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어원. opera라는 단어의 기원은 라틴어 단어 opus오푸스예요. 이 단어는 우리말로 ‘일’, ‘행위’, ‘작품’ 등과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의 복수형이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오페라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사람이 함께 힘을 합치죠. 그러니 ‘오페라’가 이 종합 무대 예술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일 거예요. --- p.11
뮤지컬과 오페라는 무엇이 다른가요? 첫째, 오페라 가수는 오랜 성악 훈련을 통해 습득한 벨칸토 창법을 사용해요. 뮤지컬에서는 마이크를 착용하고 대중음악 창법을 구사하죠. 둘째, 오페라에서는 대사도 상당 부분 말하듯이 노래하는 레치타티보로 구성되지만 뮤지컬 은 연극과 같이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죠. 셋째, 오페라 가수는 노래로 이야기를 이끌 어가지만 뮤지컬은 대사가 큰 부분을 차지해요. 그래서 오페라 배역은 가수라고 부르지만, 뮤지컬에서는 가수라는 표현보다는 뮤지컬 배우라고 부르곤 하지요. 넷째, 오페라와 뮤지컬은 작품의 배경이나 소재에서도 차이가 있어요. 오페라는 보통 작품성을 인정받은 유명한 작가의 문학작품이나 신화, 역사적 사건을 다루지만, 뮤지컬은 일상적 소재와 현대적 시대상을 배경으로 삼죠. 다섯째, 극을 이끌어가는 반주 음악에서도 오페라는 오케스트라 반주의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고, 뮤지컬은 재즈?록?발라드 등의 대중음악을 사용하고 있어요. --- p.35
오케스트라는 왜 피트에 들어가나요? 오케스트라가 무대 아래에 위치한 중요한 이 유가 따로 있어요. 첫째, 관객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연기하는 가수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무대에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이 동시에 있으면 이쪽저쪽 신경 쓰느라 이야기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겠죠. 둘째, 성악가들의 노래가 잘 전달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예요. 초기의 오페라들은 오케스트라 인원이 많지 않아 규모가 작았다고 해요. 그때는 오케스트라가 무대 앞쪽에 위치해 연주했지요. 시간이 갈수록 오케스트라 규모는 커지기 시작했어요.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00명 이상으로 연주 인원을 늘렸다고 해요. 오케스트라 규모가 커질수록 성악가들의 노래는 선명하게 들리지 않지요. 그래서 오케스트라를 무대 아래쪽 깊숙이 위치시켜 성악가들의 소리와 오케스트라 음량의 균형을 맞추게 되었어요. --- p.45
거세된 남성 성악가를 ‘카스트라토’라고 불러요.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이전에 거세를 했기 때문에 목소리가 소프라노처럼 고음까지 올라갈 수 있었어요. 게다가 여성에 비해 폐활량이 훨씬 커서 1분 가까이 숨을 쉬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부른 기록도 있어요. 카스트라토는 교회음악뿐 아니라 점차 오페라까지 영역을 넓혀나갔어요. 헨델, 몬테베르디 등 많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그들을 위한 곡을 썼어요. 성공한 카스트라토는 부와 명예를 얻었고 젊은이의 우상이 되었어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어린 아들을 둔 가난한 부모는 아들을 거세시켜 카스트라토로 만들기도 했대요. --- p.53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빈 국립오페라극장. 빈 국립오페라극장은 “빈시 확장 계획”에 따라 1869년에 완공되었어요. 그런데 이 건물이 다 세워지기도 전에 시민의 찬반 논란이 거세어 설계를 맡은 건축가들은 완성된 건물을 보지 못하고 스트레스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해요. 개관 연주에는 황제가 참석한 가운데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가 무대에 올랐어요. 빈 국립오페라극장도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크게 파손되었어요. 빈 시민과 정부는 힘을 합쳐 기금을 모았죠. 겉모습은 고풍스러운 옛 모습을 유지하면서 내부 시설은 최신 기술을 도입하여 현대식으로 복원되었어요. 새로 지어진 극장의 첫 공연으로는 베토벤의 〈피델리오〉가 연주되었어요. 빈 국립오페라극장은 영화 〈미션임파서블〉의 배경으로 나오기도 했어요. --- p.69
가장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 헨델은 일생 동안 46편의 오페라를 만든 작곡가이자 지휘자였고, 연주가였어요. 한편으론 극장을 경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해서 두 번이나 파산했고, 그를 질투하던 사람들에 의해 세 번이나 살해당할 뻔했을 만큼 인생이 파란만장했어요. 50세가 되었을 때 헨델은 오페라와의 끊임없는 싸움에 완전히 지쳐 있었어요. 그때부터 그는 성경 구절에 오페라 요소를 넣은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기 시작했어요. 전심전력을 다했던 헨델은 불멸의 명작 〈메시아〉를 불과 23일 만에 완성했어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모두들 한 번쯤은 들어봤던 음악이지요? 이 부분을 듣고 감명받은 당시 국왕 조지 2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 덕분에 〈메시아〉는 더욱 유명해졌어요. 이것은 오늘날에도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는 모든 관객이 일어서는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 p.80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후세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해요. 모차르트는 오페라 세리아, 오페라 부파, 징슈필까지 모든 장르의 오페라를 작곡하고 성공 을 거두었답니다. 그 시대에는 비극 장르를 다루는 오페라 세리아가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반면, 희극적 내용을 다뤘던 오페라 부파는 크게 호응을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모차르트에 의해서 오페라 부파도 예술적 수준의 높은 경지로 재탄생되었고, 처음으로 평민 계급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대중에게 인기 있는 장르로 자리 잡게 되었어요. 모차르트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오페라의 내용을 충실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하여 오페라의 극적 흥미를 더해주었어요. 극 중 배역의 성격 묘사나 신분의 차이를 음악으로 나타냈는데, 예를 들어 화려한 음악은 귀족의 신분, 단순하고 재치 있는 선율은 하인의 신분으로 표현했답니다. 특히 독창뿐 아니라 중창(몇 사람이 각각 자기의 선율을 맡아서 부르는 노래)을 각 장마다 반복해서 사용하여 극의 통일성을 나타냈어요. --- p.85
앙코르를 너무 많이 받아 앙코르 횟수를 단 2회로 제한했어요. 〈피가로의 결혼〉은 1786년 5월 1일 빈의 황실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지휘로 초연되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어요. 초연 때는 거의 모든 아리아가 앙코르 요청을 받아서 결과적으로 오페라를 두 번 공연하는 셈이 되었죠. 두 번째 공연에선 다섯 곡의 아리아가, 세 번째 공연에선 일곱 곡의 아리아가 앙코르를 받았어요. 이를 보고받은 황제 요제프 2세는 공연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는 이유로 앙코르 횟수를 단 2회로 엄격히 제한한다는 명령을 선포했다고 해요. --- p.123
뮌헨 올림픽을 위한 축전 오페라 〈심청〉. 윤이상(1917~1995)은 세계무대에서 손꼽히는 우리나라의 작곡가예요. 그는 한국의 전통 음 악을 서양 음악에 접목하여 현대 작곡 기법을 만들어내 극찬을 받았지요. 그의 오페라 〈심청〉은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에서 초연되었어요. 뮌헨 올림픽 조직위원회 측에서 올림픽 개막 작 품으로 윤이상에게 오페라를 위촉한 것이죠. 윤이상은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를 서양의 매체, 즉 오케스트라와 서양식 창법으로 표현하고자 했어요. 그는 1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오페라 〈심청〉을 완성했어요. 윤이상의 〈심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며 판소리인 〈심청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심청〉은 올림픽 전야 공연에서 열렬한 환호를 받았어요. 당시 지휘자, 연출가, 오케스트라, 배우, 모두 서양인들로 구성되었어요. 특히 심청 역을 맡은 소프라노는 서양인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의 정서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죠. --- p.166
오페라를 감상하기 제일 좋은 자리는 2층 중앙 앞쪽이에요. 오페라극장의 1층 앞쪽 좌석은 지휘자에 가려져 연주자가 잘 안 보일 수 있어요. 또한 자막 스크린이 높이 있거나 양옆 끝에 있다면 공연 내 내 자막과 무대를 번갈아가며 보는 것이 불편할 수 있겠죠. 오페라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는 1층 중앙이나 2층 중앙의 앞쪽 자리예요. 오페라극장의 2층 중앙은 무대 세트와 가수의 연기,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들어와요. 오페라 감상은 시야도 중요하지만, 음향이 매우 중요해요. 오페라극장마다 설계가 약간씩 달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보통 2층 좌석은 시야와 음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어요. 관람하는 극장의 객석 배치도를 보고 좌석을 예매하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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