격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별시는 대부분이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했어. 나라에 경사가 있다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했다거나 왕실에 좋은 일이 있다는 뜻이야. 결국 전쟁에서 승리한 적은 별로 없기 때문에 별시가 열리는 것은 왕실에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열렸어.
임인진연도는 고종 즉위 4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 장면이란다. 왕에 즉위하여 4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으니 대단한 경사지. 생각해보렴. 우리나라 대통령은 고작 당선되어서 5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는 거 다 알지? 그런데 40년을 다스렸다고 한다면 엄청난 일이지 않니? 그러니 과거시험을 열어서 수많은 인재를 뽑아야지.
과거시험을 자주 열수록 국민들한테는 인기가 올라간단다. 왜냐고? 당연하잖아? 과거시험이란 국가공무원을 뽑는 시험이자,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할 수 있는 기회이니까. 그러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과거시험을 자주 볼수록 좋은 거 아니겠니? 3년에 한 번 보는 공무원시험을 수시로 본다고 생각해보렴.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기회가 많아지니까 좋을 것이고, 수험생을 둔 부모들도 더 좋아하지 않았겠니.
다만 너무 자주 시험을 보게 되면 그 많은 합격자가 들어갈 관직 자리가 부족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조선시대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작아서 공무원이 많지 않았어. 일자리는 없는데 자꾸 시험 봐서 합격자를 배출하기만 하니 그것 또한 문제가 되지 않겠니?
그런 일은 요즘도 많이 일어난단다. 특히 선거철을 앞두고는 지나치게 공무원 합격자를 많이 배출시키곤 하지. 근데 자리가 없으니 합격을 하고 대기하고 있는 거지. 자리가 없으니까. 그런 일은 요즘도 허다하게 일어나지.
왕세자탄강진하도는 고종의 아들인 순종의 탄생을 기념하는 행사를 그린 그림이야. 왕의 뒤를 이을 사람이기 때문에 왕세자가 탄생하면 왕실에서는 크게 잔치를 열었어. 요즘 같으면 대통령의 아들이 태어났다고 해서 그런 행사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왕조국가에서는 그게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였지. (본문 168-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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