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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문명과 황제의 나라 고려, 고려사 고려사절요 정인지 김종서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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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문명과 황제의 나라 고려, 고려사 고려사절요 정인지 김종서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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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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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19.15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1.7만자, 약 3.1만 단어, A4 약 74쪽?
ISBN13 979116347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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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遼河流域에서 새로운 유적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도리이 류조’의 처음 발견 당시의 추정보다, 연대가 훨씬 오래된 기원전 8,000년까지 인상되었다면서, 광의의 紅山文化에 기원전 8,000년경의 신러문화까지를 포함시켜 遼河文明으로 간주하여, 홍산문화가 황하문명의 원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으나, 이러한 평가가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韓民族의 입장에서는, 東北工程에 의한 역사적 조작을 결코 수긍할 수 없다. 요하문명의 홍산문화는 분명한 우리 선조들의 역사이다. 요하문명 이후에도, 古朝鮮, 夫餘, 高句麗, 渤海로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영토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내몽골자치구 츠펑 시에는, 붉은 기운이 도는 紅山이 있다. 이 곳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옥기가 발견돼 紅山玉器라 하였고, 중국 중원에서 보기에, 홍산 뒤쪽에서 발견되었기에, 내몽고 자치구의 츠펑 시에 있는 ?山 後 유적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 동남부, 랴오닝 성 서부와 중부, 동부에 해당된다.
현재의 홍산문화라는 명칭은, 내몽고 자치구의 츠펑 시에 있는 ?山 後 유적에서 유래하였다. 홍산문화는 19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저명한 인류학자 겸 고고학자인 ‘도리이 류조’가, 赤峯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우연찮게 많은 신석기 유적과 ‘돌로 쌓은 묘(積石墓)’ 등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後代에, 세계를 놀라게 한 홍산문화 적석총 유적이다.

積石塚은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였다. 하지만 當代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후 20세기 초, 중국에 온 프랑스 예수회 신부 ‘Emile Licent(1876~1952)’도, 22곳의 신석기 유적을 발견했지만, ‘류조’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글만 남겼다.
그러나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중이던 고고학도 梁思永(양계초의 아들)은, 이 글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1930년 귀국한 양사영은, 그해 겨울에 적봉으로 향했다. 중국 중앙연구원 고고분과 담당자로서, 내몽골 임서 일대와 흑룡강 등, 동북지방에서 잇따른 신석기 유적 발견을 바탕으로, 본격적 발굴작업을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정세불안과 건강 악화로 발굴이 지연되다, 1934년 ‘熱河考古報告로 학계에 첫 보고를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보고서에는, “동북 4성(요녕·길림·흑룡·열하성) 발굴작업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썼다. 이것이 오늘날 동북공정은, 중국인 양사영으로부터 시작된 격이다. 그러나 실제적인 발굴은, 일본인 손에 의해 이뤄졌다.
일본 고고학의 아버지인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가 그 주인공으로, 당시의 대규모 발굴단을 끌고와 발굴을 진행했는데, 만주족과 몽골족이 내몽골 동부에서 발원, 중국과 역사적으로 독립했음을 밝히는 게 목적이었고, 일본 편입이 목표였다.
이렇게 1906년, 일본의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에 의해 발견되어, 1935년 ‘하마다 코사쿠(濱田耕作)’나 ‘미즈노 세이치(水野?一)’ 등에 의해 대규모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후 각지에서 발굴이 잇달았으며, 채도와 세석기의 특징을 가진 이 문화는, 1954년 홍산후를 기념하여 홍산문화라고 명명되었다.

中華人民共和國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실시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한 공정 연구의 일환으로, 2003년 6월부터의 中華文明探源工程을 통하여, 중국은 황하문명보다 빠른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뿌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제까지 야만인인 東夷族의 땅으로 보던 요하문명을, 중국문명의 시발점으로 보기 시작했으며, 이를 중화민족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2012년 7월 초,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내몽고 제1공작대와 熬漢旗 박물관의 합동발굴팀은,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츠펑시 오한치의 興隆溝 유적 제2지점에서, 5,3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陶塑男神像(흙으로 구운 남신상)을 발굴하였다.
홍산문화 유적에서 女神像은 발굴된 적이 있지만, 남신상이 발견된 것은 중국 최초이다. 인민일보·CCTV 등 중국 언론들은, ‘5,300년 전의 조상 발견’, ‘中華祖神 찾았다’는 내용으로, 발굴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2010년 8월 8일, 중국 내몽고 자치구 적봉박물관을 개관하였다.

紅山文化에서는 수렵, 채집 중심으로, 후기에 기초적인 農作이 보이며, 신석기 시대의 특징을 보인다. 가축을 사육한 축산도 발달하고 있어, 돼지나 양이 길러졌다. 한편에서는 수렵이나 채집 등으로, 야생 동물을 사냥하거나 야생초를 채집하기도 했다.
이들은 만든 옥들과 용 등을 본떠 만든 비취 등의 구슬로부터, 문화나 종교의 존재도 볼 수 있다. 그것은 東夷文明으로부터 중국대륙과 일본열도에까지 전해졌다. 홍산문화의 주된 유적은, 서 랴오허 상류의 지류인 潢水 및 土河 유역에 퍼져 있다.
발견된 석기는 打製石器, 磨製石器, 細石器 등으로, 그 대부분은 신석기 시대의 농기구이며, 돌보습(石?), 돌쟁기(石犁), 돌호미(石鋤) 등의 종류가 많다.
홍산문화의 陶器는 진흙 紅陶 및 夾沙灰陶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진흙으로 만들어, 붓으로 그림 그린 彩陶(彩文土器)는, 취사나 식사 등에 사용되고, 문양이 새겨진 狹斜灰陶는 음식을 담는 곳에 사용되었다. 다른 도기에서는, 임산부를 본뜬 흉상이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홍산문화에서는, 양사오문화와 같은 彩陶文化는 발달하지 않았지만, 룽산문화의 黑陶와 같은 세련된 조형미를 가진다. 또 후기 유적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環刀도 발견되고 있다. 홍산문화의 분묘에서는 비취 등의 석재로, 동물 등의 형태로 조각한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돼지, 호랑이, 새 외에도 용을 새긴 것도 발견되고 있다.
높은 공예의 수준이 홍산문화의 큰 특징이 되고 있다. 猪龍 또는 玉猪龍이나 玉熊龍등으로 불리는, 홍산문화의 玉龍(용을 조각한 구슬)의 조형은 단순하며, 용이 원형으로 된 것이 많지만, 후기로 가면서 盤龍, 紋龍 등의 구별이 분명해진다.
고고학자 중에는, 홍산문화가 이후 중국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편 홍산문화의 옥기나 유적 등에 대한 다른 견해 또한 존재한다. 중국인들이 주로 猪龍이나 玉猪龍이라고 명명하는 형태의 용을 본뜻 모양을, 중국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龍을 숭배하는 문화는, 현재의 중국에게 익숙하다고 해서, 그 기원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용을 상서로운 신화 속 동물로 여기며 숭배하는 문화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하문명에서 이미 발견되므로, 중국문명으로부터 전파된 것이라고 주장은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홍산문화에서 積石塚(돌무지무덤)과 玉器가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하여, 홍산문화가 적석총이 다수 발견되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韓民族(東夷族 聯盟)문화의 연원이라는 견해가 나오면서, 韓中 間에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중국은, 홍산문화 유적지가 밀집한 내몽고의 적봉시, 옹우특기, 오한기, 요녕성의 능원시, 건평현 조양시 등의 상징을, 몇 해 전부터 홍산문화의 상징인 玉猪龍ㆍ玉熊龍으로 교체했다. 중국 영토에 사는 민족은 중화민족이고, 역사도 中國史라는 논리이다.
이는, 56개 민족을 하나의 단일한 중화민족으로 묶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론의 바탕이다. 夏商周斷代工程(1996 ~ 2000) → 東北工程(2002 ~ 2007) → 中華文明探源工程(2003 ~ 현재 진행중) → 國史修正工程(2005 ~ 2015)으로 이어지는 논리의 구조이다.

多民族 聯合國의 경우, 미국처럼 소속된 민족들이 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면 문제될 게 없으나, 중국의 경우, 신장위그르나 티베트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독립을 바라는 민족들이 대부분이다. 조선족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중국은 中國分裂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중국대륙의 역사를 살피면, 현재의 중국처럼 統一帝國이던 시대와 분열된 戰國時代의 비율은 비슷하며, 통일제국의 경우도 그 절반 이상은, 漢族이 아니라 북방민족의 왕조였다. 그리고 북방민족이 東夷文明과 깊은 역사적 연관을 갖고 있음은 두말 할 나위 없다.
현재 진행 중인 國史修正工程은, 이런 일련의 역사 관련 국가 공정의 완결판인데,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중국사를 전체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2005~2007년 기초자료 수집을 마치고, 2007년부터 본격 수정을 시작해, 2015년 완료를 목표로 중국의 正史인 25史를 대대적으로 수정해 재편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대한민국은 植民史觀과 事大主義史觀 따위를 극복하지 못해, 우리 끼리 泥田鬪狗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지식을 지녔다는 자들이, 과연 무식해서 그런 짓을 하겠는가. 알면서도 ‘生存의 利得’을 목적하며,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국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일본의 受惠를 받아서 親日主義者가 되고, 사대주의사관을 추종하는 자들은 중국의 수혜를 받아서 親中主義者가 되어버린 상태인 것으로 이해된다. 돈을 받아먹었으니, 어떻게든 그러한 史觀을 좇아 역사를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돈이란 것은 惡魔性을 지닌 탓에, 일단 한 번 받아먹으면, 그것이 끝이다. 賂物이 무서운 까닭은, 한 번 코를 꿰이면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라서, 뇌물을 준 측에서는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한다.
만약 그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受賂한 사실을 공개하겠다며 恐喝脅迫한다. 그러니 痲藥이나 알코올에 중독되면 벗어나기 힘들 듯이, 공짜돈도 한 번 잘못 받아 먹으면, 이제 그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983년에, 랴오닝성 링위안 시에서 젠핑 현에 걸친 넓은 범위에서 발견된 牛河梁遺跡에서는, 기존의 홍산문화와 다른 거대한 祭祀 시설이 발견되었다. 유적은 5제곱km의 넓은 범위에, 돌을 쌓아 만들어진 분묘나 제단이 정연하게 분포하고 있다.
또한 돌 마루와 채색한 벽이 있던 신전이 발견되었고, 눈을 비취로 만든 여성두상 도기가 발견되어 女神廟라고 불리게 되었다. 발굴 과정에서, 지하 1m 지점에서, 제사를 지냈던 장소나 제단, 벽화, 돌무덤(石塚) 등이 발견되었다.
여신묘 안에는, 사람 세 배 크기의 도제의 상이 줄지어 있었다. 이 상은 신상으로 추측되며, 현재 중국 문화에서는 유례 없는 것이다. 뉘우허량에서 발견된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존재나, 또 여러 가지 토지와 교역의 증거로 인해, 이 시기에 先史時代의 首長國인 왕국이 있었다고 추측된다.
여신묘에서는 彩陶도 발견되었다. 부근에서 60개 이상의 고분도 발굴되었고, 이것들은 돌을 짜서 석실을 만들고, 그 위에 조약돌을 씌워 무덤을 만들었다. 그 내부에서 구슬 등의 유물도 발견되었다. 근처의 두 곳의 언덕 위에는 돌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가까운 곳에서는 석회암을 쌓아 올려 만든 둥근 무덤이나, 사각형의 무덤도 있었다.
이러한 고분 중에서는, 곰이나 용, 거북이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러한 유물로써, 홍산문화에서는 이미 제물을 바쳤다는 지적이 생겨나고 있다. 홍산문화의 유적에서는, 초기의 풍수의 증거로 여겨지는 것이 발견되고 있다. 뉘우허량 유적 등, 홍산문화의 제사 유적에 볼 수 있는 圓形이나 方形(四角形)은, 天圓地方의 우주관이 벌써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시사하고 있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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