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4월,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완구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역사 왜곡을 해서는 안 된다”라며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어서 한국 정부는 그즈음 검정을 통과한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 임나일본부설이 실린 것에 유감을 표명하고 시정을 촉구하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언급되는 임나일본부설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면 4세기부터 6세기까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기 위해 한반도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주장입니다. 당시 백제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신라 또한 국가의 기틀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이 설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 p.12『쟁점 1 [고대]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이 존재했나요?』중에서
강통일: 제방이라는 뜻의 ‘둑’을 고구려어와 신라어 모두 ‘토’라고 했습니다. ‘쇠’ 역시 고구려어로 ‘소’ 또는 ‘소문’, 신라어로도 ‘소’라고 했어요. 언어가 이처럼 비슷했다면 승려만이 아니라 다른 계층에서도 충분히 말이 통했을 것이고, 따라서 삼국은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형성되지 않았을까요?
이국연: 찬성 측에서 주장하듯이 쇠처럼 양국의 발음이 비슷한 경우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쇠는 고대사회에서 중요한 금속이었기 때문에 나라와 상관없이 발음이 비슷할 수도 있어요. 현재 ‘빵’이라는 말도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발음으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고구려어와 신라어에는 소리가 아예 다른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 우연히 일치하는 어휘 몇 개를 두고 언어가 비슷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pp.53~54『쟁점 2 [고대·남북국] 삼국 통일은 역사 발전에 기여했나요?』중에서
발해를 구성하는 다수의 민족이 말갈인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대부분 발해 민족이 지배층인 고구려인과 피지배층인 말갈인으로 구성되었다고 서술합니다. 우리 민족과 말갈인의 민족 계통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렇다면 다수의 말갈인으로 이루어진 발해를 우리나라의 역사라고 말하는 건 어찌 보면 우리만의 생각이 아닐까요?
--- p.73『쟁점 3 [남북국] 발해는 우리나라의 역사인가요?』중에서
몽골군이 1231년 고려를 처음 침입한 이래 1259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여섯 차례에 걸친 대대적인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고려는 결국 몽골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이후 고려는 몽골이 세운 원의 지배를 50여 년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원의 지배를 받던 기간에 고려라는 이름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을 쓸 수 없었지요. 그러나 원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고려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려는 원 간섭기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걸까요? 식민 지배를 받았다면 흔히 생각하듯 원에게 수탈을 당하기만 한 걸까요?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도 고려라는 이름이 그대로 유지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 p.98『쟁점 4 [고려] 고려의 원 간섭기는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였나요?』중에서
성유지: 전쟁의 승패를 논할 때 중요한 것은 전쟁이 끝나면서 ‘누가 항복했다’, ‘누가 이겼다’ 등의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임진왜란에서는 이러한 결정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전쟁 종결에 따른 항복식, 강화조약 같은 게 없었고 전쟁배상금 지급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조선이 승리했다’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요?
이순선: 그렇게 본다면 한국전쟁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한국전쟁도 승패를 떠나 정전협정만 맺고 끝이 납니다. 이처럼 현대에도 승패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전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전쟁을 대한민국 체제를 지켜 낸 전쟁으로 기억하고 있죠.
성유지: 우리 반대 측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나라를 지켜 낸 것이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아닙니다.
--- pp.133~134『쟁점 5 [조선] 조선은 임진왜란에서 승리했나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